지금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 가장 많은 여성은 아리아나 그란데다

Mike Coppola via Getty Images

아리아나 그란데는 지난 26일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 가장 많은 여성으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이름을 올렸다. 기록 경신 당시 팔로워 수는 146,411,653명이었다. 

이전 기록 보유자는 팔로워 146,228,000명을 보유한 가수 셀레나 고메즈다. 

그란데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사진을 자주 게재하며 팬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현재까지 올라온 게시물 수는 무려 3,900개가 넘는다. 

현재 팔로워 수가 가장 높은 남성 인스타그래머는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다. 호날두의 팔로워 수는 1억5천6만 명으로, 그란데보다 천만 명이나 많다. 

한편, 아리아나 그란데는 최근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7 Rings’, ‘Break Up With Your Girlfriend, I’m Bored’, ‘Thank U, Next’로 1위부터 3위까지 차지한 바 있다. 가수 한 명이 핫 100차트 1~3위를 모두 휩쓴 건 1964년 비틀즈 이후 최초이자 차트 역사상 두 번째다. 

김태우 에디터: taewoo.kim@huffpost.kr

[SBS Star] How ITZY YEJI Succeeds in Making a Heart with LIA After Continuously Failing

기사 대표 이미지:[SBS Star] How ITZY YEJI Succeeds in Making a Heart with LIA After Continuously Failing
Fans cannot get over how cute K-pop girl group ITZY’s member YEJI was in the group’s first live broadcast.

On February 25, ITZY interacted with its fans using a live broadcast for the very first time since its debut.

When the live broadcast reached 20 million likes, the members gasped in shock.ITZYThen, YEJI suggested, “We should send a heart to the viewers to thank them.”

So, all members except YEJI made a heart with their hands towards the camera.

Instead of making a whole heart, YEJI made a half heart with her right hand and moved close to LIA who was sitting next to her.ITZYIt looked like YEJI hoped LIA would notice her right away, but it went the quite opposite way.

At that time, LIA was too distracted listening to other members talk that she had no idea YEJI wanted to make a heart with her.

To get her attention, YEJI knocked on her hand and quietly said, “Make a heart with me.”ITZYA few moments later, LIA turned to YEJI and noticed her half heart waiting for the other half to arrive.

LIA laughed, then made a half heart with her left hand next to YEJI’s, creating the perfect heart shape.YEJI and LIAAfter fans watched this scene, they commented, “How cute! YEJI is so puppy-like!”, “Awww! Just look at YEJI’s smile after being successful.”, “This is the cutest thing I’ve seen today.”, and so on.

Meanwhile, ITZY made debut with a single ‘IT’Z DIFFERENT’ on February 12.

(Lee Narin, Credit= ‘ITZY’ NAVER V LIVE)

(SBS Star) 

배우 박상민이 결혼 소식을 전했다

배우 박상민이 결혼 소식을 전했다.

27일 문화일보는 단독으로 박상민이 11세 연하의 일반인 여성과 결혼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박상민은 이 여성과 1년여 동안 교제해 왔다.

보도가 나온 뒤 박상민 소속사 위브나인엔터테인먼트도 이를 인정했다. 소속사는 ”박상민이 오는 4월 초 서울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며 ”예비신부를 배려해 양가 가족과 가까운 친지, 지인들만 초대해 비공개 결혼식을 진행한다”고 전했다.

또 ”예비신부의 사려깊은 마음과 배려심, 긍정적인 마음에 반해 인생의 동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며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 것에 대해 축하와 응원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박상민 소속사 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배우 박상민 씨의 소속사 위브나인엔터테인먼트입니다.

오늘 보도된 박상민 씨의 결혼 소식에 대해 본인에게 확인한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박상민 씨는 오는 4월 초 서울 밀레니엄 서울 힐튼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예비 신부가 평범한 일반인이기 때문에 결혼식은 양가 가족과 가까운 친지, 지인들만 초대해 비공개해 조용히 치르려 합니다. 더불어 예비신부의 자세한 신상을 전해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지인들과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은 후 사랑을 키워왔습니다. 박상민 씨는 무엇보다 예비 신부의 사려깊은 마음과 배려심, 긍정적인 마음에 반해 인생의 동반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됐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깊은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 것에 대해 축하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박상민 씨는 3월 초 새 드라마 OCN ‘빙의’의 방송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함께 하는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자칫 부담이 되지 않도록 조용히 결혼식을 준비해왔습니다. 이 드라마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결혼 후에도 배우로서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보여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한편 박상민은 지난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로 데뷔했다. 이후 ‘젊은이의 양지‘, ‘여인천하‘, ‘자이언트’ 등에 출연했으나 2013년, 이혼 소송과 폭행 의혹 등으로 공백기를 가졌다. 2017년에 SBS 드라마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통해 복귀했다.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김진아, 김정훈 여친 존재 알았나…”처음 알았던 거 아냐” 댓글 삭제 후폭풍

기사 대표 이미지:김진아, 김정훈 여친 존재 알았나…"처음 알았던 거 아냐" 댓글 삭제 후폭풍
‘연애의 맛’에서 김정훈과 연애감정을 나눴던 김진아가 김정훈에게 실제 연인이 존재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뉘앙스의 글을 올려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진아는 27일 자신의 SNS에 김정훈 논란과 관련해 네티즌들의 응원 글이 올라오자 댓글로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이 글은 한차례 수정을 거친 뒤 결국 삭제됐다.

