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타] 다비치의 유쾌한 가족사진 화제 (feat.반려견 휴지·감자)

다비치의 유쾌한 가족사진 화제 (feat.반려견 휴지·감자)그룹 다비치의 유쾌한 가족사진(?)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다비치 멤버 강민경은 오늘(2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휴지 생일 기념으로 감자네와 가족사진을 찍었답니다! 이 사진의 제목을 지어주세요!”라며 사진 두 장을 게재했습니다. 휴지와 감자는 각각 강민경과 이해리의 반려견입니다.

공개된 사진에는 밭을 배경으로 농부 컨셉을 한 강민경과 이해리가 반려견 휴지와 감자를 안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특히 인형 비주얼을 자랑하는 반려견들의 귀여운 모습이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다비치의 유쾌한 가족사진 화제 (feat.반려견 휴지·감자)또 다른 사진 속 태양으로 변신한 반려견 휴지와 밭 위의 진짜 감자(?)로 변신한 반려견 감자의 유쾌한 합성 사진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이해리 또한 같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하며 “휴지 생일 기념 가족사진♥”이라고 글을 남겼습니다.

다비치는 평소에도 반려견 사랑이 유별나기로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누리꾼들은 “감자밭 휴지 걸렸네”, “휴지네 감자농장”, “해리읍 민경면 휴지동 감자리”, “휴지야 태어나줘서 감자해” 등의 재치있는 댓글을 남기며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다비치는 최근 신곡 ‘너에게 못했던 내 마지막 말은’을 발표하며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구성=한류경 에디터, 검토=김도균, 사진=강민경 인스타그램)

(SBS 스브스타) 

자유한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을 ‘퀴어당’이라고 불렀다

자유한국당이 더불어민주당 당원들의 서울 퀴어퍼레이드 참석을 두고 “차라리 ‘퀴어당’으로 커밍아웃하라”고 비난했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20일, ”동성애 축제에 민주당 깃발이 휘날릴 예정”이라며 ”이 축제는 과도한 노출과 노골적인 행동, 선정적인 문구들로 논란이 되어 온 행사”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동성애 문제는 단순한 찬반 문제를 넘어 법조계, 종교계, 의학계 등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매우 민감한 문제”라면서 ”국민의 눈치를 보고 표를 의식해야 하는 ‘박쥐’ 정치인은 찬성도 반대도 하지 못하고 늘 애매모호하게 대처해 왔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했다. 민 대변인은 “2017년 당시 문재인 후보는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동성애에 대해 ‘반대 한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바로 이틀 후 ”군 내 동성애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말했다”며 ”오락가락 대통령을 배출한 당 답게 이번에도 민주당은 ‘박쥐당’ 행세를 하며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이어 ”‘더불어민주당‘은 ‘더불어퀴어당’으로 커밍아웃해야 하라. 그것이 국민에게는 더 이롭다”며 ”반대하는 국민의 환심도 얻고 싶고, 찬성하는 국민의 지지도 얻고 싶다면 차라리 정당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뉴스1

19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주한미국대사관에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현수막이 걸려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오는 31일부터 열린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 민주당에게 ‘박쥐‘라고 비난하며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밝히길 요구했던 자유한국당은 지난 17일 당대표의 입을 통해 공식적으로 ‘동성애 반대’ 입장을 냈다. 황교안 대표는 당시 ”퀴어축제를 사진으로 보면서 정말 놀랐다”며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SBS Star] Fans Freak Out over a ‘Mysterious Hand’ Spotted in NCT JAEHYUN’s Photo

Fans of K-pop boy group NCT have been freaking out over a mysterious hand that was found in one of the group’s members JAEHYUN’s photo.

On May 20, JAEHYUN took NCT’s sub-unit NCT 127’s official social media account and shared a series of his photos taken in front of a beautiful ocean in Vancouver, Canada.
JAEHYUNJAEHYUNJAEHYUNAmong the four photos, one stood out in particular for showing a mysterious hand grabbing JAEHYUN’s left ankle.
JAEHYUNJAEHYUN even left a comment that had fans freaking out even more, “WHAAATT???!! What is this???”

The hand was about to remain as a mystery; until one fan who happened to be at the same spot as NCT 127 members revealed the truth behind JAEHYUN’s photo.
 

The fan captured the moment of NCT 127 playing around with a plastic toy!
NCT 127Meanwhile, NCT 127 is set to make its comeback with its fourth mini album ‘NCT #127 WE ARE SUPERHUMAN’ on May 24.

(Credit= ‘NCTsmtown_127’ ‘unitaIent’ Twitter)

(SBS Star) 

추사, 를 예견하다

 

 심훈가(家) 종손 심천보 심훈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심재영 고택’ 사랑채 마루에 앉아 있다. 심 이사장 뒤에 걸린 ‘청련시경’ 현판은 예산군이 감사의 의미로 해초 박학규 각자장을 통해 만들어 선물한 모사본이다.
 심훈가(家) 종손 심천보 심훈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심재영 고택’ 사랑채 마루에 앉아 있다. 심 이사장 뒤에 걸린 ‘청련시경’ 현판은 예산군이 감사의 의미로 해초 박학규 각자장을 통해 만들어 선물한 모사본이다.
ⓒ 김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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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련시경(靑蓮詩境). ‘당나라 시인 이백이 시를 지을 만한 감흥을 주는 장소’.

