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관객 ‘데이비드 호크니전’ 대단하지만, 그 이면엔…”

’85억’. 김환기 작가 작품이 기록한 한국 미술품 최고 경매 가격입니다. ‘868만원’. 한국의 미술 작가들이 1년 동안 작품 활동을 통해 얻는 평균 수입입니다. 극과 극의 양면이 공존하는 한국 미술계를 ‘미술톡(talk)’으로 들여다봅니다.[편집자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 3월 22일부터 8월 4일까지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전은 관람객 30만을 돌파하며 흥행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 3월 22일부터 8월 4일까지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전”은 누적 관람객 30만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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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싼 화가’ 호크니, 한국 왔다 – 4월 19일, MBC
화제의 데이비드 호크니전, 관람객 30만 명 돌파 – 7월 22일, <스포츠서울>
RM도 관람한 데이비드 호크니전, 30만 돌파 – 7월 23일, <파이낸셜뉴스>

지난 4일, 서울 시립미술관의 ‘데이비드 호크니전’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전시는 누적 관객 30만 명을 돌파하며 오래간만에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RM의 관람 소식이 알려지는 등 연일 화제를 불러 모았다. 길게 늘어선 매표 행렬의 진풍경을 전하며 언론은 ‘호크니 현상’이라고까지 이름 붙였다.

그러나 미술계 한편에선 한숨이 나온다.

“미술 전시 관객이 30만을 넘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죠.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추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고, 분명 축하할 일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2015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마크 로스코전'(25만 관객), 2013년 대구미술관의 ‘쿠사마 야요이전'(30만 관객) 등 흥행을 이어가는 건 외국 작가들 전시뿐이었습니다. 물론 해외 작가를 선보이는 것도 필요하겠죠. 하지만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위치가 좋은 국공립 미술관일수록 우리의 작가들을 소개하고 재발견하는 데에도 균형 있는 관심이 절실합니다.”

홍경한(50) 미술평론가의 지적이다. 그는 지난 9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특히 한국의 중견 작가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국내 화랑들도 외국 작가들에게로 눈을 돌린 지 오랩니다. 화랑들이야 상업 공간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미술관엔 공적인 역할도 있잖아요. 그나마 신진 작가들에게는 점차 전시 지원 등의 기회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지만, 한국 미술의 허리이자 대들보라고 할 수 있는 중견 작가들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들이 설자리가 보이지 않아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역량 있는 한국 작가들도 많이 있는데…”

18년 동안 미술 잡지 평론 일을 한 그는 최근 칼럼을 통해 예술계 교수의 민낯을 꼬집고, 국립현대미술관장 취임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자칭 타칭 미술계 ‘아웃사이더’다. 그를 서울 종로구 북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원래 만나기로 했던 곳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내부 커피숍이었지만, 약속 시간 10분 정도 전쯤 그가 인근 카페로 장소를 바꿨다.
 

“국립현대미술관 들어가니 입구서부터 다들 아는 사람들이고 도저히 불편해서 원… 저도 사실 여기 잘 안 와서 생각을 잘못했네요… 죄송하지만 주변 카페가 좀 더 대화하기 편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는 지난 4월 대면을 비롯해 이후 수차례 전화 통화를 통해 이뤄졌다.

“작가 연수입 868만원… 미술 하지 말라는 것”
  

 홍경한 미술평론가가 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class=”photo_boder”></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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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 홍경한 미술평론가가 지난 4월 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우리 미술의 대들보이자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중견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너무 미미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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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미술 비평을 해왔다. 한국 미술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우리 미술 작가들 1년 수입이 얼마인지 아세요? 겨우 860만 원입니다(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 예술인 실태조사’를 보면 미술인들이 예술 활동을 통해 얻은 수입은 연평균 868만 원이다). 재료비로 500만 원 정도 쓴다고 하면 300만 원이 1년 순수입이라는 건데, 한 달에 20~30만 원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요. 예술 하지 말라는 거죠. 투잡, 쓰리잡은 기본이고요. 보통 가족들이 먹여 살려요. 단지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앞에서 한 달 한 달 살아가는 게 미술 작가들입니다.

상황이 이런데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작가가 나올 수 있을까요? 우리 작가 중에 백남준 이후 과연 세계 무대에 내놓을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됩니까. 거의 없죠. 점차 외국 화랑과 외국 작품이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우리나라 화랑도 외국에 나가서 작품을 사오는 실정이죠. 우리 작가들만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어요. 악순환이죠.”