김진아는 첫 댓글에서 “확실한 건 아니었고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어제 처음 알았던 것도 아니고 괜찮아요. 막판에 괜히 고생하신 제작진분들만 욕먹고 할 때마다 답답했는데 뭐.. 차라리 다행이네요”라고 글을 올렸다.

이어 “(SNS를) 비공개해라 댓글 닫아라 걱정 많이들 해주시는데,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다시 열 건데 그때 또 이 일 상기될 것 같아서 짜증도 나고 제가 숨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싶어서”라며 피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또 “제 엄마 아버지 새벽부터 저 걱정하셔서 잠 안 온다고 연락 오실 때 그 때만 좀 울었고 사실 저는 아예 괜찮아요. 구설수 오르는 게 좀 힘들기는 한데..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밝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후 김진아의 댓글은 수정됐다. “확실한 건 아니었고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어제 처음 알았던 것도 아니고 괜찮아요”라는 첫 문장이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댓글 전체가 아예 삭제됐다.

김진아의 댓글 수정 및 삭제에 각종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특히 김진아가 “처음 알았던 것도 아니고”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김정훈에게 실제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김진아가 뒤늦게나마 알았던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26일 김정훈이 연인 관계였던 A씨에게 약정금 청구소송을 당한 소식이 전해져 충격을 줬다. A씨는 김정훈과 교제하던 중 임신을 했고, 김정훈이 임신중절을 종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김정훈이 A씨가 살 집을 구해 임대차보증금 1000만원과 월세를 해결해주겠다고 했으나, 계약금 100만원만 지급한 후 연락이 끊겼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정훈의 소속사 크리에이티브광은 “해당 사건을 기사를 통해 접했다. 교제 중인 여성이 있는지도 몰랐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 “본인에게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조심스러워하며 사실 확인 후 입장을 밝히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첫 보도 이후 만 하루가 다 되어가는데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전 연인에게 피소당한 김정훈 사건은 ‘거짓말 논란’으로 번졌다. 김정훈은 최근까지 종합편성채널 TV조선 연애 프로그램 ‘연애의 맛’에 출연해 왔다. ‘연애의 맛’이 싱글인 연예인들이 이상형에 부합하는 이성을 만나 연애하는 과정을 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김정훈은 “연애를 안 한지 2년이 넘었다”며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 여기서 김진아를 만나 알콩달콩 설레는 연애감정을 키웠다.

이에 김정훈을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A씨 고소건의 진위여부를 떠나, 교제 중인 여성이 있으면서 ‘연애의 맛’에 출연한 것이냐는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김정훈은 24시간 가까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사진=’연애의 맛’ 방송 캡처]

(SBS funE 강선애 기자)

관동팔경의 옛 모습은 어땠을까?

강릉의 선사문화를 찾아서

 

 강릉시립박물관의 토대가 된 향토민속관
 강릉시립박물관의 토대가 된 향토민속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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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에는 율곡기념관 외에 강릉시립박물관이 있다. 강릉시립박물관에는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강릉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대표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1992년 향토사료관(향토민속관)으로 개관되었고, 1997년 역사문화관이 준공되면서 박물관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1998년 오죽헌과 통합, 강릉시립박물관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2012년에는 율곡기념관이 새롭게 개관했고, 2016년에는 율곡인성교육관이 개관했다. 그러므로 오죽헌에는 모두 네 개의 전시․교육관이 운영되고 있다.

강릉시립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발굴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 불교유물과 도자기도 중요한 전시물이다. 조선시대 유물로는 유교문화와 관련된 것이 많다. 서화류로는 문집과 그림이 있다. 국보는 없지만 보물과 유형문화재가 있어 강릉의 역사와 문화를 아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 동안 명안공주 관련유물 전시회, 신사임당 특별전, 화폐인물 특별전 등을 열었다.

