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 양조장에서 백년 넘게 해온 일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은 오래도록 밀주 동네의 그늘 속에 살아왔다. 그 오래된 그늘이 이제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있다. 어떻게 한산에 밀주가 보존될 수 있었을까 흥미롭다. 그것은 세무서의 단속보다도, 한산 사람들의 부지런한 생활력이 더 힘있게 작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산은 모시를 보존하여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모시나 삼베를 짜는 일이 이 땅에 살았던 여성들의 보편적인 노동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내 외할머니도 베틀에 앉았고, 어머니도 어려서 베틀에 앉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라졌지만 한산에는 남아 있다. 최후까지 남았던 조선의 보부상도 한산이 포함된 저산팔읍(모시가 생산되던 충청도의 여덟 개의 읍 – 부여, 임천, 한산, 홍산, 서천, 비인, 남포, 정산을 말함)의 보부상이다.

시절이 달라져 한산 모시를 짓는 곳이 100가구 이하로 떨어져 문화재로 보호받아야 할 상황이 되었지만, 지금은 모시를 짜던 손들이 움직여 한산 소곡주를 빚고, 모시송편을 만들어 소득을 올리고 있다. 나라 안에 땅을 기반으로 살아가야 하는 농촌 중에서 한산만큼 생산력 있는 고장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한산소곡주 사업단의 이천희 팀장은 “한산은 인구가 줄지 않는 특별한 농촌 마을입니다, 소곡주 제조장이 65개가 생겼고 앞으로도 더 많은 한산 소곡주 양조장이 생겨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10여년 전에 서천군청 마당에 진지처럼 쌓여진 수매 요구 시위용 쌀더미 사이를 지나 서천군청의 나소열 군수를 만났던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산에 술 빚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까? 이를 양성화시키면 군청 앞에 쌀을 쉽게 소비할 텐데요, 그 농가에 쌀을 나눠주고 술로 돌려받아 정월 대보름에 축제를 하면 단번에 해결할 텐데요”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세월이 흘렀고, 한산에 술 잘 빚는 이들이 면허를 내고 이제 당당하게 술을 빚고 매출을 올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 매출의 규모가 얼마나 될까? 100억 원은 넘어선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더 늘어날 게 분명하다.

술의 선진지 일본에 가다

 

쌀을 담는 천이 줄에 걸려있고, 왼편엔 쌀자루를 옮기는 크레인이 있다. ⓒ 막걸리학교


 

나는 지난 11월 한산 소곡주 4회 축제에 참여하여 한산 소곡주를 맛보았고, 이번에는 한산 소곡주 대표 14명과 함께 선진지 견학으로 일본 니이가타 양조장들을 방문하게 되었다.

일본은 술의 선진지인가? 선진지라 할 만하다. 일본은 음식이라는 상품을 가지고 사치스러울 정도로 요란하게 포장하고, 다양하고 섬세한 제품들을 만들어내는 나라다. 그 음식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게 디자인되어 판매되는 것이 일본술이다.

일본술과 우리술은 주재료가 쌀이라는 점에서 서로를 비교하며 살펴볼 만하다. 한국술은 조선 시대까지는 중국 대륙의 영향을 받았고, 개항기 이후에는 서구 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일본의 영향을 받아 우리 것을 형성해 왔다. 우리를 살피려면, 중국과 일본의 술 기술과 문화를 함께 관찰함으로써 서로의 비교 우위와 차별된 지점을 포착할 수 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일본의 니가타현이었다. 니가타현은 해마다 3월 두 번째 토요일과 일요일에 사케노진 축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신간센 열차가 서는 에치고유자와 역에 폰슈칸이라는 니가타 술 전문 판매장을 열어 관광 상품화했다.

또 고햐쿠만세키나 코시탄레이와 같은 양조쌀을 개발하여 지역 술을 차별화시켰고, 달달한 일본 술 시장을 담백한 맛으로 변화시켰다. 한국 시장도 적극적으로 공략하여 쿠보타, 하카이산, 코시노칸빠이 브랜드를 진출시킨 고장이다. 한 가지 더 흥미롭게도 니이가타현 오치야시는 모시로도 유명한 동네로, 이미 한산 모시 조합과 교류하고 있었다.

니가타 공항에 내려 처음 찾아간 곳이 타카라야마주조(宝山酒造)였다. 1885년에 창업하여 4대째 운영하고 있는, 살림집이 함께 있는 목조 건물의 양조장이었다. 창업 초기의 목조 건물 안에서 전통을 지키며 술을 빚고 있었다.

술통은 나무통에서 법랑통으로 바뀌었고(지금은 스테인리스통이 대세가 되어 법랑은 이미 옛날 장비가 되었지만) 현대식 여과기가 들어와 있었다. 다만 큰 시루에서 고두밥을 찌는 모습은 예전 방식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보였다.

우리 일행은 고두밥 찌는 모습을 눈여겨 보았다. 소규모 수제로 술을 빚을 때에 가장 힘든 것은 쌀을 옮기고, 뜬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거듭하여 씻고, 물에 한동안 불리고, 솥에 담아 가열하여 충분히 찌고, 냉각대에 옮겨 빨리 식히고, 술통에 담는 연속된 과정이다.

이를 어떻게 단순화시켜 노동력을 절감시키고 있는가가, 거대한 가마솥을 보는 순간 모두들 궁금해졌다. 견학로의 경계선 밖으로 벗어나지 말라는 주인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 솥 가까이 걸음이 옮겨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고두밥은 어떻게 퍼서 식힐까’ 했더니

고두밥을 찌는 솥은 물 끓이는 증기솥과 쌀을 앉히는 시루로 분리된다. 일본은 코시키(甑)라는 나무 찜기가 1600년대에 보급되어 대량 생산 체계를 구축하였다. 오래된 증기솥 옆에 레일이 깔려 있고, 그 레일 위로 시루가 열차처럼 움직였다.

시루를 들지 않고, 솥에 물을 부을 수 있게 했고, 고두밥 식히는 곳까지 이동하게 했다. 그렇다면 고두밥은 어떻게 퍼서 식힐까? 시루 옆에 고두밥을 담을 수 있는 컨베이어벨트가 설치된 운반통이 있었다. 하지만 타카라야마주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증기솥 위에 큰 시루를 올려 고두밥을 찐다. 시루를 옮기는 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 막걸리학교


 

남겨진 의문은 다음날 찾아간 눈더미 속에 숙성실을 갖춘 타마카와주조(玉川酒造)에서 풀렸다. 타마카와에서도 증기솥 옆에 레일이 있고, 시루가 레일을 타고 다니는 점은 같았다. 그런데 천정에 긴 레일이 달려있고, 크레인이 레일을 타고 이동하면서 쌀자루를 들어올리고 내리도록 설비되어 있었다.

쌀자루에 한번 쌀이 담기면 그 안에서 씻어지고,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물빼기를 하고, 시루에 옮겨지고, 냉각대로 옮겨지는 것까지 모두 해결했다. 전 과정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증미기가 나와 있지만, 그들은 옛 것을 고치고 보완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타카라야마주조(宝山酒造)는 1년에 방문객이 1만6천명이 된다고 하니, 하루 평균 40명 넘게 찾아오는 곳이다. 양조장 견학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다다미방 시음장에 들어갔다. 다다미방 문 위에는 “儉則可以傳子孫(검소해야 자손에게 이어진다)”이라고 쓰인 액자가 걸려 있었다. 검소함이 4대째 130년을 이어올 수 있는 동력의 하나였다.

양조업은 대를 이어가기 좋은 사업이다. 한번 이름을 얻긴 힘들어도, 이름을 얻고 나면 술은 익숙하게 소비된다. 술을 소비하는 경향을 보면 처음 본 술은 경계하지만, 익숙한 술은 편안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한산 소곡주 양조장들은 문화재 소곡주 한 곳을 제외하고는 창업한 지 5년 안팎의 양조장들이다. 신생 양조장들이지만, 부모 때부터 술을 빚어온 저력을 지니고 있다.