추사 선생이 소설가 심훈의 조상에게 ‘집안에서 이백을 상징할 만한 문장가가 나올 것’을 예견해 선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현판이다. 이를 증명하듯 심훈은 1935년 농촌계몽문학 <상록수> 등을 통해 우리나라 문학사에 큰 획을 긋는다.

지난 10일, 충남 예산군청 상황실에서 추사 김정희 선생의 유물 ‘청련시경 현판’ 기증식이 열렸다. 심훈가(家) 종손 심천보 심훈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아무 조건 없는 기증”이었다.

추사 선생의 유물을 간직하고 기증하기까지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심훈이 집필활동을 벌였던 당진 ‘심재영 고택’에서 기증자 심천보 이사장을 만났다.

추사 선생과 심훈가 사이에는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이 둘은 어떠한 사연으로 ‘청련시경’을 통해 만나게 됐을까.

심훈 가문이 170여년 동안 소장해왔던 청련시경 현판에 대해 정확한 배경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후대들은 “추사 선생께서 심씨 선대 조상께 주신 현판”이라고만 알고 있다.

“‘어떤 선조께서 추사 선생과 교류했을까’ 족보를 보며 시대를 맞춰봤습니다. 저의 5대 조부이신 ‘심의붕’ 선조께서 조선 돈령부(敦寧府) 관직 ‘동지돈령부사’를 지내셨는데, 이때 추사 선생과 교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액자에 걸어 놓은 족보를 가리키며 심 이사장이 이야기를 꺼냈다.

이 현판은 동작구 흑석동의 선대 종가에 80년 가량 있다가 심 이사장의 부친 심재영 선생이 1930년 당진으로 이주하며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25년여 전 도난 우려 때문에 방문을 잠궈 놓고 실내 보관하기 전까지는 사랑채 마루 위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제가 대학 졸업 이후 미국에서 오래 살다 2011년에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돌아오니 이 현판을 포함해 심훈 선생 관련 유물이 많이 보관돼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추사 선생 현판을 어떻게 할까하다, 후세에 전해지고 알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무상기증을 결심했어요.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집안에서의 반대는 없었을까.

“동생들에게도 의견을 구하니 모두 동의했죠. 처음에는 심훈기념관에 놔야 할까 했지만, 추사 선생과 직접 관련 있기에 추사의 고장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170여년 우리 집안 사랑채에 걸어 놓고 자랑했으니 족하고 감사하며 영광입니다.”

그가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할 때 후한 기증문화를 몸소 익힌 것도 이번 결심에 보탬을 줬다고 한다. 그는 “이 기회에 후세에 전해야 하는 유물들을 기증하는 문화가 확산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그는 예산군청에서 있었던 기증식에서 세한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을 정도로 세한도에 얽힌 가르침도 좋아한단다.

“저는 80년 평생을 살면서 항상 의리를 버리지 않고 살려 노력했습니다. ‘겨울이 돼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추사 선생이 제주도 유배 시절 자신을 잊지 않고 변함 없이 대하는 제자 이상적에게 보낸 글은 의리의 사람이 되라는 우리 세대를 향한 큰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심훈가와의 동거를 마치고 추사의 고장 예산으로 둥지를 옮긴 ‘청련시경’. 25일부터 추사기념관에서 만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직접 취재

가수 김건모 부친상에 대한 SBS ‘미운 우리 새끼’ 측 입장

가수 김건모가 부친상을 당한 가운데 SBS ‘미운 우리 새끼’ 측이 ”방송 일정 변동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20일 가요계에 따르면 김건모의 아버지 김성대씨는 지난 19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세.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에 마련됐으며 김건모와 형제들, 어머니 이선미 여사가 빈소를 지키고 있다.

‘미운 우리 새끼’ 관계자는 20일 뉴스1에 ”김건모가 부친상을 당한 것이 맞다”며 ”다만 이로 인한 방송 일정 변동은 없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작진은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

‘미운 우리 새끼’ 측은 최근 방송에 등장하지 않는 이 여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미운 우리 새끼’ 관계자는 OSEN과의 인터뷰에서 ”이 여사는 최근 건강상 이유로 녹화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한편 김건모 부친의 발인은 오는 22일 오전 9시 30분이며 장지는 용인 로뎀파크다.

만인을 울린 사모의 노래, 그 씁쓸한 여운

5월에는 유독 많은 기념일이 있다. 그 중에서도 5월 8일 어버이날은 오랜 역사에 얽힌 다양한 곡절과 사연, 그리고 노래를 품고 있다. 5월 두 번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기념한 미국의 영향으로 약 백 년 전쯤부터 한국에서도 기독교인들 중심으로 어머니날을 챙기기 시작했고, 1955년 9월에는 국무회의 의결에 따라 5월 8일이 어머니의날로 공식 확정되었다. 이후 1973년에는 기념일 이름이 어버이날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름이 달라지기는 했어도 어버이날에 많이 듣고 부르는 노래는 여전히 어머니 중심이기는 하다. 해방 직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어머님 은혜>도 그렇고, 그보다 앞서 발표된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어머니(의) 마음>도 그렇다. 삼일절이나 광복절처럼 어버이날 노래가 공식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두 곡은 사실상 그런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양주동이 작사하고 이흥렬이 작곡한 <어머니(의) 마음>은 그냥 어버이날에만 국한되는 노래에 그치지 않고, 시공을 뛰어넘어 많은 이들의 감동을 이끌어낸 사모의 명작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부르면서 뭉클한 떨림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작곡자 이흥렬은 1976년 5월 신문 인터뷰를 통해 <어머니(의) 마음>을 만들던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이 곡을 만든 것은 1935년으로 기억돼요. 양주동씨가 발표한 시를 어느 잡지에서 읽고 큰 감명을 받아 곡을 붙였지요.” 같은 인터뷰에서 작사자 양주동은 “이 곡은 일제, 해방 후를 가리지 않고 민족을 초월하여 사람의 가슴을 울려 왔습니다.”라고 했는데, 이를 통해 <어머니(의) 마음>이 광복 이전에 만들어졌음을 역시 알 수 있다.

