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잘사는 길’ 보여주는 기사와 프로그램 늘어야

만약 오늘 돈 100억 원을 줄 터이니 받자마자 죽으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하거나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자식에게 그 돈을 대물림할 수 있다는 전제를 붙이면 조금은 더 달라질 수 있을까?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다니는 회사나 나라에 이 돈이 전달될 수 있다고 한다면 100억을 받자마자 죽는 일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이 다니는 회사 전체가 아니라 사주 한 사람이나 그 일가에게 돈이 전달된다는 조건을 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단 한명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슨 자격으로 대량해고 감수하라고 하나?
 

 현대중공업 물적분할을 추인할 주주총회장인 울산 동구 전하동 한마음회관 마당에서 5월 30일 오후 5시부터 7000여명(주최측 추산)의 노동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영남권노동자대회가1박2일간 진행됐다
 현대중공업 물적분할을 추인할 주주총회장인 울산 동구 전하동 한마음회관 마당에서 지 5월 30일 오후 5시부터 7000여명(주최측 추산)의 노동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영남권노동자대회가1박2일간 진행됐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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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판단이 틀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최근 들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현대중공업 노사갈등 보도 모니터 결과보고서를 보고 든 생각이다. 보고서에는 TV조선 <이것이 정치다>의 윤정호 앵커가 5월31일 방송 중에 한 말이 인용되어 있다. “이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는 것에 가장 반대하는 데가 다른 나라라고 합니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들이 이게 문제가 있다, 이렇게 지적하는 그런 상황인데요. 그걸 봤을 때 과연 현대중공업의 선택이 앞으로 우리 경제 발전에 어떤 도움이 될지. 노조도 그렇고 사측도 그렇고 이 같이 합심해서 대한민국 경제를 키우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한다.” 

직장 생활을 통해 번 돈으로 가족이 먹고사는 경우 ‘해고는 곧 살인이다’는 말이 얼마나 타당한지 다 안다. 현대중공업노조가 합병안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주주총회를 저지하거나 소액주주 자격으로 참여하여 자신들의 의사를 밝히려 했던 이유도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합병으로 인해 대량 감원이 발생할 것이라 했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윤 앵커는 현대라는 회사가 외국이 저지하려 할 정도로 돈을 많이 벌게 되니 대량해고를 감수하라고 해도 될까? ‘노조도 그렇고 사측도 그렇고 이 같이 합심해서’라고 했지 언제 대량해고를 감수하라고 했나 하고 윤 앵커가 항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날 같은 프로그램에서 법원의 결정을 인용하면서 점거농성 빨리 풀지 않아 문제라고 이야기한 내용까지 감안해보면 항변이 불가능해 보인다. 만약 진심으로 노조와 사측이 합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주총 전에 충분한 토론을 거쳐 합의를 하라고 했어야 옳다.

종합해보면 공익에 종사해야 할 책무를 지니고 있는 방송매체의 앵커가 사실상 해고를 감수하라고 이야기한 셈인데 이 말이 정당화되려면 한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도 제왕적 경영권을 가지고 있는 사주를 위해서 해고도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진정으로 가지고 있을 때다. 그것도 해고로 가족의 삶이 파탄에 이르는 한국 노동자 일반의 특징을 윤 앵커가 공유할 때만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하는 말이라면 모를까 방송 앵커라면 누구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일방적 희생강요를 해서는 안 된다. 

이제 비판 넘어 대안 제시 풍부히

그런데 이렇게 모니터를 하고 비판을 하면 매체의 프로그램이 좋아지고 나라가 공동체를 다 살리는 쪽으로 발전할까? 아니다. 윤 앵커를 포함해서 윤 앵커와 비슷한 말을 한 다른 프로그램의 앵커나 기자, 평론가 또는 신문 기자가 이 같이 말하도록 요구하는 매체 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요 매체 소유주들은 많은 경우 대기업과 혼인 등으로 결합되어 있다. 대기업과 한 몸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들이 미디어 노동자들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는 한 미디어 노동자들의 균형 잡힌 보도와 멘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디어 산업의 현실이 이러하다면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비난성 보도가 부적절하다고 백날 이야기해봤자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다니던 회사나 하던 일을 그만 두라고 할 수도 없다. 그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일부터 시작해볼까? 함께 잘 사는 길을 보여주는 기사,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만이 잘 사는 사회도 존재할 수 없고 자본가만이 잘 사는 사회도 존재할 수 없다. 둘 다 잘 사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음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방향은 의외로 간단하다. 부의 극대화가 아니라 공존을 향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꿔 먹으면 된다. 그 속에서 모두가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면 지금 자본주의 사회가 겪는 상당한 문제를 큰 후유증 없이 해결할 수 있다. 어떤 방법이 좋을지 다양한 의견을 만들어가자. 지상파가 나서고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먼저 1인 미디어 등에서 관련 메시지를 다양하게 내놓는 일부터 시작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시시비비>는 신문, 방송, 포털, SNS 등 다양한 매체에 대한 각 분야 전문가의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 주
 

덧붙이는 글 | 정연구(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민언련 이사)님이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