부모가 하는 일을 자식에게 잘 물려주지 않고, 자식은 부모가 하는 일을 잘 물려받지 않으려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는 부모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하지 못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식을 키우기 위해 마지못해 일하다보니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하인에게 넓은 농토를 맡기고 양반은 글을 읽거나 짓는 문화 속을 통과하다보니, 몸을 움직여 노동하는 일에 높은 가치를 두지 않았다. 공부해서 과거 보듯이 시험을 보고 대기업에 들어가고 공무원이 되는 가치를 우월하게 두었지, 단련된 기술로 노동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그런 관습들이 가업을 승계하는 문화를 약화시켰고, 술 빚는 기술을 소중하게 다루지도 않는 쪽으로 작동해 왔다.

한산 소곡주 양조장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날개를 펴고 날기 시작한 한산 소곡주 양조인들에게는 너무 멀고 성급한 질문일 수 있다. 하지만 멀리 보고 나는 것과 당장의 먹이감을 찾기 위해서 나는 것은 다르다.

100년이 넘는 집에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해왔던 일을 이어받아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양조업은 대를 이어갈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양조업은 오래된 노동이고 오래갈 노동이기 때문이다.

 

다다미방에서 일본 청주를 시음하는 한산소곡주 양조인들. ⓒ 막걸리학교


 

다다미방 시음장 탁자 위에 우리가 시음할 술 8종이 놓여졌다. 만드는 방법이 다른 술들인데, 원주도 있고, 갓 짜낸 생주도 있었다. 술에 대한 설명서가 탁자 위에 친절하게 붙어 있었다. 시음비는 따로 없다. 우리는 양조장 안주인의 설명을 들으며 술을 시음하기 시작했다. 이 집에서 백년 넘게 해온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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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만 가면 모든 게 행복할 줄 알았다

‘진짜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다’라는 말이 있다. 20살이 되고 대학에 들어가면 수많은 대인관계가 형성되지만 고등학교 시절 친구만은 못하다는 뜻이다. 대학에 다니면서 동아리 활동, 과 활동, 대외활동 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 이는 넓고 얕게 알게 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많은 사람을 알게 되어 좋기도 하지만 그 많은 관계 때문에 피곤하기도 하다.

나는 2017년 2학기 학교를 다니던 중 중도 휴학을 하였다. 인간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로 지쳤기 때문이다. 그토록 바라던 대학에 오면 모든 게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힘이 들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에 대해 멋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소문이 아닌 팩트는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한 명씩 붙잡고 해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대인관계에 지친 나는 계획 없는 휴학을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매일 같이 누군가와 시간을 보냈지만 휴학을 한 뒤로는 친구도 잘 만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만 보고 달렸던 내가 나를 돌아보게 된 시간이었다.


휴학을 하고 처음에는 인간 관계에 지쳐 도망친 것 같아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복학할 때에는 그래도 참 잘했다 싶었다. 내가 나의 지침을, 아픔을 모른 척 한 채 계속 달렸다면 나는 더 크게 넘어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휴학은 지친 내가 다시 달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줬다.

많은 학생들이 휴학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인간 관계 때문이라면 더 그럴 거다. 그러나 쉼은 더 멀리 달리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다. 소소하게 여행을 다녀도 좋고 나처럼 휴식을 취해도 좋다. 그러니 잠시 지친 대인 관계를 멈추고 자신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정부의 ‘가짜뉴스’ 대책안이 우려스러운 이유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기자말

이른바 ‘가짜뉴스’ 대응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 10월엔 국무총리가 ‘가짜뉴스 엄정 대응’ 주문을 내놨다. 이에 따라 범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면서, 정부의 대책은 규제와 처벌에 방점을 두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책이 자칫 표현의 자유를 위축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시민언론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 역시 지난 12월 14일 ‘정부 여당의 허위조작정보 방지 대책에 대한 의견서'(아래 의견서)를 통해 가짜뉴스 대책에 대한 정부 논의의 방향성 전환을 촉구했다. 의견서는 우선 규제 위주의 정부 방안은 가짜뉴스에 대한 명확성과 과잉금지의 원칙 등을 벗어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이 함께 대책을 논의하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나아가 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해 혐오와 폭력에 기댄 허위조작정보를 규제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마련함과 더불어, 시민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허위조작정보를 인지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방향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규제와 처벌 vs. 표현의 자유’… 소모적 공방 불러오는 정부대책 


가짜뉴스의 실재적 해악이 명확하기에 가짜뉴스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과정을 들여다보고 이에 대응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제도적 규제도 필요하고, 가짜뉴스 생산 유포 행위자들이 명백하게 법질서를 위반했다면 이에 대한 처벌도 해야 한다.

때문에 규제 강화 방안에 우려를 표하는 데 비판적인 시각도 있는 것도 사실이며, 이는 종종 ‘규제와 처벌 vs. 표현의 자유’라는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짜뉴스의 해악이 분명하다면 규제와 처벌 강화를 통해 근절하는 것이 당연한데, 왜 표현의 자유와 연결지어 답답한 소리하고 있느냐’는 비판이다. 

사실 이러한 논쟁은 가짜뉴스 대책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소모적인 공방이다. 정부 방안에 우려를 표하는 시민사회와 전문가들 역시 규제 강화를 마냥 반대만 하는 게 아니다. 가짜뉴스에 대한 개념과 범위의 문제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와 처벌에 중점을 두는 방식, 그리고 그에 따라 예견되는 부작용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정부 대책안 역시 이러한 문제제기를 인식하고 ‘가짜뉴스’ 대신 ‘허위조작정보’라는 용어를 제시하고 있다. ‘가짜뉴스’라는 용어는 의견제시, 오보, 풍자, 유언비어 등의 허위사실과 혼용되어 다의적으로 사용되고 있기에, 악의적 의도의 허위정보를 의미하는 ‘허위조작정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규제 대상과 관련 개념을 보다 구체화 시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허위조작정보, 허위성과 기만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를 위한 허위조작정보의 범주와 판단의 모호성은 여전하다. 가짜뉴스 유형과 범주에서 핵심적인 사항은 ‘허위성’과 ‘기만성’이다. 가짜뉴스는 정보의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다양한 수준의 행위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고, 그 유형 역시 다양하기에 허위성과 기만성을 명확히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허위성의 측면에서 볼 때, 허위정보일지라도 전체적 허위, 핵심 내용 허위, 일부 내용 허위 유형이 있고, 또한 결과적 허위로 판명될지라도 해당 시점에서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기만성의 측면에서 보면, 허위임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허위를 명확히 인지하면서도 악의를 가지고 기만했는지, 허위의 의심이 있었지만 악의를 가지고 사실 확인을 의도적으로 기피했는지 여부, 그리고 이러한 행위에 따른 정치, 경제, 사회적 이익을 누가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등의 문제를 명확히 하기가 쉽지 않다. 

재차 강조하지만, 가짜뉴스 현상은 악의적 거짓의 유포로 진실 왜곡, 국민 분열, 민주주의적 질서를 해하기에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합리적인 규제 방안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강구하는 규제와 처벌 중심의 가짜뉴스 대책은 부작용의 여지를 안고 있다. 이는 가짜뉴스 현상과 대책에 대한 본질을 벗어나 또 다른 부수적 논쟁, 소모적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스마트 미디어 환경에서 정보 생산과 유통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고, 개인화된 네트워크를 통해 확증편향과 선택적 노출에 따른 정보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규제 강화를 위해서는 그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보다 정밀한 논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울러, 시민 스스로가 허위정보와 거짓정보를 구분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시민교육의 지원과 확대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여러 각도에서 접근하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민언련의 의견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시민사회의 의견에 대한 정부의 귀기울임을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은규씨는 민주언론시민연합 미디어위원장, 우석대학교 교수입니다.

시민들이 뽑은 ‘올해의 언론인’들

19일,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의 창립기념식에서는 민주시민언론상, 올해의 좋은 보도상, 성유보 특별상 시상식이 열립니다.