 


 

강릉에서는 구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 기원전 60만 년 전 구석기시대 유적이 강동면 심곡리에서 발굴되었다. 주먹도끼, 찍개, 긁개 등 100여 점의 유물이 구석기시대를 대표한다. 신석기 유물로는 양양군 오산리, 지경리 유적이 대표적이다. 빗살무늬 토기가 발굴되었고, 강릉 초당동에서도 빗살무늬 토기가 발굴되었다. 한현동, 지변동, 강동면 안인리 유적도 신석기시대로 본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연곡면 방내리, 안현동, 교동에 있다. 방내리에서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이 발굴되었다. 움집으로 깊이가 16-68㎝ 정도라고 한다. 집안에서는 불땐 자리, 기둥 구멍, 저장용 구덩이 등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는 구멍무늬 토기, 돌도끼, 반달 돌칼, 가락바퀴, 화살촉, 갈돌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철기시대 유적은 강문동에서 발굴되었다. 강문동 유적은 초기 철기시대 집터를 보여준다. 집터의 크기는 10.7×6.2m의 직사각형으로 움집의 깊이는 35㎝다. 다섯 개 기둥구멍이 있고, 바닥에서 화덕과 숯이 확인되었다. 집안에서 민무늬 토기와 가락바퀴도 나왔다. 강문동은 바다에 가까운 저습지로, 철기시대 문화층 위에 신라시대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이 시대 강릉지역은 임둔 또는 동예의 영역이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유물로는?

 


 

원삼국시대 들어 강릉은 하슬라(何瑟羅)로 불린다. 강동면 안인리 유적이 원삼국시대 대표적인 취락이다. 이곳에서는 여(呂)자형 집터 15기와 철(凸)자형 집터 20기가 발견되었다. 여자형 집터가 아래층이고, 철자형 집터가 위층이다. 이곳에서는 화덕, 무문토기, 가락바퀴, 쇠작살과 낚시, 쌀, 가래, 콩 같은 곡물류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고분 유적으로는 신라시대 초당동 고분이 모형으로 제작 전시되고 있다.

강릉의 불교유적으로는 사굴산문의 절들이 유명하다. 대표적인 절이 구정면 학산리에 있는 사굴산문의 본산 굴산사다. 신라 문성왕 13년(851) 범일국사(梵日國師: 810-889)에 의해 창건되어 신라말 고려초에 번성했다. 그러나 현재는 부도와 당간지주 그리고 돌우물만이 남아 있다. 1983년 발굴조사 때 굴산사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 토기, 청자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박물관 전시실에는 굴산사지에서 발굴된 명문기와, 비 조각, 연화문 수막새, 도깨비문 수막새 복제품이 있다.

 


 

내곡동 신복사지에는 고려 초기 삼층석탑과 석불좌상이 있다. 이들은 예술성이 뛰어나서 문화재적 가치가 대단히 높다. 이곳 박물관에는 신복사지에서 발굴된 수막새, 암막새, 명문기와 복제품이 있다. 성산면 보광리에는 보현사가 있는데, 낭원대사(朗圓大師: 834-930) 오진탑(悟眞塔)과 탑비가 있다. 낭원대사는 굴산사에서 범일로부터 심인(心印)을 받았고, 범일 사후 보현사로 가 법을 펼치다 그곳에서 입적했다. 그 때문에 탑과 탑비가 보현사에 있다.

그리고 대표적인 불교유물로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이 있다. 한송사는 강동면 남항진리에 있던 절인데, 폐사 후 두 기의 석조보살좌상이 수습되었다. 하나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국립춘천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머리와 오른팔이 없어진 불완전한 형태로 이곳 강릉시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석조보살좌상은 입체감이 풍부하고 매우 활달한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으로 보물 제81호로 지정되었다.

시호 교지와 지석, 도자기와 서화 이야기

 


 

조선시대 유물로는 교지와 지석 등이 있다. 교지는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벼슬 임명장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이조판서를 지낸 심언광(沈彦光: 1487-1540)에게 내린 시호교지가 있다. 그는 8세손 심상현(沈尙顯)의 상소로 1761년(영조 37) 문공공(文恭公)의 시호를 받았다. 문(文)은 “영민하여 배우기를 좋아하고(敏而好學)”, 공(恭)은 “이미 지난 잘못을 고쳤다(旣過能改)”는 뜻이다. 심언광은 의정부 좌참찬까지 지낸 후 삭탈관직 되었다가 사후 복권된 바 있다.

지석으로는 안성이씨 종친회에서 기증한 이수징(李守澄) 지석이 있다. 지석에는 “통사랑 영천훈도 이공묘지(通仕郎榮川訓導李公墓誌)라는 표제와 “가정(嘉靖) 37년 10월 일지(日誌)”라는 연보가 있다. 이를 통해 1558년 만들어진 훈도 이수징의 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묘지문에는 이수징의 선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과 관직, 출생지, 활동사항, 부인과 자녀, 출생과 사망일시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울진과 영천에서 훈도를 지냈으며, 강릉최씨와 사이에 3남1녀를 두었다.

 


 

도자기로는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청화백자가 있다. 분청사기로는 박지문병, 국화문 접시, 덤벙문 대접이 있다. 청화백자로는 모란문 항아리가 있다. 이들 외에 수준이 조금 떨어지는 서화(書畫)가 여럿 있다. 이들 중 눈에 띄는 것은 병풍에 그려진 금강산도와 관동팔경도다. 금강산도에는 총석정, 장안사, 보덕암, 구룡연, 만폭동 등이 그려져 있다. 관동팔경도에는 통천의 총석정에서부터 평해의 월송정까지 여덟 군데 명승이 그려져 있다.