그런데, 작자 두 사람의 말에는, 특히 이흥렬의 말에는 사실을 그대로 밝히지 않은 은폐와 모호함이 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순차 간행된 <양주동 전집>을 보면, <어머니(의) 마음>이 따로 수록되어 있지 않다. 양주동 본인의 말대로 ‘이 시는 나의 시 작품 중 가장 알려진’ 대표작임에도 불구하고 전집에 수록이 되지 않은 것이다. 이흥렬은 정말 1935년쯤 어느 잡지에서 양주동의 시를 보고 곡을 붙였던 것일까?

<어머니(의) 마음>이 실제 광복 이전 잡지에서 확인되기는 하나, 이흥렬의 얘기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1941년 9월 잡지 <삼천리>에서는 <어머니 마음>을 ‘신가요집’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면서 이런 설명을 붙여 놓았다. “이상의 가요 수십 편은 모다 조선방송협회에서 일반 가정에 좋은 노래를 보내 드리고자 시단 제씨에 위촉하여 작사케 하여 작추 이래 방송하여 온 모든 요곡들이다.” 그리고 1941년 2월 잡지 <家庭の友>에서는 ‘가정가요의 정화’라는 제목으로 역시 <어머니 마음>을 수록했다. 1940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방송협회의 <가정가요 제1집>에도 <어머니의 마음>이 수록되어 있다. <어머니(의) 마음>이 방송, ‘가정가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이로써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방송을 통해 유통된 ‘가정가요’가 어떤 것이었는지에 관해서는 1939년 1월 신문 기사를 참조할 수 있다. ‘조선적 음악을 어떻게 창조해야 할까’라는 좌담회 기사에서 경성방송국을 대표해 참석한 이혜구가 “유행가는 아니고 그렇다고 예술적 리드도 아닌 중간의 것으로서 일반 가정에서도 부를 수 있는 노래, 가정가요라고 이름할 수 있을까요. 이런 것을 모집해 볼까 하는 것입니다.”라고 계획을 설명한 것이다. 실제 이러한 계획에 따라 1940년 8월부터 ‘가정가요’가 방송을 통해 보급되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마음>도 다음달 9월에 처음 방송으로 소개되었다.
 

 '가정가요' <어머니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1940년 9월 16일 방송 프로그램 기사” class=”photo_boder”></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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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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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정리해 보면 <어머니(의) 마음>이 만들어진 경위는 다음과 같다. 1939년부터 준비된 경성방송국의 계획에 따라 양주동, 이흥렬이 위촉을 받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가정가요’ <어머니(의) 마음>은 1940년부터 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던 것이다. 1935년 무렵 잡지를 통해 작가 간 교감이 있었다는 이흥렬의 회고는, 뒷받침할 수 있는 다른 자료가 발견되지 않는 한 사실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흥렬은 왜 사실과 다른 발언으로 <어머니(의) 마음> 실제 창작 배경을 감추었던 것일까? 이는 아마도 경성방송국, 그리고 그 계획으로 시작된 ‘가정가요’의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경성방송국은 사실상 국영이나 다름없는 방식으로 운영되었고, ‘가정가요’ 또한 관제가요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가정가요’ 중 <애국일 노래>, <지원병 장행가>, <희망의 아침> 등 일부 작품은 분명한 친일적 내용을 담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어머니(의) 마음>은 국민총력조선연맹과도 관련이 있었다. 1940년 10월에 결성된 국민총력조선연맹은 조선총독이 총재를 맡기도 한 당대 최대 규모의 관변단체였는데, 여러 가지 사업 중 하나로 1941년 11월에 영화, 노래 각 두 편을 추천작으로 선정했다. 영화는 내선일체와 지원병 출전을 장려한 <그대와 나>, 그리고 기록영화 <조선농업보국청년대>였고, 노래는 ‘가정가요’ <산에 들에>와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사실상 관제가요로 만들어져 관변단체의 적극 지원까지 받았으니, 1945년 이전에는 그만큼 순조롭게 <어머니(의) 마음>이 유포될 수 있었겠지만, 광복 이후에는 그런 사실을 드러내기가 작가들로서 당연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작품 내용 자체에 친일의 흔적이 보이는 것은 전혀 아니나, 위에서 정리한 내용을 확인한 뒤라면 어쩔 수 없이 씁쓸한 뒷맛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양주동, 이흥렬 두 사람이 어머니를 그리고 기린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담은 작품 <어머니(의)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충분히 아름답다. 80년 가까이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린 곡이기에, 이제는 작가의 것으로만 볼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노래가 만들어진 경위를 외면하거나 은폐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씁쓸함까지 아우르는 데에 <어머니(의) 마음>의 역사적 참맛이 있다.