민주시민언론상은 민언련이 창립 15주년인 1999년 3월 26일 정기총회에서 제정한 상으로 올해로 20회 수상자를 선정했습니다. 언론개혁과 시민언론운동 발전에 기여한 개인 또는 단체에게 수여됩니다.

올해의 좋은 보도는 신문, 방송 뉴스, 온라인 보도, 시사 프로그램, 대안 미디어 등 5개 부문별로 민언련이 매달 선정하는 ‘이달의 좋은 보도’ 및 시민들이 추천한 보도 중 심사를 거쳐 선정됩니다.


성유보특별상은 이룰태림 故 성유보 선생 1주기를 맞아 우리 사회의 언론민주화와 평화․통일 발전에 기여한 단체나 개인의 활동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으며 민주언론시민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소비자주권행동, 희망래일 등 언론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구성한 위원회가 선정합니다.

시상식은 2018년 12월 19일 저녁 6시 30분에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4층에서 열리는 <민언련 34주년 창립기념식>에서 진행됩니다. 아래는 각 부문별 선정작과 그 사유입니다.

제20회 민주시민언론상 본상, 한겨레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한겨레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취재팀(김완‧변지민‧박준용‧장나래 기자))

2018년 민주시민언론상 심사위원회는 제20회 민주시민언론상 본상 대상자로 한겨레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취재팀(김완‧변지민‧박준용‧장나래 기자)을 선정했습니다.

한겨레는 가짜뉴스를 생산‧유통하는 세력을 추적한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기획기사를 4회에 걸쳐 연재했습니다. 수많은 가짜뉴스와 복잡한 유통망 속에서 그 진원지를 찾아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한겨레는 두 달 남짓의 추적‧탐사를 통해 소수자 혐오 가짜뉴스’의 진원지에 보수 개신교 세력인 ‘에스더기도운동(이하 에스더)’이 있었음을 밝혀냈습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한 끈질기고 체계적 취재도 돋보였습니다. 한겨레는 우선 가짜뉴스로 판명된 22개의 기사를 선정한 뒤, 이들이 유튜브에서 확산될 때 유통되는 채널 및 그와 함께 등장하는 인물을 찾아 3단 연결망(가짜뉴스-채널-인물)기법으로 분석했습니다. 2018년 민주시민언론상 심사위원회는 한겨레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기획팀이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통을 끈질기게 취재하여 공론화시킨 공로가 크다고 평가하며 민주시민언련상 본상에 선정했습니다.

 

 성소수자 혐오 가짜뉴스의 근원지인 에스더기도운동 찾아낸 한겨레
 성소수자 혐오 가짜뉴스의 근원지인 에스더기도운동 찾아낸 한겨레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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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좋은 신문 보도, ‘천안함 생존자의 삶’ 조명한 한겨레‧한겨레21

(한겨레·한겨레21 공동기획팀 정환봉‧최민영(한겨레)‧변지민(한겨레21) 기자)

2018년 민주언론시민연합 선정 ‘올해의 좋은 보도’ 신문 부문에는 한겨레‧한겨레21 기획기사 <천안함,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쓴 한겨레·한겨레21 공동기획팀(정환봉‧최민영(한겨레)‧변지민(한겨레21)) 기자가 선정됐습니다.

한겨레‧한겨레21은 2018년 7월 16일부터 23일까지 천안함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룬 <천안함, 살아남은 자의 고통> 기획기사를 연재해 언론으로서는 처음으로 천안함 생존자 24명의 소외와 고통을 분석했습니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팀과 함께 진행한 ‘사회적 경험과 건강 실태 조사’를 통해 ‘보수에게는 이용당하고 진보에게는 외면당한’ 천안함 생존자들의 트라우마와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객관적 데이터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올해의 좋은 보도’ 심사위원단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소외된 이들을 조명해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한 한겨레‧한겨레21 <천안함,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2018년 올해의 좋은 신문 보도’로 선정했습니다.

 

 한겨레?한겨레21, 천안함 생존 장병의 이야기를 다룬 <천안함, 살아남은 자의 고통> (기획기사 2018/7/16~23)
 한겨레?한겨레21, 천안함 생존 장병의 이야기를 다룬 (기획기사 2018/7/16~23)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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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좋은 방송 보도, ‘사립 유치원 비리’ 고발한 MBC

(MBC 정치팀 김현경 이해인 박소희 이동경 기자)

2018년 민주언론시민연합 선정 ‘올해의 좋은 보도’ 방송 부문에는 ‘유치원 감사 결과’를 단독보도해 ‘사립 유치원 비리 실태’를 끈질기게 추적한 MBC 정치팀(김현경‧이해인‧박소희‧이동경 기자)이 선정됐습니다. MBC는 10월 11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무작위 유치원 감사 결과 단독 보도를 시작으로 일부 사립 유치원의 심각한 비리 실태를 끈질기게 고발하여 사회적 의제로 공론화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비리 유치원 명단을 공개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켰고 감시의 사각지대를 만든 제도적 미비점까지 지적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올해의 좋은 보도’ 심사위원단은 가히 올해 최고의 뉴스라고 할 수 있는 ‘사립 유치원 비리’를 선제적으로 고발하고 꾸준히 ‘게이트 키핑’까지 해냈던 MBC ‘유치원 감사결과 연속 보도’를 ‘2018년 올해의 좋은 방송 보도’로 선정했습니다.

 

 유치원 비리’의 온상을 공개한 MBC <뉴스데스크>(10/11)
 유치원 비리’의 온상을 공개한 MBC (10/11)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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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좋은 온라인보도, ‘지역 대안 언론의 가치’ 증명한 뉴스민

(경북민심번역기 특별기획팀 김규현, 박중엽, 이상원, 천용길 기자, 김서현 데이터분석연구원)

2018년 민주언론시민연합 선정 ‘올해의 좋은 보도’ 온라인 부문에는 6월 지방 선거에서 충실한 선거 특별기획으로 선거 보도의 모범을 보인 뉴스민 지방선거 특별기획 <6·13지방선거 경북민심번역기>의 김규현, 박중엽, 이상원, 천용길 기자, 김서현 데이터분석연구원이 선정됐습니다.

뉴스민은 지역 대안언론이 처한 여러 현실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 특별페이지를 개설하여 대부분의 선거구를 모두 직접 취재하고 극심한 지역감정의 근원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타 매체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지역 유권자들의 목소리와 유권자 의제가 풍부하게 보도에 담겼고 뚜렷한 지역 정치색에도 불구하고 읽어낼 수 있었던 변화의 실마리가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올해의 좋은 보도’ 심사위원단은 지역 대안언론으로서 타 매체보다 더 가치 있는 선거보도를 선보인 뉴스민 <경북민심번역기>를 ‘2018년 올해의 좋은 온라인 보도’로 선정했습니다.

 

 뉴스민 경북민심번역기 특별기획
 뉴스민 경북민심번역기 특별기획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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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좋은 시사 프로그램, ‘쌍용차 사건’의 진실 밝힌 MBC <스트레이트>

(MBC 고은상 배주환 기자)

2018년 민주언론시민연합 선정 ‘올해의 좋은 보도’ 시사 프로그램 부문에는 9년 만에 국가폭력의 진상을 객관적으로 드러낸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쌍용차 30명 죽음의 배후’의 MBC 고은상‧배주환 기자가 선정됐습니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2부에 걸쳐 2009년 발생한 쌍용차 사건을 다뤘고 파업 이전부터 경찰 병력 투입을 요구했던 사측의 ‘파업 진압 계획’, 청와대와 경찰을 오가며 ‘진압 물밑 작전’을 펼친 경찰의 ‘노조 파괴 공작’, 국군기무사령부와 국정원의 조직적인 사찰 등 사태의 진상을 밝혀냈습니다.

특히 사측과 경찰의 내부 문건 및 증언 등 탄탄한 근거를 확보하여 9년간 ‘노조의 폭력’을 사태의 원인으로 규정했던 보수세력의 프레임을 완벽히 깨뜨렸다는 점에서 보도의 가치는 컸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올해의 좋은 보도’ 심사위원단은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뒤틀린 진실을 바로 잡아 피해자들의 인권을 보호한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를 ‘2018년 올해의 좋은 시사 프로그램’으로 선정했습니다.