–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건가.
“정부도 물론 노력을 하고 있어요. 최고은씨 사망 이후(단편영화 ‘격정 소나타’의 감독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2011년 2월 숨진 채 발견됐다) 예술인 복지법도 생기고 투자와 지원도 늘리려고 하는데, 아직 우리 사회 인식상 예술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데 왜 정부에서 돈을 대주나, 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예술이 만드는 긍정적인 사회적 효과에 대해 아직 인식이 없는 거죠. 또 예술인이라고 해 봤자 소수고, 표도 얼마 안 되니까 정치인이나 국회의원들도 관심을 갖지 않고요. 그러다 보니 예산은 항상 부족하고, 필요한 정책이나 공약도 전무해요. 앞으로 호전될 희망도 별로 없는 거죠. 또 작가들 중에는 그저 숫기가 없어서, 또는 예술가적인 내성적, 폐쇄적 성격 때문인지 그런 제도 자체를 아예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각지대의 예술인들을 발굴하고 찾아가서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이런 얘길 하면 사람들이 가끔 물어요. 그럼 작가들은 그림을 왜 그려? 그렇게 힘들면 다른 일하지? 그 사람들은, 그림을 안 그리면 죽는 사람들이에요. 그게 예술가에요. 일반인들은 이해 못 할지도 모릅니다. 저야 20년 동안 작가들과 있었으니까 이제 좀 이해가 되는 거구요(웃음). 작가들은 그림을 안 그리면 아마 시름시름 앓다가 곧 몸의 에너지가 땅밑으로 빠져나가듯이 말라 죽고 말 거예요.”

우리 사회가 불행한 이유? 예술이 없기 때문”

– 미술의 ‘사회적 영향’은 무엇인가.
“마른 갈댓잎 같다는 생각 안 드나요? 우리 사회요. 서걱서걱한 마른 갈대. 조그만 성냥불 하나에도 확 하고 불이 붙어 활활 타버릴 것 같은, 그런 갈대요. 툭하면 욱하고 양보 없고. 요즘 뉴스만 봐도 얼마나 참혹해요. 다들 나밖에 모르니 계산만 하고, 내 걸 뺏기면 안 되니까 허덕이고… 갈증 사회에, 끝없는 결핍 사회죠. 저는 그게 우리에게 예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은 소수의 돈 있고 교양 있는 사람들만이 향유하는 그런 부르주아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어떤 예술가도 그런 예술을 원하는 사람이 없고, 예술이 가고자 하는 방향도 결코 아니죠.

인간이란 게, 밥만 먹고 살진 않잖아요. 밥을 조금 굶더라도 마음만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소위 ‘인간다움’이라는 게 만들어집니다. 어려우면 도울 줄 아는 마음, 더불어 사는 마음. 그런 마음을 길러주는 건 오로지 예술밖에 못하는 일이에요. 예술은 우리의 영혼을 풍요롭게 채워주는 허브향 같은 거죠. 사람답게 사는 세상, 뭐 이런 얘기들 많이 하잖아요? 산수나 과학을 잘해서 충분히 훌륭한 나라를 만들 순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다운 나라’까진 못 만들죠. 사람답게 사는 게 뭔지 알려주는 게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 예술의 힘을 가질 방법이 있을까.
“예술의 역할, 그러니까 감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건 결국 예술가들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들을 예뻐해주고 존중해주면 돼요. 나부터 하면 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적어도 우리 작가들이 삼시 세끼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지 않겠어요?

또, 여러가지 문제가 섞여 있지만 교육 체계도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피 말리는 입시 교육만 있고 미술이나 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와 소양 교육이 없으니 감성과 마음이 병들 수밖에요. 외국 얘기할 필요도 없이 동시대 우리의 불행과 스트레스가 말해주고 있잖아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위험하다고. 예술 교육을 강화해서 보다 휴머니즘의 인간들을 많이 길러내는 거,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인식 변화는 금방 뒤따라 올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실은 얼마나 예술에 민감한 사람들인데요.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렇지.”