[SBS Star] VIDEO: Lee Seung Gi Shows Off His Impressive Sword Skills

Korean singer/actor Lee Seung Gi demonstrated his amazing sword skills in the latest episode of ‘Master in the House’.

On May 19 episode of SBS’ television show ‘Master in the House’, the cast―Lee Seung Gi, actor Lee Sang Yun, comedian Yang Se-hyung, and K-pop boy group BTOB’s member Yook Sungjae were seen visiting an action school in Paju.Master in the HouseThere, they met their new master martial arts director Jung Doo-hong, who had taken in charge of action scenes in various movies and dramas.

At the action school, Jung Doo-hong taught Lee Seung Gi, Lee Sang Yun, Yang Se-hyung, and Yook Sungjae some basic action moves.Master in the HouseThen, he also got them to try the kind of training that stuntmen and actors receive to do their action scenes.

For this particular training, Jung Doo-hong asked each cast to pick a weapon, and Lee Seung Gi picked a sword.

After choosing the sword, Lee Seung Gi started learning the moves for a sword fighting scene from Jung Doo-hong.Master in the HouseOnly after learning the moves from Jung Doo-hong a few times, Lee Seung Gi looked like he was ready to carry out the scene.

Soon, Lee Seung Gi just went for it, and managed to impress everybody from the beginning until the end of the scene; he was so smooth and flawless.

Jung Doo-hong was surprised by Lee Seung Gi’s ability to absorb the moves in such a short time and commented, “Wow, you are the best!”
 

‘Master in the House’ is a show in which the cast spend time with masters of various fields in hopes of gaining knowledge and wisdom from them.

(Lee Narin, Credit= SBS Master in the House)

(SBS Star) 

임금 인상 말 꺼내니 “여자가 그 정도 받으면 됐지 뭐”

5월 17일은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제3회 ‘임금차별타파의 날’이었다. ‘임금차별타파의 날’은 남성 정규직 임금 대비 여성비정규직 임금을 1년으로 계산하여 그 날 이후부터 12월 말일까지 여성은 무급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리는 날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차별을 당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드러내고 해법을 찾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9년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가장’으로 상징되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를 위해 ‘남성생계부양자모델’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현장의 사례를 하나씩 짚어보고자 ‘생계에 성별은 없다’ 기획을 통해 총 9개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한다. 두 번째 글은 서울여성노동자회 여름이 썼다.[편집자말]

A씨는 30대 초반이다. 전문대학 졸업 후 서울 소재 크지 않은 규모의 유통회사에 취업했지만 면접 때 들은 ‘사무 전반’, ‘홈페이지 관리’, ‘홍보’ 등의 말이 무색하게 회계경리로 내내 일했다. 게다가 4년간 경력을 쌓아도 승진은커녕 수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일할 맛이 나지 않는 건 제자리걸음인 급여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최저임금을 받고 시작했는데 매년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딱 그 수준만큼만 더 받았다. 입사 당시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으며, 휴가비나 명절 보너스 등을 비정기적으로 받았다. 승진은 꿈도 못 꾸고 경력개발은 더욱 안 되는 상황에서 시간이 갈수록 불안감만 커졌다.

“OO씨 몇 살이지? 슬슬 결혼할 때 됐지? 남자친구는 있나? 이런 말을 자꾸 하니까 점점 불안해지더라고요. 더 나이가 들면 이 회사에서 내 자리가 없을 것만 같았어요. 저한테 주어지는 업무는 누구라도 조금만 배우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내 자리를 또 사회초년생으로 채우면 그만이겠구나 싶어서요. 임금인상은 쉽게 말을 못 꺼냈죠. 돈 더 달라 하면 나가라고 할까봐”

비혼인 여성 간호조무사의 ‘독립 생존’, 과연 가능할까?

A씨는 독립적인 생존을 꿈꾼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결혼보다는 비혼에 매력을 느꼈고, 비혼을 준비하려니 안정적인 경제활동이 절실해졌다. 본격적으로 직업정보를 찾고 모으기를 1개월여.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일할 수 있는 직업, 수요가 늘 있어서 이직도 생각해볼 수 있고, 경력단절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직업을 찾다가 간호조무사에 도전했다. 간호조무사 자격을 취득하고, 수련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일하기까지는 2년 가까이 걸렸다. 하지만 간호조무사 4년차에 접어든 지금, ‘독립 생존’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여전하다. 
 

 
현재 A씨는 주41시간 근로를 하며 월160만 원 기본급에 식대 10만 원을 받는다. 임금명세서는 별도로 없다.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160만 원은 통장에 입금되며 식대는 현금으로 받는다. 이는 최저임금 위반이지 않냐고 물었더니, 아마 4대보험 본인부담금을 병원이 대신 납부해주고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보다는 많을 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과연 해당 병원이 4대보험 본인부담금을 제대로 납부하고 있을까?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나마 작년부터 최저임금 문제가 계속 뉴스에 나오면서 10만 원 인상된 거예요. 같이 일하는 동료뿐 아니라 일자리를 구하는 간호조무사 대다수가 최저임금 이상을 기대하지 않아요. ‘최저임금=간호조무사 임금’이라는 현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최저임금 이야기가 나오자 A씨는 약간 흥분해 말을 이어갔다.