 

 경찰의 노조 파괴 컨설팅 의혹 고발한 MBC
 경찰의 노조 파괴 컨설팅 의혹 고발한 MBC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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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좋은 대안 미디어, 찬핵 언론의 홍수 속에서 분투한 <단비뉴스>

(단비뉴스 환경부 나혜인‧강민혜‧김민주‧박희영‧서지연‧윤연정‧남지현‧박수지‧박진홍‧조은비‧박지영‧윤종훈‧이자영‧장은미 기자

2018년 민주언론시민연합 선정 ‘올해의 좋은 보도’ 대안 미디어 부문에는 기성 매체에서도 볼 수 없는 ‘탈핵 탐사 기획’으로 많은 언론의 귀감이 된 단비뉴스 환경시리즈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단비뉴스 환경부 나혜인‧강민혜‧김민주‧박희영‧서지연‧윤연정‧남지현‧박수지‧박진홍‧조은비‧박지영‧윤종훈‧이자영‧장은미 기자)이 선정됐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연재된 단비뉴스의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은 6개월간의 사전 취재, 국내외를 아우른 많은 전문가들 인터뷰, 유관기관의 내부 자료, 치밀한 현장 탐사 및 분석 등 탄탄한 취재와 준비를 거친 보도로서 핵발전의 위험성, 탈핵의 필요성, 신재생에너지의 현주소, 찬핵 언론의 배경 등 에너지 정책 전환과 관련된 모든 이슈를 짚었습니다. 이는 타 매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본격적인 탈핵 탐사 기획으로서 오히려 찬핵으로 기울어진 우리 언론계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올해의 좋은 보도’ 심사위원단은 우리 사회의 은폐된 부조리를 고발한다는 대안 미디어의 역할을 십분 해내면서 기성매체보다 더 충실한 탐사 기획을 선보인 단비뉴스 환경시리즈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을 ‘2018년 올해의 대안 미디어’로 선정했습니다.

 

 찬핵 언론과 기관 홍보비와의 관계 파헤친 <단비뉴스>
 찬핵 언론과 기관 홍보비와의 관계 파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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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회 성유보특별상,
‘미투 운동’의 첫발 뗀 서지현 검사‧북한의 본모습 보여준 진천규 기자

서지현 검사는 2018년 1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성추행과 검찰 내 성차별을 고발했습니다. 성폭력을 수사할 책임 기관인 검찰 내 검사조차도 직장 내 성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이는 여성들의 개인적 노력으로 벗어나기 힘든 남성중심주의적 시스템과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metoo)운동은 그동안 성폭력 피해를 말할 수 없었던 여성들의 분투를 폭발적으로 분출시켜 남성중심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고발하고 한국사회가 성평등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제4회 성유보 특별상 선정위원회는 ‘올해 누가 가장 핍박받는 약자들의 목소리를 이끌어냈는지’ 고려할 때 ‘미투 운동’의 시작이 된 서지현 검사가 단연 으뜸이며, 이는 고 성유보 선생님의 ‘언론 민주화 정신’과도 부합한다고 밝혔습니다.

 


 

진천규 기자는 남북관계가 개선되기 전 방북이 사실상 불가능하던 시기부터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북한을 취재하여 북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전했습니다. 북한 측의 검열을 받지 않은 생생한 현재 평양의 모습을 보도해 그 변화상을 보여줬고 북한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까지 담아냈습니다.

이는 ‘레드 콤플렉스’에 찌든 우리 언론의 북한 보도를 뛰어넘은 것이었고 있는 그대로를 보도한다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입니다. 제4회 성유보 특별상 선정위원회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면서 ‘북한 보도’의 악습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진천규 기자를 제4회 성유보특별상에 선정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봉우님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입니다.

자유한국당이 저격한 이 프로그램, 직접 봤더니…

지난 8월 24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EBS 프로그램을 집중 비판했다. 김성태 의원은 “(EBS가) 지속적으로 정치편향 시사프로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정용기 의원은 “EBS 출연진을 보면 특정 정당 의원의 인기관리 프로그램 편성이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김성태 비례대표 의원은 10월 1일 EBS의 보도·시사·오락 프로그램 제작을 완전히 차단하는 ‘한국교육공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실상 EBS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국정감사 기간에도 같은 주장을 펼치며 지속적으로 EBS를 비판했다.

이런 EBS에 대한 비판의 중심에는 EBS <대국민 청원 프로젝트 빡치미>(이하 빡치미)가 있었다. 국감에서도 윤상직 의원은 “<빡치미>는 시사 프로그램입니까, 정권 홍보 프로그램입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주로 프로그램 출연진이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나 정당 소속이라는 점을 들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방송독립시민행동은 “출연진 구성을 두고 정치권이 ‘정치적 편향성’ 운운하는 것은 방송법이 보장한 ‘편성의 독립과 제작 자율성’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며 “가뜩이나 공적 재원 구조가 취약한 EBS에 대해 예산 삭감을 거론하거나 방송 분야를 제한하겠다는 발상은 자유한국당이 아직도 ‘방송 장악’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주장이 난무하는 이 방송을 직접 모니터해보았다. 모니터는 방송 구성과 내용에서 실제로 정치적 편향성이 있었는지, 방송 내용은 유익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회적 공론화 필요한 시의적절한 주제선정 돋보여


2018년 4월 24일부터 7월 17일까지 총 13회에 걸쳐 방송된 <빡치미>는 소제목 그대로 ‘대국민 청원 프로젝트’이다. EBS의 프로그램 홈페이지에는 “대신 화 내드립니다! 한국인을 빡치게 하는 13대 악행, 그 악행을 근절하기 위해 빡치미가 떴다. 극한 취재, 극한 체험, 사회 실험 퍼포먼스까지 당신의 깊은 화를 풀어 줄 <빡치미>만의 처방. 세상에 대한 빡침을 세상을 위한 아름다운 힘으로 빡치미가 이제 화를 좀 내보겠습니다”라는 취지가 실려 있다. 

<빡치미>는 실제로도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적 난제와 풀어야 할 숙제를 12개로 정리해서 방송했다. 1회부터 12회까지 △직장 내 갑질과 불공정 거래 △불법 주정차 및 주차 공간 문제 △1인 미디어 문화 및 이용실태 △대기오염 및 미세먼지 △산업재해와 하청노동자 △과로 및 과로사, 노동자 휴식권 △외모와 사회적 차별, 꾸밈노동 △음주범죄와 음주 감형 문제 △주거 빈곤과 청년임대주택 △불법 촬영과 유포, 리벤지포르노 △반려동물 학대와 동물유기 △직장 내 갑의 횡포와 갑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빡치미>가 방송에서 다룬 주제는 EBS 프로그램이 애초 설정했던 콘셉트에 걸맞게 실제로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일상에서 직간접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들이었으며,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해법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었고 국회가 입법과 정책 보완으로 역할을 발휘해야 하는 분야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빡치미>의 주제와 소재는 정치적 편향성을 논하기 이전에 방송이 적극적으로 다뤄야 마땅한 것이었다. 실제 방송법 6조 5항(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과 7항(방송은 사회교육기능을 신장하고, 유익한 생활정보를 확산ㆍ보급하며, 국민의 문화생활의 질적 향상에 이바지하여야 한다)에 충실한 주제 설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EBS <빡치미>(1회~13회) 방송 주제 분석
 EBS (1회~13회) 방송 주제 분석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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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역할 강조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경청한 <빡치미>

자유한국당은 <빡치미>가 “정부와 여당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또 특정 정당에 유리한 방송 내용과 친정부 성향의 패널을 지적했다. 

모니터 결과 총 12회의 방송 중 정치인이 출연한 방송은 6회였다. 그중에서 민주당 의원이 총 5회를 출연했다. 표창원 의원이 갑질, 불법주정차 편에, 박주민 의원이 산업재해와 과로사 편에, 한정애 의원이 동물학대 편에 출연한 것이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도 산업재해와 과로사 편에 각각 출연했다.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은 9회 청년임대주택 편에 출연했다.