금강산도는 두 점이 있는데, 19세기말 20세초 작품으로 추정된다. 하나는 병풍 형태고, 다른 하나는 화첩 형태다. 설명에 보니 수직준과 미점에서는 정선의 필법을, 변형 하엽준은 김홍도의 필법을 따랐다고 되어 있다. 뾰쪽뾰족한 내금강의 산봉우리는 정선을 모방했다. 그리고 바위와 봉우리의 골계미는 김홍도를 모방했다. 그러나 수준이 그들에 미치지 못해 매너리즘이 느껴진다.

 

 금강산도에도 들어가고 관동팔경도에도 들어가는 통천 총석정
 금강산도에도 들어가고 관동팔경도에도 들어가는 통천 총석정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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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도는 금강산도에 비해 민화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림의 상단에 군현명과 명승 이름을 기록했고, 그림 속에 구체적으로 지명과 바위, 정자 등의 이름을 기록했다. 그러므로 이 병풍은 관동팔경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또 이 그림을 감상하는 현대인에게는 관동팔경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그 중 양양 낙산사(洛山寺)와 산척 죽서루(竹西樓)를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낙산사 그림에는 낙산사, 관음굴, 의상대가 있고, 전진리(前津里), 조암(鳥岩), 조도(鳥島)가 있다. 전진리는 현재 강현면 전진리를 말한다. 관음굴은 위치상으로 보아 현재 홍련암으로 보인다. 의상대에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현재도 크게 보면 소나무가 두 그루다. 조암과 조도는 바닷가의 바위와 섬에 붙인 이름이다. 길이 달라지고,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을 뿐 큰 구도는 현재와 같다.

 

 관동팔경도: 양양 낙산사(오르녹), 삼척 죽서루(왼쪽)
 관동팔경도: 양양 낙산사(오르녹), 삼척 죽서루(왼쪽)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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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루는 삼척의 오십천 위 절벽에 위치한다. 죽서루 앞에는 큰 나무가 있고, 그 오른쪽으로 대나무 군락이 있다. 누각 아래 하천 오른쪽에는 마을이 있다. 오십천 위에는 배가 한 척 떠 있다. 그림 아래 왼쪽에는 봉황대(鳳凰臺)가 있어 죽서루를 건너다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는 죽서루와 봉황대 사이에 엑스포로가 지나고, 죽서교가 오십천을 가로지르고 있다.

충성스런 노비의 송덕비가 있다

 


 

이들 박물관 내부 전시관을 보고 나오면 야외전시장에 늘어선 비석들을 볼 수 있다. 이 지역을 거쳐 간 관리들의 송덕비다. 관찰사, 강릉부사, 찰방 이름과 그 공적이 적혀 있다. 관찰사 비석 2기, 부사 비석 16기, 찰방 비석 1기, 관노(官奴) 비석 1기다. 이들 비석은 명주군청, 남대천 제방, 경포대 서쪽을 거쳐 이곳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비석 중 특이한 것이 충성스런 노비 문리동(文里同) 공적비다. 비석 가운데 ‘충노문리동지려(忠奴文里同之閭)’라고 적고, 양쪽에 그의 행적을 사언배율로 기록했다. 강릉부 관노였던 문리동이 임진왜란 때 강릉부사 이광준(李光俊)을 모시고 산골로 피신하여 정성을 다해 부사를 섬겼다는 내용이다. 산에서 식량이 떨어졌을 때 곡식을 구해와 기아를 면케 했으므로, 충효의 실행이 탁월하고 독보적이니 영원히 잊지 말자고 세운 것이다.

한국의 2018년 합계출산율이 조사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2018년 합계출산율이 0.98명을 기록, 출생통계가 작성된 197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출생아 숫자도 32만6900명으로 10년 전인 2009년과 비교해 27% 가까이 줄었다.

반면 사망률은 29만8900명을 기록, 전년에 대비해 4.7%가 늘었다. 인구 1천명당 사망자 수를 의미하는 조사망률은 5.8명으로 1988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의 분석을 살펴보면 모(母)의 출산 연령이 꾸준하게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2018년 기준 평균 출산 연령은 32.8세로 전년 대비 0.2세 상승했고 10년 전인 98년과 비교해 2세가 늘었다. 처음으로 35-39세의 출산율이 25-29세의 출산율을 넘어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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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성비는 셋째아 이상까지도 정상범위를 보였다. 통계청은 출생 성비가 103~107명일때를 ‘정상범위’라고 본다. 2008년에는 셋째아 이상에서의 출생 성비는 116명을 기록, 남아선호의 경향이 뚜렷했다. 하지만 2018년에 들어와서는 셋째아 이상에서의 성비가 105.8로 정상범위 내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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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출생률에서 사망률을 뺀 숫자를 의미하는 자연증가는 2만 8천명에 불과했다. 통계 작성시점인 197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통계청은 지난 2016년, 장래인구 추계를 통해 최악의 경우 한국의 인구가 2028년부터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통계청이 예상한 저위추계(낮은 출산율을 기준으로 추계)는 2020년 기준 1.10명이었다. 그러나 2018년 실제 출산율은 0.98명으로 기록됐다. 인구감소 시점이 ‘통계청 예상 이른 시점’보다 더 빨리 올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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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검사를 받고 양쪽 유방을 절제한 후에야 검사 결과가 틀렸다는 걸 알았다”

COURTESY OF MAUREEN BOESEN

글쓴이 모린 보센이 새로운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받기 한 달 전 자신이 BRCA1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걸 자랑스럽게 밝힌 티셔츠를 입고 있다.