“최저임금도 얼마나 힘들게 받는지 몰라요.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병원 직원들 간에 기대감이 생겼어요. 최저임금은 지켜서 주겠지, 싶었죠. 그런데 뉴스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병원에서는 언급이 전혀 없는 거예요. 보건복지부며, 세무서 같은 데서 최저임금 안내 공문이 도착하고, 직원들은 서로 누가 원장실에 이를 전달하느냐를 고민하고, 누가 어떻게 말을 꺼낼지 논의하는 자리가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이 스트레스가 한참 이어졌죠”
 

최저임금이 오르면 임금인상은 당연한 것임에도, 원장은 직원 개별 면담 후 각자 비밀스럽게 임금을 인상해주는 방식으로 직원들 간 위화감을 조성해 통제하고 길들이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혼자 원장실에 불려가 임금인상을 약속받고 나니, ‘혹시 동료는 나보다 먼저 임금인상을 받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올려 받은 임금이 월 160이다. 하지만 2019년 최저임금은 월 1,745,150원. 여기에 월 10만 원 별도로 지급되는 중식비가 있다지만, 이마저도 원장실에서 직접 현금으로 주며 생색을 내는 것이 매달 벌어지는 일이다

임금을 고착화하는 ‘물경력’ 만드는 분위기

“4년 차에 접어들면서 알게 됐죠. 간호조무사 수요가 많은 편이라 상대적으로 취업이 쉽게 된다는 장점은 분명히 있지만, 제가 기대했던 것처럼 독립생활을 보장해주지는 못해요. 아마 대다수 간호조무사 임금 = 최저임금일 거예요. 채용정보 서치 잠시만 해봐도 알 수 있어요. 1년차 때는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에 저임금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았어요. 그런데 몇 번 이직하면서 깨달았어요. 제가 최저임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요.”
 

간호조무사의 저임금을 고착화시키는 데에는 경력 및 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분위기도 한몫한다. 혈관주사(IV) 가능 여부가 채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채용공고를 살펴보면 IV 가능자를 ‘환영’하거나 ‘우대’하고 있음), 더 높은 임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간혹 혈관주사 시행 횟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별도로 지급하는 병원이 있기는 하지만, 인센티브를 지급한다고 해도 기본급이 최저임금 수준인 건 매한가지이다.

또한 이전 병원에서 경력 및 능력을 인정했다고 해도, 다음에 이직한 병원에서는 인정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10인 미만, 5인 미만 규모의 병원은 간호조무사 채용시 경력과 근속 인정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운이 좋아 인심 좋은 병원장을 만나기를 기대해야 하는 현실이다.

“간호조무사협회에서 보수교육을 하라고 연락이 와요. 당연히 유료고, 대면교육이 많아요. 돈과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하는데, 보수교육을 이수했느냐 아니냐가 채용이나 임금에 미치는 영향이 없으니 누가 적극적으로 하겠어요? 능력을 키우고 커리어를 쌓아도 돌아오는 게 없잖아요?”
 

A씨는 서울에 있는 병원일수록(병원 규모가 클수록), 특정 과(피부과 등)에 취업하면 좀 더 높은 임금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 그만큼 근무시간이 긴 편이라 결국은 최저임금인 셈이라고 한다. 현직 간호조무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믿기지가 않았다. 혹시 몇몇의 상황과 경험이 과장되어 전달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나는 내가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나 전국 간호조무사 58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8년 간호조무사 임금·근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7.5%의 간호조무사가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34.4%는 최저임금 수준으로 지급받고 있었다. 이 조사 결과에서 임금에 근무 경력이 산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도 확인됐다.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간호조무사의 47%가 최저임금 이하의 보수를 받고 있다고 답했고, 현 사업장 근속기간 10년 이상 간호조무사 중 37.1%는 경력과 근속이 임금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비혼을 결심하고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더 오래,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고민했고, 다니던 직장까지 관둬가며 노력해서 간호조무사가 되었어요. 그런데 여전히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A씨는 함께 일했던 선배·동료들을 지켜보면서 더욱 절망스러움을 느꼈다. 경력 10년 차의 선배 간호조무사가 원장에게 임금인상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남편 벌이가 시원치 않아?”라는 질문이 돌아왔다고 한다. A씨는 이런 말에 특히 상처를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여자가 그 정도 받으면 됐지 뭐, ‘반찬값’은 보태겠네’, ‘남편이 벌어오잖아? 애들 학원비는 빠지겠네’ 이런 말, 정말 듣기 싫어요. 저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제가 가장이거든요. 저는 이 월급으로 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쉽게 이야기해요.”

이처럼 사회는 계속해서 남성생계부양자 이데올로기로 여성노동의 저임금화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2등 시민으로 남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8년 전체 가구 중 여성가구주 비중은 2000년 18.5%보다 12.2%포인트(p) 증가한 30.7%로 조사되었으며,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1인가구가 560만 세대를 넘어섰고, 이중 1인여성가구가 284만 가구로 50%를 차지하고 있다. 통계가 보여주듯 전체 가구에서 여성가구주와 미혼여성가구주의 비중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많은 여성노동자가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다수는 이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린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은 ‘생활비’, 아내가 벌어오는 돈은 ‘반찬값’이라며 여성노동자의 저임금에 당위를 부여하고 이들의 노동환경을 점점 열악하게 만든다. 남성생계부양자 논리가 더는 여성노동의 저임금화에 대한 사용자의 방패막이어서는 안 된다.