단순 수치만 놓고 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회나 참여한데 비해서 자유한국당 의원이 1회만 출연했으니 패널 선정에서 공정하지 못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빡치미>가 정권과 여당의 홍보 방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BS <빡치미> 방송 스튜디오 출연 패널 정리
 EBS 방송 스튜디오 출연 패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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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발송을 보면 이런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지 알 수 있다. <빡치미>에 출연한 국회의원은 소속 정당이 아니라 입법부의 대표성을 갖고 발언하는 역할을 맡았다. 만약 여야 의원이 출연하여 공방이 주를 이루는 콘셉트이었다면 여야 구성을 보다 정교하게 조율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송에는 정치인뿐 아니라 관련 주제의 피해자 및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다양하게 함께 구성되어 있었다. 이 속에서 출연한 국회의원들은 자기가 속한 정당의 정책이나 법안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국회 차원의 대안과 해법을 모색하는 발언을 했다. 이런 행태는 ‘민생에는 여야와 좌우가 없다’고 강조한 자유한국당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자유한국당 소속 김현아 의원(비례대표) 역시 <빡치미> 9회에 출연해 소속 정당에 편향된 모습이 아니라 국회를 대표해 실력을 발휘했다. 

오히려 <빡치미>는 일반 시민의 참여가 높은 특별함이 있었다. <빡치미>는 매회 주제와 내용에 가장 적합한 전문가를 섭외했고 관련 당사자와 경험자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무엇보다 피해 시민의 작은 목소리를 직접 듣고 피해자 입장에서 현실적인 대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효과적인 개선안을 찾으려 했다.

기존 방송이 보여주기 식에 머물고 피해자의 사연을 단순하게 방송용으로 활용한 것과 달리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가감 없이 보여준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주장처럼 <빡치미>가 편향되고 불공정했다면 각종 사고와 차별의 피해자가 용기 있게 <빡치미>에 목소리를 전달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병폐를 정조준한 시의적절한 주제

특히 <빡치미>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으로 손꼽히는 ‘갑질’ 문제를 1회와 12회에 걸쳐 두 차례나 다룬 점이 눈에 띄었다. <빡치미>는 다양한 직장 내외 갑질 문제를 추적해 갑질이 발생하는 구조적인 원인을 살펴보고 을의 입장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갑질로 피해를 본 여러 피해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시간도 마련했다. 1회에 출연한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은 “을의 입장에서 자기주장과 권리를 당당하기 내세우기 힘든 구조”라고 강조했다. 

<빡치미>는 개인의 인식 변화와 조직적 문화 개선 이외에도 근로기준법을 중심으로 현실의 법과 제도가 제대로 준수되는 것을 강조했다. 법의 사각지대는 입법적 보완으로 채울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12회에 출연한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장은 “(갑질이) 범죄가 되고, 산업재해가 되고, 사람이 잘못되면 죽는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치권이 시민을 위한 갑질 근절에 얼마나 노력했고 또 효과를 보았는지 참고해야 할 지점이었다.

 

 갑질의 구조적 문제와 해결책을 제시한 EBS <빡치미>(위 1회, 아래 12회)
 갑질의 구조적 문제와 해결책을 제시한 EBS (위 1회, 아래 12회)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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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호법’보다 먼저 음주운전 처벌요건 강화를 제안하기도

<빡치미>는 사회적 공분이 크고 대중의 경각심이 높은 대형 사건의 맥을 짚기도 했다. ‘음주 범죄와 음주 감형 문제’를 꼬집은 8회와 이른바 ‘불법 촬영과 유포, 리벤지포르노’를 다룬 10회가 대표적이다. 

이른바 ‘윤창호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처럼 매년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급증하는 추세이며 음주로 인한 각종 사회적 사건의 피해는 사회적 재난에 이를 만큼 심각하다. <빡치미>는 윤창호법에 앞서 음주운전 처벌 요건 강화를 제안했고 주취로 인한 사건사고를 지금보다 더 무겁게 처리할 것을 강조했다. 음주에 대한 인식 전화의 필요성도 덧붙였다. 8회 방송에서 절주 캠페인에 참여한 한 시민은 “술잔은 가벼워도 처벌은 무겁게”라고 제안했다.

<빡치미>는 단순 범죄를 넘어 사회적 폭력 수준으로 심각해진 불법 영상물과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 문제의 폐해도 놓치지 않았다. 10회에 출연한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는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세상의 일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빡치미>는 하나의 산업 수준으로 커진 불법 영상물 유통 시장의 현실에 주목하고 행정기관과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공조와 사법부의 변화를 요구했다.

교육방송의 본분에도 충실한 <빡치미>

EBS의 주요 시청층인 청소년과 유아의 눈높이와 일상에 초점을 맞춘 주제도 돋보였다. 젊은 세대와 청소년층이 즐기는 ‘1인미디어’를 총체적으로 분석한 3회와 교육현장에서 간과하는 ‘미세먼지의 위험’에 대해 지적한 4회가 주인공이다. 

3회에서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1인 미디어와 콘텐츠를 학교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어떻게 접근하고 소비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패널로 출연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대도서관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부모가 함께 1인 미디어 방송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연령대에 맞는 콘텐츠 이용을 강조했다. <빡치미>는 청소년에 유해한 콘텐츠를 근절하기 위해 실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하는 방법 등을 설명하며 시청자 스스로가 문제적 콘텐츠를 판단할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방법까지 소개했다.

4회에서는 미세먼지에 특히 민감하고 취약한 교육현장(초등학교)를 방문해 성인과 일터 위주의 기존 미세먼지 대책의 그늘을 꼬집었다. 방송에 출연한 최재광 서울 동답초등학교 교장은 현재의 교육환경에 대해 “학교는 공기 정화 시설이 부족하다”며 “아이들은 최악의 상황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세먼지 주의보 발령 시 체육 및 야외 교육 활동이 제한되는데 체육관이나 대체 시설이 없는 학교에선 대체 교육이 어려움을 강조했다. 이처럼 자유한국당의 일방적인 주장과 달리 <빡치미>는 교육방송의 본령에 충실한 내용과 필요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방송했다.

자유한국당의 비판은 합리적인 지적인가?

무엇보다 <빡치미>가 다룬 주제는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문제였다. 이는 교육방송의 본분에 충실한 것이며, 프로그램 편성과 구성, 내용에 있어 높은 완성도를 선보였다. 자유한국당의 주장과 달리 정치색은 없었다.

일반 시민의 목소리와 불만에 주목했고 해결책과 대안 역시 당파성과 무관한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 부합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국민과 함께했다. <빡치미>는 매회 국민 청원으로 끝맺는다. 시민들은 조금씩 응답하고 있다. 이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움직일 시간이다. 머뭇거릴수록 세상은 다시 분노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장성욱 님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회원 모임인 방송모니터위원회 소속입니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방송 비평을 직접 해 보고 싶으신 분 △방송을 보고 답답해진 마음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은 분 △언론인 지망생 모두에게 언제나 활짝 열려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에 관심 있는 분은 방송모니터위원회 담당 임동준 활동가(02-392-0181)에게 문의하세요.

100일 이상을 오리 가족에게 푹 빠져 지낸 이야기

지난 5월부터 100여 일 이상 분당 탄천에 나가 오리 가족을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작은 생명들이 전해준 감동적인 순간들을 소개합니다. – 기자 말

날이 차가워지며 탄천은 다시 활기가 넘친다. 지난봄과 여름 다른 곳으로 떠난 물새들이 무리 지어 탄천을 다시 찾은 것. 추워지는 만큼 녀석들의 숫자도 늘어난다.

오리들은 종별로 대여섯 마리 정도씩 몰려다니며 영역을 구축하고 있고, 왜가리는 늘어난 오리들이 불편하다는 듯 왝! 액! 거리며 물을 휘젓고 다닌다.