바즈 루어만이 메리 슈믹의 에세이 ‘선크림을 발라라’(Wear Sunscreen)에 음악을 깔아 만든 영상을 처음 봤을 때가 18세였다.

참조 : ‘선크림을 발라라’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칼럼니스트 메리 슈믹의 에세이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인생을 좀 더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한 이 에세이는 1997년 시카고 트리뷴에 발표되어 이메일 등을 통해 크게 회자한 바 있다. 

당시 그 영상이 뭔가 내 삶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 같이 느꼈지만, 왜 그런지를 정확하게 짚어내지는 못했다. 그냥 마음에 와닿았다.

그리고 나중에야 ”당신 인생의 진짜 큰 문제들은 나른한 화요일 오후 4시에 갑자기 뒤통수를 치는, 걱정해 본 적도 없는 그런 것들이다”라는 이 에세이의 가사가 나의 현실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나른한 화요일은 2018년 9월 19일에 찾아왔다.

그날로부터 4주 전, 나는 유전학 상당사를 만나 BRCA1 유전자 돌연변이 검사를 받았다. 누구에게나 BRCA 유전자는 있다. 종양을 억제하고 DNA를 고치는 데 도움을 주는 유전자다.

그러나 BRCA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어 종양을 억지하지 못하는 여성은 살면서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약 75% 더 높고, 난소암에 걸릴 확률은 약 50% 더 높다. 아주 젊은 나이에 걸리는 경우도 많다.

나는 오래 전부터 BRCA와 유전자 검사에 익숙했다. 사실 나는 검사를 받기 전부터 내가 BRCA1 유전자 돌연변이 양성일 거라 믿어왔다.

우리 가문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유전적 유방암 병력 기록을 가지고 있다. 1863년이 최초 기록이다. 어머니는 32세에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다.

가문 내에 유방암과 난소암 병력이 두드러지다보니, 1990년대 초반에 우리 가계가 암과 유전의 관계를 연구하는 대상에 포함됐는데, 이 연구를 통해 BRCA1 유전자 돌연변이가 밝혀졌다.

우리 집안의 가계도엔 통계적으로 가장 유방암과 난소암이 많았기 때문에 유전학계가 BRCA1 돌연변이와의 관계를 밝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고, 그 보답으로 우리는 개인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연구 당시 겨우 5살이던 나는 18세가 되어서야 검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자라면서 BRCA1 유전자 돌연변이에 대해 알게 됐고, 나도 응당 물려받았으려니 생각했다.

대학교 2학년이 된 나는 검사 결과를 보기로 했다. 유전학 분야에서 널리 인정받는 연구자는 내가 BRCA1 돌연변이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가족력이 있으니 그 결과에 충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 검사가 부정확할 수도 있느냐고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정확하다고 말했다.

그의 사무실에서 걸어 나오며 나는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한 모든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23세에 두 가슴을 모두 절제한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나는 젊었고, 미혼이었고, 가슴이 없었다. 다행히 수술 후 합병증은 없었다. 나는 BRCA1 유전자 돌연변이가 내 인생을 방해하게 하지 못할 작정이었다. 이후 결혼했고, 아름다운 아이를 셋 낳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았다. 

COURTESY OF MAUREEN BOESEN

1990년 보센과 그의 어머니 수잔 윈. 윈은 이 당시 스테이지 2의 유방암을 치료하기 위해 화학요법을 받던 중이었다.

그러나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이 유전자 돌연변이는 내 생식계에 여전히 위협을 주었다.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내 난소가 점점 더 시한폭탄처럼 느껴졌다. 내 할머니는 어린 자녀를 6명 둔 채 40대에 난소암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궁절제술과 양측난관난소절제술을 받을 준비를 했다. 아이를 더 낳을 계획은 없었고, BRCA1 돌연변이가 있는 여성들이 이 수술을 받기에 적기라고 하는 35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언니 브리짓이 2018년 초에 이 힘든 과정을 겪는 것을 보았고 쉽지 않으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이 수술은 유방 절제술보다는 덜 복잡하지만, 그 영향은 더 클 수 있었다. 

이 수술을 받으면 두 주요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주요 분비원이 사라져 즉시 폐경에 들어가게 된다.