남해의 속살이 펼쳐지는 길, 어찌 안 걷고 배기요

옛 남해 어머니들이 바래(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해초나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하러 가던 길을 걷는다. 바래길은 남해 어머니들의 애환과 정이 담겨 있다.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다.

가천다랭이마을은 남해의 걸작

1024번 지방도의 끝, 가천다랭이마을의 정겨운 풍경이 눈으로 들어온다. 밭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수만 번의 손길로 만든 ‘남해의 걸작’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산비탈에 계단 모양으로 층층이 들어선 다랭이논. 이곳은 국가 명승을 넘어 미국 뉴스전문채널 CNN에서 ‘한국에서 가봐야할 아름다운 50곳’ 중 하나로 선정됐다. 
 

가천다랭이마을 산비탈에 계단 모양으로 층층이 들어선 것이 다랭이논. 이곳은 국가 명승을 너머 미국 뉴스전문채널 CNN에서 ‘한국에서 가봐야할 아름다운 50곳’ 중 하나로 선정됐다.

가천다랭이마을 산비탈에 계단 모양으로 층층이 들어선 것이 다랭이논. 이곳은 국가 명승을 너머 미국 뉴스전문채널 CNN에서 ‘한국에서 가봐야할 아름다운 50곳’ 중 하나로 선정됐다. ⓒ 최정선

 
가파른 산비탈을 깎아 만든 다랭이 논에서 마늘이 바람에 흔들린다. 봄에 심은 유채의 노란빛이 마늘의 청록빛으로 탈바꿈했다. 마늘은 쑥쑥 자라 벌써 수확을 앞두고 있다.
 
외딴 시골 마을을 ‘깡촌’이라 일컫는다. 가천다랭이마을이 그런 곳이 아닐까. 고립무원의 작은 어촌은 코발트 빛 바다를 품고 빛난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남면 해안도로. 이 도로는 평산항을 시작으로 사촌해변, 가천다랭이마을, 앵강만 등 남해의 속살이 펼쳐지는 길이다. 특히 가천다랭이마을이 압권이다.
 
가천다랭이마을은 경사가 대략 45도. 이곳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척박한 산비탈을 깎아 논을 만들었다. 논이 얼마나 작은지 ‘삿갓배미’라는 이름도 있다. 이는 ‘삿갓 아래 쏙 들어갈 정도로 작은 논’이란 뜻이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설흘산(해발 488m)의 날 선 모습이 아찔해 보인다. 꼭 그대로 바다로 내리꽂을 것 같다. 설흘산에서 내려다보면 깊숙하게 들어온 앵강만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앵강만에는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가 있다. 앵강(鶯江)은 ‘구슬픈 파도 소리가 꾀꼬리의 노래와 같고 그 눈물이 강을 이뤘다’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물론 정설은 아니다. 하지만 인근 지명에 꾀꼬리의 순우리말 ‘곳고리’가 있어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듯. 
  

남해가천암수바위 마을 주민들은 ‘미륵불’로 여겨 각각 ‘암미륵’, ‘숫미륵’이라 부른다. 암미륵은 여인이 잉태해 만삭이 된 모습으로 비스듬히 누웠다.

남해가천암수바위 마을 주민들은 ‘미륵불’로 여겨 각각 ‘암미륵’, ‘숫미륵’이라 부른다. 암미륵은 여인이 잉태해 만삭이 된 모습으로 비스듬히 누웠다. ⓒ 최정선

 
아랫마을로 내려서면 ‘남해가천암수바위’가 반긴다. 마을 주민들은 ‘미륵불’로 여겨 각각 ‘암미륵’, ‘숫미륵’이라 부른다.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들이 아무도 모르게 숫미륵 밑에서 기도를 드리면 득남한다는 속설도 있다.

마을의 샤머니즘이 집결된 느낌이다. 암미륵은 여인이 잉태해 만삭이 된 모습으로 비스듬히 누웠다. 암수 바위는 투박하지만, 정감 있고 신비스럽다. 암수바위를 지나자 끝자락 정자까지 여유로운 발걸음을 잇는다. 각종 허브가 꽃을 터트려 향이 그윽하다.
 
앵강다숲을 걷다
 

가천다랭이마을 바다정자 남해 바래길 중 앵강다숲길이 시작되는 구간이다.

가천다랭이마을 바다정자 남해 바래길 중 앵강다숲길이 시작되는 구간이다.ⓒ 최정선

 
우리는 가천다랭이마을에서 앵강다숲길을 걷고자 계획했다. 앵강다숲길은 다랭이마을의 바다장자에서 시작해 홍현해라우지마을과 숙호숲~두곡·월포해수욕장~미국마을~화계마을~바래길탐방안내센터~원천마을~벽련마을을 잇는 18㎞ 구간이다. 우리는 앵강다숲길 전 구간을 걷지 않고 바래길탐방안내센터까지 최종 목적지로 정했다. 앵강다숲, 참 예쁜 이름이다. 이 지명은 앵강만에 가까이 있어 따온 이름이다.
 

앵강다숲길에서 만난 벤치 짙은 녹음이 우거진 숲길을 벗어나면 넓은 초원에 쉬어가라고 벤치 있다.