무리 지어 다니는 오리들을 보니 지난봄부터 여름까지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녀석들이 떠오른다. 청둥오리 새끼들과 그들의 어미. 습관처럼 산책하던 탄천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녀석들이다. 그들을 보며 나는 자연의 오묘함과 냉엄함 그리고 모성애와 가족애를 느꼈더랬다.

탄천은 경기도 용인에서 시작해 성남시를 지나 송파구와 강남구 사이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가는 하천이다. 총 길이는 35.6km이고 그중 약 25km 구간이 성남시 중심부를 지나간다. 난 거기에서도 분당구 구미동에서 정자역을 지나 수내역을 거쳐 서현역 근처까지의 구간을 주로 다녔다.

작년 여름쯤부터 탄천의 오리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지켜보다 보니 그들의 모습에서 질서도 보였고 살아가는 지혜도 엿볼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사진과 글로 SNS에 올리는 게 즐거운 일상이 되었다.

그들의 생태에 관심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관련 자료도 찾아보게 됐다. 덕분에 4월에서 7월 사이에 번식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올 5월 초부터는 은근히 새끼 오리들을 볼 수 있길 기대하며 자세히 살펴보며 다녔다. 사진으로만 본 새끼 오리들은 앙증, 귀염, 이쁨 그 자체라 직접 보고 싶었다.

그런데 5월 중순, 정확히는 2018년 5월 15일 밤부터 폭우가 내렸다. 뉴스에서도 “5월에 이례적인 폭우”라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 베란다가 깨지나 싶을 정도로 들이붓는 비였다. 핸드폰에 재난경보도 뜨고. 보통 그 정도로 비가 내리면 탄천은 범람했었다. 탄천은 넘쳐서 기슭은 물론 산책로와 둑방까지 물이 차오를 게 분명했다.

기를 쓰고 헤엄치는 오리들, 감동 그 자체

걱정됐다. 당시까지 목격하진 못했지만, 어디선가에서는 오리가 산란해서 알을 품고 있을 것이었기에. 물과 가까운 뭍 어디에선가에서는. 그러니 넘치면서 벌어질 일들이 걱정됐던 것. 둥지로 물이 차오르면 벌어질.

 

폭우 내린 후 탄천 폭우 내린 탄천은 때론 도보교가 잠긴다.
▲ 폭우 내린 후 탄천  폭우 내린 탄천은 때론 도보교가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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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자마자 탄천으로 나갔다. 이미 모든 진입로에는 노란 통제선이 처져 있었다. 평소 즐겨 건너던 징검다리는 물에 잠겨 물살이 빨라지는 급류로 변했다. 산책로와 넓은 잔디밭까지 잠겼다.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집에서 탄천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지만, 신발과 옷은 흠뻑 젖었다. 우산도 소용없었다. 다행히 오전부터 비는 잦아들었다. 오후에 산책로에 물이 살짝 빠지자 다시 나가보았다.

멀리서 본 탄천과 가까이서 본 탄천은 소리부터 달랐다. 물이 흘러가는 진동과 소음이 함께 느껴졌다. 상류에서는 다양한 쓰레기들이 배처럼 흘러왔다. 저기에 오리들이 휩쓸린다면? 그럴 리 없다. 야생에서 뼈가 굵은 오리들은 비가 굵어지자 안전한 뭍에 올라왔을 것이다.

진짜였다. 분당 주택전시관 인근의 기슭에는 오리들이 올라와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부는 물에 잠긴 물억새 덤불 사이로 이동하고 있었고. 물에 잠긴 덤불은 탄천 중앙보다는 잔잔한 수로가 됐다.

그곳에서 보았다. 어미의 꽁지깃 가까이 붙어 일렬로 이동하는 새끼오리들을. 순간 호흡이 멈추는 줄 알았다. 그 조그만 털 뭉치들이 기를 쓰고 헤엄치는 모습이라니. 한동안 따라가며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어미 오리와 새끼 오리 2018년 5월 16일 폭우 내리던 날 새끼 오리가 태어났다. 이들 가족은 무사히 탄천으로 이소하여 오순도순 살았다.
▲ 어미 오리와 새끼 오리  2018년 5월 16일 폭우 내리던 날 새끼 오리가 태어났다. 이들 가족은 무사히 탄천으로 이소하여 오순도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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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잔잔하게 흐르는 곳에 다다르자 녀석들은 물살을 헤치고 건너편 기슭으로 건너갔다. 나중에 카메라를 확인하니 제대로 찍힌 게 없다. 초점이 안 맞는데 흔들리기까지. 그렇지만 지난 몇 달간의 바람을 이룬 날이었다.

100일 동안 탄천에 나갔다, 오리들 때문에

간밤의 폭우를 견디고 알을 깨고 나와 안전하게 탄천까지 이소를 한 새끼오리들과 그 11마리들을 이끈 어미가 대견했다. 그날의 그 기억 때문에 그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탄천에 나갔다. 그렇게 100여 일을.

그 100여 일이 행복했다. 때론 새벽에 때론 저녁에, 시간이 허락되면 항상 탄천으로 향했다. 어느덧 나의 가장 중요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던 것.

 

▲ 새끼 오리들 탄천을 건너다  2018년 5월 16일 아기 오리와 어미 오리가 탄천을 건너고 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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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오리들을 쫓아다니며 관찰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린 새끼를 보호하느라 이동 시간 외에는 덤불에 숨어지내기 때문이다. 숨어 있으면 절대 볼 수는 없고 산책로를 오르내리다 이동하는 모습을 운 좋게 목격하게 되면 그때부터 스토커처럼 쫓아다녔다.

어린 녀석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항상 붙어 있는 어미와 어느덧 크기가 비슷해졌을 때의 그 대견함이란. 그렇지만 항상 아름다운 모습을 본 건 아니었다.

처음에 11마리를 보았지만,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많은 상상을 했다. 사냥 당했을까 아니면 아팠을까. 탄천에는 너구리, 고양이, 맹금류 등 포식자도 산다. 지난가을쯤 마지막으로 카운트했을 때 여섯 마리만 남았었다. 형제자매들이 사라져도 녀석들은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런 그들 옆에는 항상 어미가 있었다. 엄마가. 그녀의 헌신적 모습에서 모성애를 느꼈다면 과장일까? 항상 주변을 살피며 새끼들만 바라보던 그녀의 등이 눈에 선하다.

이렇게 마음을 붙이다 보니 어느덧 100여 일을 넘게 지켜본 것. 물론 탄천에는 이들 말고도 많은 생명이 살고, 그들은 올 한해 많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혼자 간직하기에는 아까운 이야기들을 모아서 함께 나누고 싶어졌다. 매년 이맘때만 되면 “올 한해 유독 힘들었다”라며 서로들 위로한다. 동물들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는다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오피니언뉴스에도 실립니다.

[모이] 어라! 이거 너무 위험한거 아닌가요?


경남 창원에서 구미, 상주, 문경, 그리고 청주까지 이어지는 25번 국도에서 본 풍경입니다. 바로 구미에서 상주 쪽으로 가다가 사이클 선수로 보이는 두 사람이 승합차 뒤에 바짝 붙어서 나란히 서서 달리고 있네요.

 


자동차 뒤 트렁크를 열고 가니, 뒤쪽에서 보면 잘 보이기는 했어요. 하지만, 앞서가는 자동차는 앞 상황을 잘 알고 가겠지만, 이 자전거들은 앞을 전혀 볼 수 없답니다. 오로지 앞선 자동차만 믿고 가는 거였어요.

추운 겨울이니,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에 바람의 저항을 막을 수는 있지요. 그건 틀림없습니다. 자동차가 바람을 막아주었으니, 페달질을 하기는 훨씬 손쉬울 겁니다.

그렇지만, 오로지 자동차만 믿고 따라가다 보면, 자동차 앞에서 어떤 돌발 상황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태이지요.

 


그 돌발 상황 때문에 앞차가 갑자기 멈춰버린다면… 아니면, 본능적으로 앞차는 돌발 상황을 피했지만, 뒤따라가던 자전거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이다 보니, 피할 수도 없지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더구나 이 도로는 제가 알기로는 신호등이 없는 자동차 전용도로입니다. 시속 80km가 제한속도이긴 하지만 사실 거의 모든 차량이 100km 가까이 속도를 내며 달릴 때가 많답니다.