이 호르몬은 성욕이나 생식 능력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몸의 모든 조직에 영향을 주고, 피부 건강부터 인지, 기억 등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

호르몬 대체가 폐경의 영향을 감소시킬 수는 있지만, 그 과정은 더디고 힘들 수 있다. 큰 수술이고, 아이를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되고, 많은 여성들에게 있어 여성성을 상징하는 주요 장기들이 사라지게 된다.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일단 유전자 상담사부터 만났다. 보험사에서 수술비를 받아내려면 유전자 돌연변이 양성이라는 검사 결과를 제출해야 했다.

어린 시절 연구 대상으로 받았던 검사의 결과는 찾을 수 없었다. (흥미롭게도 가슴 수술을 받을 때는 검사 결과를 요구받지 않았다.) 유전자 상담사에게 전화를 걸어 검사 일정을 잡았다. 양성이라는 결과가 나오리라고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4주 후, 9월 19일 화요일에 들은 소식을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유전자 상담사는 내게 전화를 걸어 천천히 말했다. “모린, 우리 이야기 좀 해야겠어요.”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녀는 “음성이에요.”라고 말했다. 나는 사무실에 앉아 주체할 수 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이 날이 나의 나른한 화요일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습격이었다.

난 당장 차를 몰고 브리짓의 집에 갔다. 언니 집 부엌에 앉아 음성이라서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하며 울었다. 언니는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몇 시간이나 그러고 있었던 것 같이 느껴졌다.

언니는 내 눈을 보며 말했다. “미안해 하지 마. 이건 좋은 소식이야. 우리가 늘 듣길 꿈꿨던 소식이야.” 언니의 말이 맞았지만, 나는 언니가 지금도 짊어지고 살고 있는 운명을 피했다는데 죄책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이게 내게 이토록 큰 영향을 주었다면 우리 부모님에게도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부모님은 중국에 있었고 한밤중이었지만, 난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내겐 부모님의 응원이 필요했다.

자다 깬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하자 어머니는 “뭐라고?”라고 밖에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 탓은 못하겠다. 엄청나게 놀라운 상황이라 좋은 반응이란 게 있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훨씬 더 현실적으로 반응했다. “왜 안도하지 않아?”라고 물었다. “나는 충격 받았으니까!”라고 대답했다.

남편이 옳았다. 나는 신이 났어야 했다. 그런데 왜 그렇지 않았을까?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연구자의 눈을 바라보며 이 결과가 틀렸을 가능성이 없는지 물었던 2008년 생각이 자꾸 났다. 그는 아니라고 했는데, 그 말은 틀렸다.

내가 BRCA1 돌연변이 음성이라는 건 내가 양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충격적이고 압도적이었다. 정말 여러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혼란, 슬픔, 분노, 불안, 우울, 안도.

음성이라는 사실, 삶을 바꿀 수술을 또 한 번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내 삶을 되찾았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정확한 검사 결과로 인해 10년 이상 불필요한 엄청난 짐을 지고 다녔다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잘못된 검사 결과로 인해 두 가슴을 절제하는 큰 결정을 내렸다. 내 아기들에게 젖을 먹일 기회를 빼앗겼다는 게 마음 아팠다.

COURTESY OF MAUREEN BOESEN

유방 절제술을 받은 후 후속 검사를 받기 위해 캔자스 대학교 암센터를 찾은 보센.

게다가 나는 암 발병 확률이 높은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오며 그 정체성을 명예의 훈장처럼 달고 다녔다. 평생 그 이야기를 하고 다녔고, 이 연구의 일부가 되어 기여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이제는? 난 누구지? 난 뭐지? 너무나 많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정말 BRCA1 음성이라고? 두 번째 검사가 틀렸을 수도 있는데, 한 번 더 받아야 하나? 네 번째 검사도 필요할까? 첫 검사 결과가 잘못되었나? 내 피가 다른 사람 피와 바뀌었거나, 실수가 있었나?

답이 필요했다.

내 전화에 가장 먼저 응답한 사람은 의료사고 변호사였다. 나는 상황을 설명했고, 내가 겪은 일을 알게 된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그는 지극한 연민과 공감을 보였다.

안타깝게도 내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네브라스카 주에서 의료사고의 공소시효는 10년이었는데, 내가 결과를 처음 들었던 것은 10년하고 3개월 전이었다. 12주 늦어서 법적 조치를 할 수 없었다.

솔직히 법적 조처를 하지 못하도록 결정 나 있다는 게 고마웠다. 나는 그런 판단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내 감정은 너무 거칠었다. 판단력은 흐렸다. 대학에 말해볼까도 했지만 성과가 없는 것 같았다.

결국 다급해진 나는 의대 학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곧 학교의 위기 관리 부서에서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들은 내 주장을 살펴보았다고 했다.

내가 인간이 아니라 줄여야 할 위험 요인인 것처럼 느껴졌다. 큰 낙심을 느꼈다. 심지어 내가 다녔던 학교이기까지 해서 더 그랬다. 4개월이나 지나서 내가 기다려왔고 또 두려워한 답이 돌아왔다. 여전히 나는 BRCA1 유전자 돌연변이 음성이었다.