앵강다숲길에서 만난 벤치 짙은 녹음이 우거진 숲길을 벗어나면 넓은 초원에 쉬어가라고 벤치 있다. ⓒ 최정선

 
바다정자를 통과하자, 아찔한 해안 길이 여럿. 이 길은 이내 포근한 흙길로 안내한다.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이 가볍다. 짙은 녹음이 우거진 숲길을 벗어나면 넓은 초원에 쉬어가라고 벤치가 마련돼 있다.
 
숲길 중간쯤, 옛 초소를 만났다. 숲과 어우러져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길은 제법 운치 있다. 20여 년 전 전투경찰대원들이 근무했던 곳으로, 당시 대원들이 초소와 초소를 이동했던 통행로가 바로 지금 우리들이 걷는 길이다.

간간이 바다 풍경도 볼 수 있어 좋았다. 해안과 숲을 몇 차례 바꿔가며 걷고 또 걸었다. 뜨거운 태양이 아스라하게 빛을 반사한다. 알베르트 카뮈 작품 <이방인>의 뫼르소가 된 착각이 들었다. 아랍인을 총으로 쏜 게 ‘강렬한 태양 빛’ 탓이라 하듯. 잠시 멈춰 숲 한가운데서 잠깐 호젓하게 소설의 상념에 젖었다.
  

홍현 해라우지 마을을 방풍림 다랭이마을에서 홍현 해라우지 마을까지의 3.5㎞ 구간은 약간 난코스로, 천연 방풍림 숙호숲이 만들어 준 시원한 그늘을 한숨 돌리게 한다.

홍현 해라우지 마을을 방풍림 다랭이마을에서 홍현 해라우지 마을까지의 3.5㎞ 구간은 약간 난코스로, 천연 방풍림 숙호숲이 만들어 준 시원한 그늘을 한숨 돌리게 한다. ⓒ 최정선

 
녹음이 짙은 화려한 계절이 느껴진다. 홍현해라우지 마을을 방풍림에서 잠깐 땀을 닦았다. 홍현(虹峴)은 ‘무지개 고개’가 있어 붙여진 지명으로 ‘해라우지’는 홍현의 남해 토속어다.

다랭이마을에서 홍현해라우지 마을까지의 3.5㎞ 구간은 조금 어려운 난코스로 다들 지친 상태다. 천연 방풍림인 숙호숲이 만들어 준 시원한 그늘을 한숨 돌렸다. 나그네들의 안식처 같았다.
 

해라우지마을의 석방렴 바다 일부를 돌담으로 막아 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해라우지마을의 석방렴 바다 일부를 돌담으로 막아 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최정선

   
이곳 바다에 돌로 둥글게 축성한 조형물을 있다. 바로 석방렴(石防簾)이다. 창선교 옆 지족해협에서 죽방렴은 몇 번 봤지만, 석방렴은 처음이다. 석방렴을 봤을 때 어리석게도 어린아이들이 해수욕할 수 있도록 만든 자연 풀장인 줄 알았다.
  

도로에서 본 석방렴 200년 전 남해도 남쪽 앵강만에서 만든 돌담은 만조 시 물에 잠기고 간조 시 드러나는 전통 고기잡이 방식인 석방렴이다.

도로에서 본 석방렴 200년 전 남해도 남쪽 앵강만에서 만든 돌담은 만조 시 물에 잠기고 간조 시 드러나는 전통 고기잡이 방식인 석방렴이다.ⓒ 최정선

 
축방렴은 좁은 바다 길목에 대나무 발을 세워 물고기를 잡는 방식으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 기록이 남아있다. 이와 쌍벽을 이루는 남해의 물고기잡이 방식이 석방렴이다. 바다 일부를 돌담으로 막아 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200년 전 남해의 남쪽 앵강만에서 성행한 바닷속 돌담은 만조 시 물에 잠기고, 간조 시 드러나는 어업방식이다.
  

두곡 월포 해수욕장 두곡의 몽돌은 파도를 따라 몽돌이 자갈자갈 소리를 낸다.

두곡 월포 해수욕장 두곡의 몽돌은 파도를 따라 몽돌이 자갈자갈 소리를 낸다.ⓒ 최정선

 
모래가 고운 월포 해수욕장을 지나 몽돌이 자갈자갈 소리를 내는 두곡해수욕장으로 들어선다. 가는 길마다 만나는 마을은 작은 포구를 품고 있다. 파도 부딪히는 소리가 감미롭다. 모든 세상이 푸른 빛 그 자체, 그리고 평온이 깃들어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평온하게 잠든 듯했고 우리는 그 고요를 깨웠다.
 
숨 가쁘게 걸어온 여정을 미국마을을 지나 바래길탐방안내센터에서 마무리했다. 걷는다는 건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자신과의 싸움이다. 포기하지 않고 종착점에 도착했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바래길탐방안내센터의 인공연못 노오란 창포가 꽃핀 연못에서 거위들이 한가롭게 헤엄치는 모습을 끝으로 남해바래길을 마무리했다.