그러다 보니, 진짜 돌발 상황이 많아요. 갓길에 비상등 켜고 서 있는 차도 자주 보고요. 또 한쪽은 낙동강, 반대쪽은 농가와 들판들이 있어 유난히 로드킬이 심한 곳이랍니다.

 


우리도 한 달이면 이 25번 국도를 네댓 번은 달려갑니다.


실제로 고라니, 개, 고양이 등 도로에 널브러져 만신창이가 된 로드킬 주검들을 자주 봅니다. 그만큼 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는 곳이랍니다. 이런 위험한 길에서 자동차를 앞세워 자전거를 탄다는 건 누가 봐도 위험한 일이랍니다.

그리고 이 25번 국도에서는 지난 2012년 5월 1일, 경북 의성군 단밀면 25번 국도에서 DMB를 보면서 운전하던 25톤 화물트럭이 당시, 도민체전을 앞두고 훈련 중이던 상주시청 소속 여자 사이클 선수단을 덮쳤던 큰 사고가 난 곳이지요. 이 사고로 꽃 같은 사이클 여자 선수 세 명이 숨지는 아찔한 사고였답니다.

아무리 훈련도 좋지만, 이런 방법으로 하는 건 좀 아니다 싶네요. 정말 위험한 일이랍니다.

훈련을 하려면, 이 아래로 그대로 이어지는 지방국도를 달리면서 하는 것도 좋을 겁니다. (사실, 제가 예전에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에도 구미에서 의성, 상주, 문경 등 구미와 가까운 둘레 곳곳에 갈 때에도 바로 아래에 놓인 옛길(지방국도)로 다녔지요.) 사이클 선수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지구력을 키우기에도 굉장히 좋은 길이랍니다.

자전거를 타더라도 이왕이면, 좀 더 안전하게 훈련을 했으면 좋겠네요. 보기만 해도 너무나 아찔하고 위험한 행동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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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을 농사에 활용하면 생기는 이득

 가벼운 낙엽도 모으면 무겁지만 티끌만한 흙으로 돌아간다
 가벼운 낙엽도 모으면 무겁지만 티끌만한 흙으로 돌아간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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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재배(난방 비닐하우스)를 하지 않는 농장의 겨울풍경은 적막하다. 얼었던 흙이 풀리는 24절기의 시작인 입춘(立春) 무렵까지 두 달 남짓 쉬는 시간이다. 농사를 짓는 동안에는 주 5일을 일하고 쉬거나, 휴가를 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다.

바쁜 농사철에는 쉼 없이 몸을 쓰는 노동을 하지만, 흙 냄새를 맡으며 바람에 땀을 날릴 때는 나에게서 사람 냄새를 느낀다. 또한, 다양한 생명체에게서 느끼는 생태감수성을 마음껏 누리는 놀이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이러한 삶의 가치관을 갖지 않으면 농사는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겨울 동안의 긴 휴식 시간이 아니더라도 바쁜 농사철에 어쩔 수 없이 쉬는 날이 있다. 비가 오는 날이 그렇고, 흙이 젖어 있으면 밭에 들어가지 않거나 흙을 갈지 않는다. 흙속에 수분이 많으면 위에서 누르는 압력으로 흙 입자가 뭉치고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소위 ‘떡’이 된다는 표현을 하는데, 굳어버린 흙은 겨울을 지나면서 압축과 팽창의 얼었다 풀렸다를 반복하면서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농부와 함께 생명을 키워낸 흙에게도 겨울은 휴식의 시간이다.

겨울이 쉬는 시간이라고 해도, 농사일을 만들려고 하면 얼마든지 일거리를 찾아낼 수는 있다. 가끔씩 농장에 가면 운동삼아 몸을 움직이려고 남겨 두는 일이 있다. 그 일의 대부분은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을 밭으로 실어다가 이불처럼 덮어주는 일이다.

흙을 두툼하게 덮었던 낙엽은 날씨가 풀리면서 점차 분해되고 거름이 되어 흙속으로 돌아가는데 일년이 걸리지 않는다. 밭갈이를 하면서 낙엽을 흙속에 퇴비처럼 넣는 것은 흙을 부드럽게 해주고 지력(地力)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낙엽을 농사에 활용하면 유익한 것들은 열손가락을 꼽을 만큼 많다.

  

 낙엽을 밭으로 옮겨놓으면 농사에 유익한 흙이 된다
 낙엽을 밭으로 옮겨놓으면 농사에 유익한 흙이 된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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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잎과 솔잎에 대한 오해

수레에 담은 낙엽을 실어다가 흙을 덮어주는 일은 단순하고 반복적이지만, 이마에 땀이 맺히고 호흡이 거칠어지는 고된 일이기도 하다. 낙엽 덮는 것을 따라하던 인근의 농부는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숨을 헐떡거린다.

그럴 때마다, 겨울은 길고 봄이 올 때까지 운동 삼아 조금씩 하라고 말한다. 농사는 체력과 정신력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몸을 쓸 줄 알아야 나중에라도 골병이 들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휴식을 하는 겨울에 조금씩 몸 쓰는 일을 하는 것은 근육이 굳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흙이 딱딱하게 뭉치는 것처럼, 농부의 몸도 굳어버리면 그것만큼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작년 겨울은 매우 춥고 길었던 만큼, 움직이지 않았더니 몸무게가 5kg 늘어나고 몸이 굳어서 농사 시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흙에 낙엽을 넣는 것을 두고 농사에 도움이 되느냐는 물음은 여전히 많다. 또한, 은행잎은 벌레도 안 먹고 솔잎(소나무) 아래는 풀도 없을 만큼 독(毒)해서 농사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는 그럴 듯하다. 은행잎을 벌레가 안 먹는 것은 특유와 냄새(피톤치드)가 식욕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산성(Ph7 아래의 수소이온)이 높은 흙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풀이 잘 자랄수 있는 토양 조건은 아니다. 제 역할을 다하고 떨어진 낙엽은 낙엽일 뿐, 우려할 만한 문제는 없으며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낙엽이 분해되면서 흙은 부드러워지고 양분이 된다
 낙엽이 분해되면서 흙은 부드러워지고 양분이 된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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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만드는 유기물과 미생물

낙엽은 잘 썩지 않아서 거름이 되겠느냐는 이야기도 듣는다. 낙엽은 풀과 달라서 분해되는데 시간이 걸린다. 나무는 리그닌이라는 물질로 딱딱하게 줄기를 만들며 제 몸의 균형을 잡고 높이 자란다. 딱딱한 나무의 리그닌은 미생물이 분해하는데 시간이 걸리며, 얇은 낙엽도 환경조건에 따라서 분해되는 시간의 차이는 있다.

낙엽이 흙에 닿으면 토양미생물에 의해 리그닌이 분해되는 퇴비(compost)화 과정속에서 점차 형체가 바뀐다. 최종적으로 분해되고 보이지 않는 부식(humus)이 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낙엽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서 대부분 이산화탄소의 기체로 대기중으로 사라지고, 일부는 흙속에 남는다. 낙엽뿐만 아니라, 생명이 끝난 모든 유기물은 미생물이 분해하면서 내놓는 유기산 물질에 의해 흙속의 광물도 분해되어 양분으로 순환하면서 지력을 유지한다.

토양미생물은 유기물과 광물을 분해하여 흙을 만들어서 생명체에게 양분으로 되돌리는 지속가능한 순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순환이 어떤 이유로 안 된다면 토양 생태계가 파괴되는 환경 문제와 먹을거리의 불안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이유는 자연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화학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에 색을 입히다”

바닥의 시간 캔버스의 유채 50x72. 2018/신란숙
▲ 바닥의 시간 캔버스의 유채 50×72. 2018/신란숙
ⓒ 신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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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길을 잃거나 우물을 찾고자 할 때,

별과 은하수로 방향을 잡고

그들만이 아는 대지의 아주 작은 맥박에도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

어떤 신호의 안내를 받는 것은 생명의 신호를 받기 위한 생존법이다. 