COURTESY OF MAUREEN BOESEN

2017년, 보센과 어머니 윈(왼쪽) 그리고 그녀의 딸 수지(가운데). 

대학이 돈을 댄 추가 검사 결과, 샘플이 뒤바뀐 것이 아니었다. 1990년대 초에 그들이 시험했던 DNA는 내 지금의 DNA와 일치했다. 게다가 민간 유전자 검사 연구소 두 곳에서 추가로 검사했으나 새 혈액 샘플에서 돌연변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새 검사 결과를 받아들이게 되긴 했지만, 여러 의문들이 남았다. 나는 왜 예전에 양성 결과가 나왔는지 지금도 모른다. 대학은 현재 이 사건을 조사 중이며, 이 검사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수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내 삶에 큰 영향이 있었지만, 예전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유전자 검사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 또한 갖게 되었다.

요즘 세상엔 집에서 검사를 요청하고 불과 몇 주 만에 결과를 받는 일이 흔해졌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는 간단하지 않고 틀린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잘못된 결과가 나올 경우 큰 파장이 남을 수 있다.

내가 이 경험에서 배운 것은 스스로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돌아보니 나는 유명한 연구자를 맹목적으로 신뢰했다.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었나?

내가 그를, 그의 연구나 의학계를 믿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만약 그가 틀렸다면?’하는 의심의 목소리가 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눈을 보며 검사 결과를 확신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 자신을 지키려 했고, 그는 자신이 옳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그는 틀렸다.

과거로 돌아가서 내 자신에게 한 가지만 말해줄 수 있다면, 그가 확신하는 만큼이나 내가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지, 내 머릿속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의사를 믿는 것은 중요하지만, 자신의 직관에 귀를 기울이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의사와 테스트는 틀릴 수 있다. 당신의 몸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당신이다. 아쉬움이 남지 않을 때까지 다양한 의견을 찾아보라.

* 모린 보센이 내린 결론은 허프포스트 코리아의 입장과 100%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겪은 사건과 사유에 충분한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여 Huffpost US의 기사 ‘I Got A Double Mastectomy After A Genetic Test. Then I Learned The Results Were Wrong’를 번역·편집해 소개합니다. 



16년 동안 한 나무만 기록, 결국 파리에 진출한 작가

 

충남 예산 예당저수지 왕버들나무 한 그루를 16년 동안 카메라에 담아온 작가가 있다. 이기완(39, 충남 예산군 예산읍). 그는 같은 자리에 변함없이 존재하는 나무를 오랜 기간 바라보고 기록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2009년 예산읍내 커피전문점 ‘이층’에서 열린 <그 나무> 전시를 시작으로 2010년 <나무를 전시하다>, 2012년 <느린나무>, 그리고 지난해 <느린나무2>를 통해 꾸준히 나무에 투영한 스스로의 이야기를 전해 왔다.


그 이야기들이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까지 이어졌고 현지인들과 소통했다.

지난 19일 오후, 프랑스 전시에 다녀온 이 작가를 그의 작업 공간인 예산읍 ‘느린나무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2시간가량 진행한 인터뷰를 문답형식으로 구성한다.

“나의 욕망을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 예당저수지 왕버들나무를 16년 동안 담아왔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내 안에 학습된 타인의 욕망과 진짜 나의 욕망을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2010년 <나무를 전시하다>에서 6년 동안 기록한 나무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의 표출이었다. 가족과 친구, 스승에 대한 인정욕구를 ‘나무’라는 거울을 통해 보게 됐다. 2012년 <느린 나무>는 나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첫걸음이었다.

이후 2018년 <느린 나무2> 전시가 열리기까지 6년 동안 타인의 욕망과 내 욕망 사이를 반추하는 시간을 가졌다. 타인의 욕망에 오랫동안 학습된 나를 찾아내고 고민하고 줄다리기하며 균형을 잡았다. ‘타인을 위한 예술인가 나를 위한 예술인가’ 사이에서 속도와 거리를 맞추고, 그 고민 끝에 온전한 나의 열망을 표현한 것이 <느린나무2>다. 나에 대해 이해하고 나를 대면하는 자리를 통해 선보인 작품은 이전 작품보다 계절적 감각을 줄이고 간결하게 표현했다.”

– 이번 파리에서 열렸던 전시는 어떤 전시였나. 현지 반응도 궁금하다.
“2월 9일부터 21일까지 파리시내 갤러리 ‘in)(between’에서 프랑스, 일본, 터키에서 온 젊은 작가 3명과 전시회에 참여했다. 나는 2017년과 2018년에 찍은 나무 작품 10점을 선보였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에 대해 서로 토론하며 관람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나의 작품에 대해 ‘국적과 상관없이 어느 나라에 전시하더라도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평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시적이다’라는 표현이 가장 좋았다.”