바래길탐방안내센터의 인공연못 노오란 창포가 꽃핀 연못에서 거위들이 한가롭게 헤엄치는 모습을 끝으로 남해바래길을 마무리했다. ⓒ 최정선

  
<여행 귀띔>
*남해바래길 트레킹
-앵강다숲길: 가천다랭이마을 바다정자~선바위~바람부는 비릉~홍현해라우지마을~숙호숲~월포·두곡 해수욕장~미국마을~바래길탐방안내센터
 
*가는 법
· 버스
남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해공용터미널까지 약 66m 이동한다. 남해공용터미널에서 남해-가천(서상.장항.남면.평산.항촌) 행 버스 탑승해 가천다랭이마을에 하차하면 된다.
 
· 버스 운행시간
남해공용터미널에서 첫차 07:45, 막차 13:35이다. 배차간격은 평일 2회, 토요일 2회, 일요일 2회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저자입니다. 블로그 ‘3초일상의 나찾기'( https://blog.naver.com/bangel94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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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민주당이 구체적인 경찰개혁안을 제시했다

국회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경찰 권력이 너무 커진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와 행정안전부, 더불어민주당 등 당정청은 20일 오전,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경찰개혁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 합의했다.

이날 회의 참석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권력기관 개혁은 권력 오남용 근절과 집중된 권한의 분산, 권력기관 사이의 상호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에서 추진돼야 한다”며 ”패스트트랙에 오르지 못한 자치경찰제 도입, 일반경찰과 수사경찰의 분리, 정보경찰 개혁 등 경찰개혁 과제도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합의된 안은 국가수사본부 신설과 정보경찰 통제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국가수사본부 신설 및 자치경찰과의 이원화

먼저 당정청은 ‘국가수사본부‘를 신설을 추진한다. 국가수사본부는 미국의 FBI와 비슷한 개념으로 수사를 전담하는 경찰부서다. 여기에 필수적으로 연동되는 개념이 ‘자치경찰’이다. 즉 치안과 경비, 민생 사안에 대한 수사는 자치경찰이 맡고 그 외의 수사들은 모두 국가수사본부에서 일임하는 형태다.

먼저 국가수사본부장은 3년 단임으로 국가경찰의 수사에 관한 사무 총괄과 전국 수사부서 소속 공무원의 지휘·감독권을 갖는다. 수사경찰에 대한 인사와 감찰·징계권도 주어진다. 수사최고책임자인 국가수사본부장(차관급)은 외부 개방직으로 두고, 경찰위원회가 임명 제청하면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할 방침이다.

국가수사본부가 설치되면 수사본부장이 수사에 대한 지휘와 감독을 행사한다. 경찰청장이나 지방청장, 경찰서장 등은 원칙적으로 수사지휘가 불가능하다. 다만 수사 규칙·지침·절차 준수, 심야조사 금지, 2차 피해 방지 등 일반적인 지휘는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행정, 치안, 경비 업무는 각 지자체 산하의 지방경찰청장의 통제 아래 묶이게 되고 수사업무는 수사본부장 통제 아래 묶이게 된다. 당정청은 수사본부를 통제하기 위한 장치로 영장심사관제, 영상·진술녹음 확대, 메모권 보장 등의 장치를 마련하고 경찰 자체적인 수사전문성 강화를 위한 방안을 확대키로 합의했다.

회의에 참여한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업무 영역이 겹칠수 있다는 우려에 동의하면서도 ”이를 해소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나가고, 시범운영을 통해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상당 부분 업무 영역이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고, 우려하는 것보다 현장에서의 우려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2. 정보경찰의 통제 방안

검경수사권 조정안에서 드러난 경찰의 두번째 문제점은 바로 ‘정보경찰’이었다. 그간 정보경찰의 정보수집 업무가 본래의 권한과 취지를 넘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최근 정보경찰이 민간인을 불법사찰하고 정치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검찰수사로 드러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태다. 지난 16일에는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정보경찰을 이용한 선거법 위반과 직권 남용 등의 혐의 등으로 구속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여기에 대한 대책으로 당정청은 정보경찰의 업무를 한정하는 대책을 내놨다. 이렇게 정보경찰은 앞으로 언론, 교육, 종교, 시민사회 단체, 기업 등 민간단체, 정당사무소에 상시적인 출입을 할 수 없다. 또 기업 노사갈등에 분쟁의 구체적 내용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범죄정보를 제외한 기타 정보들은 모두 원칙적으로 정보수집을 막겠다는 의도다. 

또 정보경찰의 업무 수행방식에 대해 사찰행위 금지, 민원청탁 금지, 정보 누설·사적이용 금지, 비공식 직함 사용 금지 등의 원칙을 세웠다. 

당정청은 여기에 경찰 내부에 준법지원팀을 신설해 모든 정보활동의 적법성 여부를 상시 확인·감독하겠다고 말했다. 또 정보경찰이 정치에 관여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조국 수석은 ”문재인 정부는 정보경찰을 과거와 같이 활용하지도 않고 정치 개입도 하지 않고 민간인을 사찰하는 일도 있을 수 없다. 그동안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서도 ”과거 정부에서 일어났던 정보경찰의 불법행위를 항구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법률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당정청은 경찰대 출신들이 조직 내 고위직을 독점하는 문제를 없애기 위해 경찰대학 신입생 선발인원을 100명에서 50명으로 줄이고 편입학을 허용하는 등 각종 특혜도 축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회의에 참석한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번 합의안에 대해 ”현 단계는 당정청 협의 결과, 큰 틀을 제시한 것”이라며 ”자세한 것은 필요한 경우 추후 다른 형태로 설명하겠다. 양해해 달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