몸도 낮추고, 마음도 낮추고, ‘나’의 전부를 한없이 낮춘 상태에서 침잠하듯 깊은 어둠 속에 

침묵하고 있어보니, 바닥에 누워있던 생각도 일어나고

마음도 일어나고, 몸도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우리를 인도하는 생명의 신호는 높이 솟았을 때보다 

오히려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바닥에서 더 잘 들린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 문혜영 <바닥의 시간> 중에서

 

“언어에 색을 입히는 이번 콜라보 전시는 문혜영 작가의 시와 수필에서 건져 올린 이미지에 신란숙 화가가 자신의 영감에 따라 색을 얹어 시도된 두 우주의 어우러짐이다.”

36년 경력의 수필가로서 문혜영 작가는 1982년 등단, 저서로는 수필집<언덕 위에 바람이>,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고통을 알리>, 선집 <바닥의 시간> 등이 있으며, 시와 사진전으로 2017년 <더 가까이, 더 멀리>, 2018년< 시간이 머문 자리>를 개최해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신란숙 화가는 작년 첫 개인전시<She story>를 열었던 내공 깊은 신예다. 바로 그 전시에서 운명처럼 문혜영 작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신란숙 화가에게 문혜영 작가의 수필과 시는 “하얗게 쏟아져 내린 별들의 언어로 다가와 상상력을 끌어 올리고 창작열을 자극하는 샘물처럼 그림에 영감을 준다”고 하였다. 

그리고 글의 끌림과 향기에 취해 일 년이 넘는 시간동안 행복하게 작업했다고 말한다.

 


 

난 언제 지친 길손에게

빈 의자 내 놓은 적 있었던가

난 누군가의 삶에 

편안한 의자 되어본 적 있었던가

– 문혜영 <포토포엠> 중에서



 


꽃을 꽃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사실’이 되지만, 꽃을 꽃이 아니라고 말할 때 그것은 ‘예술’의 출발점이 된다. 전자는 ‘명사’라는 규정적 속성에 제약된 꽃으로 발화(發話)되지만, 후자의 꽃은 명사의 바깥에 존재하는 ‘무규정적인 가능성(chaos)’을 청자에게 던져준다.

신란숙 작가의 작품은 꽃을 꽃으로 그리지 않는 ‘생각의 비틀기’로 부터 출발한다. 작가의 그림은 관성적 사고의 ‘탈주’가 시작점이 되어 컴퍼스가 원을 그리듯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언어를 통한 사유와 영적인 감각은 들숨과 날숨이 되어 작품의 ‘숨결’을 이룬다.

작품 곳곳에 나타나 있는 ‘결’은 작가의 호흡이 만들어낸 상징이자 ‘마음결’을 쓰다듬는 치유의 손길이기도 하다. 일상의 고단함과 지루함, 내면의 상처와 불안은 우리를 종종 자기 자신의 포로로 만들곤 한다. 의식의 방어막으로 둘러친 겹겹의 존재는 신란숙 작가만의 고요, 평정, 너그러움의 시선 속에서 겉모습 너머에 있는 ‘존재의 특별함’과 대면하게 된다. 익숙하지만 낯선 존재는 색의 감각을 통해 다시 질문을 던진다. 열려있는 질문으로 감상자를 이끄는 게 신란숙 작가의 철학이기도 하다.

질문은 내면 깊은 곳에 뿌리를 둔 치유적 힘을 이끌어 낸다. 작가의 예술(art) 세계는 약동하는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음으로써 일상에 무뎌진 심장(He-art)에도 리듬이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리토르넬로(ritornello)는 음악이 연주될 때 어떤 악주가 반복되면서 연주되는 것을 말한다. 단순한 반복이 아닌 변주를 통해 리듬을 만들어 내는 것이 특징이다. 신란숙 작가만의 특별한 색色이 갖는 ‘희망의 리토르넬로’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원주 시립 중앙도서관 1F 전시실, 2018년 12월 26일(수)~12월 30일(일)

문학의 코스모스와 예술의 카오스 ‘사이’

헤이리가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


 

#1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헤이리’라고 누군가가 언급했습니다. ‘가장’이나 ‘최고’같은 최상급 수식어나 ‘***보다’같은 비교급 말을 좋아하지 않는 저는 이 말이 등장할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었습니다.

모티프원 옆 작은 동산 숲속에서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마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수식어 속의 그 ‘가장’은 개발 욕심을 줄인 그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헤이리는 택지 조성이 이미 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원형지 그대로를 구입해 어느 곳에, 얼마쯤의 집을 앉히고 어디를 그대로 둘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택지화 하지 않는 많은 공유지를 먼저 할당했습니다. 

그 결과 노을 동산을 비롯한 작은 산들과 갈대늪같은 소택지가 인공화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 필지도 반 이상을 건물로 채우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건물 높이도 모티프원이 자리한 게이트 커뮤니티 지역은 2층, 다른 문화비즈니스 지역은 3층을 넘지 못하도록 약속했습니다. 그 결과 약 70%가 녹지인 상태가 될 수 있었고 어느 곳에서나 낮은 산에 시선이 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티프원에서 불과 100m을 왔을 뿐인 아침 숲속은 마치 먼 곳의 여행지처럼 달랐습니다. 그곳은 21년 전 헤이리 마을이 들어서기 전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고, 50년, 100년 전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은 모습일 것입니다.

눈앞에 필경 지난여름에 2세를 키워냈을 새 둥지가 있고 키 큰 참나무 끝에는 아침 모임에 나간 까치들의 까치집이, 그리고 그 숲 아래에 헤이리 사람들의 집이 보입니다.

 

 지난여름 2세를 끼워내고 떠난 여름새의 빈둥지, 그너머에 토박이새 까치집, 그 너머에 사람의 집, 헤이리. 헤이리마을이 만들어지고 21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숲과 새,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은 사들인 땅의 많은 부분을 숲으로 둔 선택때문이다
 지난여름 2세를 끼워내고 떠난 여름새의 빈둥지, 그너머에 토박이새 까치집, 그 너머에 사람의 집, 헤이리. 헤이리마을이 만들어지고 21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숲과 새,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은 사들인 땅의 많은 부분을 숲으로 둔 선택때문이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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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눈을 돌리자 모티프원 지붕너머로 임진강이 보이고 그 강너머의 북한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

 

 겨울숲의 진경은 가지만 남은 나무의 숨죽인 단출함과 하늘의 푸른 서늘함이 만들어내는 조화이다.
 겨울숲의 진경은 가지만 남은 나무의 숨죽인 단출함과 하늘의 푸른 서늘함이 만들어내는 조화이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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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들어 세 번째 눈이 내렸습니다. 아침 포슬눈으로 내렸지만 나뭇가지 위에서는 눈꽃이 되었습니다. 시선을 서재 밖으로 두고 날리는 눈을 지켜보고 있자니 눈덩이 같은 것이 정원에 내려 앉았습니다. 장끼였습니다. 정원을 가로질러 걸으며 먹이를 찾았습니다.

 

 정원으로 날아든 장끼. 그가 사람도 자연의 일부임을 알게한다.
 정원으로 날아든 장끼. 그가 사람도 자연의 일부임을 알게한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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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작살나무에는 수십 마리의 참새가 쑥새와 더불어 휴식했습니다. 이렇듯 공존은 내 것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들이는 일임을 자연은 때로는 선물로, 때로는 꾸짖음으로 일깨워줍니다.

  

 서재앞 좀작살나무는 참새들이나 딱새, 직박구리들의 놀이터입니다.
 서재앞 좀작살나무는 참새들이나 딱새, 직박구리들의 놀이터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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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구조물로만 채워진 양보 없는 헤이리가 아님이 참 다행입니다. 헤이리 안에서 여전히 온갖 생명들이 함께 잠들고 함께 일출을 맞으며 공존할 수 있는 생태적 배려, 이 말 앞에 ‘가장’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면 덜 부끄럽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