“기사 하나로 직장까지 잃고…” 

2014년 스토리온의 프로그램 ‘아트 스타 코리아(Art Star Korea)’에서 심사위원을 맡아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그는 미술잡지 <미술세계>, <퍼블릭아트>, <경향아티클> 편집장과 강원국제비엔날레 예술총감독을 지냈다. 비엔날레를 마친 후 2018년 6월부턴 프리랜서 평론가로 돌아왔다. 그는 “다시 ‘백수’가 돼 글을 쓰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가 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class=”photo_boder”></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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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 그는 “우리 미술 작가들 연평균 수입이 860만원”이라며 “이건 미술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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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20일 <경향신문> 칼럼 ‘예술계 교수의 민낯’을 보면 과거 미술잡지에서 활동하던 시절 미술계 교수 20명을 실명 비판했다가 송사에 휘말렸다고 하더라.
“혈기 왕성 했을 때 얘기죠(웃음). 그땐 정말 군대 갔다 와서 무서울 게 없었고, 게다가 제가 운 좋게 미술 잡지 편집장이란 직함을 이른 나이에 얻었거든요. 벌써 15년도 넘은 일인데, 당시 어떤 행사장을 갔더니 교수들이 제자들한테 돈을 거둬서 전시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 자체가 부당하게 보였어요. 관행이었던 거죠. 자발적인 거였다고 하는데 제 눈엔 아니었거든요. 나중에 일이 커지니 말을 바꾸긴 했지만 그게 강제적이었다고 증언했던 제자도 있었고요.

곧장 특집 기사를 썼죠. 그 당시 미술계에선 꽤 화제가 됐던 사건이에요. 기사에 20명 정도 되는 교수들 실명을 다 썼으니까… 저도 참 무식했죠 그땐(웃음). 교수들이 연판장을 돌려서 소송을 걸었어요. 우리나라 법이 웃겨서 실명을 거론하면 무조건 명예훼손이 되더라고요. 사실을 적시해도 그렇죠. 그땐 또 깡이 있어서 그러든 말든 나는 할 말 하겠다는 식으로 대응했죠.

이후 1년 반 동안 아주 힘들었어요. 경찰에, 검찰에… 돈도 없으니까 변호사 선임도 못 했거든요. 회사에서 지원해준 것도 아니니까… 소송하는 동안 회사도 그만두게 됐죠. 사실 반은 잘린 거였어요. 워낙 미술판에서 논란이 되다 보니 회사도 부담스러웠는지 나가달라는 눈치더라고요. 기사 하나 때문에 직장까지 잃은 거죠. 결국 약식 기소가 됐고, 200만 원인가 300만 원 벌금을 물었어요. 세월이 많이 지나서 그 20명 중에 일부는 돌아가셨고 일부는 나중에 제게 사과한 분도 계세요. 일부는 아직도 데면데면하게 지내죠. 아직 활동하는 분들도 있지만 이젠 다 원로가 되셨죠.

미술계가 좁아서, 그 일 이후로 당장 일이 안 들어오더라고요. 제가 굉장히 악독한 놈, 표독스러운 놈으로 여기저기 소문이 난 거죠. 그게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지 요즘도 처음 보는 후배들은 절 굉장히 두려워해요(웃음). 근데 만나 보면 그런 류가 아니란 걸 금방 알거든요. 어쨌든 그렇게 되니까 도저히 한국에 있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미국에 갔어요. 뉴욕에 한 1년 있었죠.”

– 뉴욕 생활은 어땠나.
“미국 가서 어떻게 좀 비벼볼까 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할 게 없더라고요(웃음). 진짜 아무것도 안 했어요. 말도 안 통하고… 도피성이었죠 사실. 미술만 공부한 사람 어디서 불러주지도 않고 딱히 들어갈 직장도 없고. 다행히 아는 전시 기획자가 뉴욕에 살고 있어서, 더부살이를 오래 했죠. 기생하듯이. 그분이 한국으로 떠나고 나서는 한인 게스트하우스에서 3개월 정도 더 있었어요. 돈도 없는 백수니까 맨날 걸어 다니고 공원에 누워 잠도 자고… 시간이 지나면서 세탁소라도 취직할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차에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곧바로 한국에 돌아왔는데 마침 새로 창간한 미술 잡지사에서 편집장으로 와달라고 연락이 왔죠. 잡지쟁이가 잡지 해야지 뭐 하겠어요(웃음).”