– 고향 예산에서 활동하고 있다. 도시로 나가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예산’에 특별한 이유를 두진 않는다. 그렇다고 특별히 도시로 나가야할 이유도 없다. 다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담히 그리고 싶다. 가끔은 도시로 갈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번 프랑스 전시를 하면서 내가 추구했던 가치가 틀리지 않았다고 증명된 것 같아 자부심을 느꼈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지역에서 누군가 나의 활동을 보며 ‘저 사람이 하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재미있는 물음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 작가로서 꿈이 있다면?
“평생 나를 꺼내놓을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싶다. 일상생활 속에 사진이나 활자, 어떤 것을 통해서든 나를 꺼내놓는 예술을 하고 싶다. 사진작가는 순수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일상적인 예술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를 꺼내놓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계속 담아내는 것. 그것이 나의 꿈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가능하다면 해외전시를 많이 하고 싶다. 이번 파리 전시를 통해 느끼는 것이 많았다. 파리에서는 사진작가가 회화, 조형 등 다양한 소재와 주제, 장르에 임하고 있더라. 나의 이야기를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현지 반응을 듣고 싶다”

이 작가와 인연을 이어온 예당저수지 나무는 뿌리가 들려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그는 이제 “나무의 생과 사를 잘 담고 기록하고 싶다”고 한다. 둘만의 긴 역사만큼 그들의 마무리 또한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에도 실립니다.

[SBS Star] VIDEO: 9MUSES Hye Mi Expresses Her Gratitude to Gyeong Ree at the Last Fan Meeting

기사 대표 이미지:[SBS Star] VIDEO: 9MUSES Hye Mi Expresses Her Gratitude to Gyeong Ree at the Last Fan Meeting
K-pop girl group 9MUSES’ member Hye Mi thanked her fellow members and fans during the group’s last fan meeting.

On February 24, 9MUSES held its last fan meeting ‘Remember’ at Hansung University, Seoul to wrap up their nine years of promotional activities.
9MUSESOn this day, the members of 9MUSES had a time to look back on the time they have spent with their fans starting from the moment of debut to their disbandment.
9MUSESAs this was the last time for the members to meet their fans and the public as 9MUSES, the members tried to share many things as possible and make the most of their time together.
9MUSESBut what truly moved the fans that night was the heartfelt words of Hye Mi expressing her sincere gratitude to her fellow members one by one.
9MUSESHye Mi said, “First of all, Gyeong Ree. To you, I just want to say thank you. I want to express my gratitude to other members too, but I just want to say that you did a good job.”
9MUSESShe continued, “You’ve done a lot of individual activities, and we all know how hard it is. Making appearance at variety shows, trying other stuff, and doing things on your own? It’s really hard.”

Hye Mi added, “But you never let it show and you always said, ‘Hello, I’m Gyeong Ree from 9MUSES.’ every time you introduced yourself. You always mentioned our group’s name.”
9MUSESThen Hye Mi immediately lightened up the mood by saying, “I also want to root for her individual activities because she has few more years left on her contract.”
 

After that, Hye Mi kept expressing her gratitude to all her members and wrapped up the fan meeting on a good note.

Meanwhile, the members of 9MUSES will focus on their individual activities.

(Kang Eunbee, Credit= ‘BLUE’ YouTube, Star Empire)

(SBS Star)    

[SBS Star] A Horrifying Thing that HeeChul’s Extreme Fans Did When He Changed His Phone Number

기사 대표 이미지:[SBS Star] A Horrifying Thing that HeeChuls Extreme Fans Did When He Changed His Phone Number
K-pop boy group Super Junior’s member HeeChul shared a shocking thing that his extreme fans had done to him.

On February 26 episode of KBS’ ‘Six-party Talks’, HeeChul gave everyone goosebumps with a horrifying story.

While the cast members were having a discussion on the topic of privacy, HeeChul commented, “I’m very sensitive to this matter.”

HeeChul explained, “There were a number of times in the past when my privacy was invaded by some extreme fans. They seriously would go so far.”
HeeChulThen, HeeChul began telling one story, “Once, U-KNOW Yunho of TVXQ! and I both changed our phone number. We had just changed it and told no one about it, but would receive text messages from them.”HeeChulHeeChul said, “At that time, they first wrote a message to U-KNOW Yunho. It said, ‘I know you’ve changed your phone number. I still know it though!'”

HeeChul continued, “Just when we were saying how creepy that was, I received a message from them as well. It said, ‘Haha I know your new number, too!’ This happened for real.”HeeChulAfter listening to HeeChul, the cast sitting around the table gasped in shock and repeatedly said, “That is so nightmarish!”

‘Six-party Talks’ is a new talk show where various social issues are discussed by six celebrities―HeeChul, Lee Gyeonggyu, Kim Yong Man, Park Myung-soo, Jang Dong Min, and Jang Do-yeon.

(Lee Narin, Credit= KBS Six-party Talks)

(SBS 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