“옳지 않아서예요, 그냥”… 자칭 ‘아웃사이더’ 평론가

–  7월 14일 자 <메트로신문> 칼럼 ‘기꺼이 포기할 것들’, 6월 30일 칼럼 ‘국립현대미술관, ‘민주주의’ 말할 자격 있나’, 2월 6일 <경향신문> 칼럼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자가당착’ 등 최근 칼럼에서 연이어 윤범모 관장이 취임한 국립현대미술관을 비판했다.
“요즘 청년들은 9급 공무원 되려고 몇백 대 일 경쟁을 뚫잖아요. 만약 누군 붙고 누군 떨어졌는데 떨어진 사람에게 다시 재시험 보라고 한다면 당연히 불공정하다고 항의하지 않겠어요? 국립현대미술관장이면 2급이긴 하지만 미술계에선 최고위 공무원인데, 지금 어떻게 됐어요? 시험 통과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밀려나고 떨어졌던 사람이 뽑혔어요. 이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죠.”

한 미술계 인사는 “미술인 대부분이 윤 관장의 취임 과정이 불공정했다고 생각하지만, 계속해서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건 홍 평론가가 거의 유일하다”라고 귀띔했다. 홍 평론가는  6월 30일 쓴 칼럼 ‘국립현대미술관, ‘민주주의’ 말할 자격 있나’에서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심포지엄 ‘미술관은 무엇을 움직이는가 – 미술과 민주주의’를 두고 이렇게 썼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민주주의를 화두로 한 심포지엄을 개최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선 냉소적이다. 민주주의의 절대 가치인 평등과 공정, 상식의 실현과 기회균등의 정당성 차원에서 의구심을 떨치기 힘든 절차로 임명된 윤범모 관장 체제하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기에 그렇다.

지난 2월 임명된 윤범모 관장은 본래 공직자가 되기 위한 일종의 시험인 역량평가에서 탈락했다. 역량평가를 통과한 후보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인사권자였던 도종환 장관은 윤 관장에게 사상 처음으로 재평가라는 기회를 줬다. 그러자 정부가 정해놓은 인사를 밀어주려 한다는 특혜시비가 일었고 ‘코드 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6월 30일 <메트로신문> 칼럼 중)

– 미술판이 좁다.
“좁죠. 그래도 어쩔 수 없죠 뭐. 두려웠다면 애초에 그런 글을 쓰지도 않았을 거예요. 이미 미술계에선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내정돼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습니다. 설마 했는데 정말이었던 거죠. 글을 쓰는 순간 나와 이 사람은 적이 될 거라는 게 빤하지만, 그건 그냥 틀린 거잖아요. 그럼 써야죠.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그래요 ‘좀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고. 누군 저 보고 아웃사이더라고 하던데, 맞죠 뭐, 아웃사이더(웃음).

하지만 한 번쯤 입장 바꿔 생각해봤으면 해요. 누군 뭐 이 좁은 미술계 판에서 괜히 듣기 싫은 말 해가면서 하나 둘 사람 잃어가고 싶겠어요?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저렇게 관장과 척지는 글 쓰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행사 중에 내가 맡을 수 있는 게 있겠어요? 미술계 거의 유일한 정규직인 교수 사회에다가 교수들 민낯 너무 우울하다고 써버리면, 저한테 시간강사를 주겠어요, 교수를 시켜주겠어요? 어떻게 보면 저도 밥벌이 자리를 하나씩 잃어가는 거예요. 저도 먹고 사는 사람인데… 제가 미친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 글을 왜 쓰겠어요. 옳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냥.

윤 관장과 개인적인 관계야 좋았죠. 근데 칼럼은 제 개인적인 영역이 아니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손해를 볼 수도 있겠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된다는 생각이 더 소중했어요. 개인적인 유감이야 제가 안고 가야겠죠.”

– 부조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 같다.
“제가 흥분하는 주제가 몇 개가 있어요. 부조리만 보면 목소리가 높아져요.  제 나이가 올해 50인데, 그동안 존경할만한 선배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내가 훌륭한 선배가 될 자신은 없었고 다만 후배들한테 기회가 없지 않다는 건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서 글 쓰는 직업을 가진 거고요. 최소한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하잖아요. 내가 말단으로 입사해도 열심히 노력하면 관장이 될 수 있는 게 정상인데, 중간에 누군가 끼어들게 되면 그게 무너지죠. 분노할 수밖에 없죠. 후배들한테는 그런 모습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름 왕성하게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평론가임에도 가난하죠 뭐. 조금 조금 벌어서 1년 살고, 좋아요. 자유롭게 사세요. 얽매이지 말고. 백 살도 못 사는 거 행복하게 살아야죠.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