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의 품격’ 장나라 “당신이 한 짓 아니라는 것 알아”…신성록, 자신 믿어주는 장나라에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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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나라가 신성록의 진심을 알아차렸다.

31일 방송된 SBS ‘황후의 품격’ 41-42회에서는 황제의 권한이 정지된 이혁(신성록 분)이 황후 오써니(장나라 분)와 달콤한 휴가를 보내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오써니는 이혁의 극단적 선택을 막았다. 모든 것을 잃고 실의에 빠진 이혁은 호수에 몸을 던지려고 했고 이를 오써니가 막았던 것. 하지만 이는 모든 진실을 밝히기 전에는 이혁이 죽도록 둘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막았던 것이다.

이후 이혁은 “오늘 하루 내 일정은 황후와 노는 것뿐이다”라며 오써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믹스 커피를 함께 마시며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을 느끼던 것도 잠시, 오금모(윤다훈 분)가 나타났다. 이혁이 오써니의 어머니가 죽은 사실을 덮기 위해 돈을 보낸 것에 분노했던 것.

이혁은 “오해가 있던 것 같다. 내가 그런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금모는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이혁을 때리고는 오써니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에 이혁은 오써니를 붙잡으며 오금모를 급히 물러나게 했다. 오써니는 “어떻게 우리 엄마가 죽은 일을 돈으로 덮을 수가 있냐. 네가 사람이냐”라며 이혁에게 화를 내며 눈물을 흘렸다.

이에 이혁은 “내가 아니라면 믿어줄 거냐?”라고 물었다. 하지만 오써니는 “아니, 진절머리가 난다”라며 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이는 모두 태후(신은경 분)가 손을 쓴 것이었다. 태후는 이혁이 오금모에게 돈으로 매수하려던 것으로 조작했던 것. 그리고 오써니도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됐다.

이에 이혁은 “앵무새도 소현황후도 내가 사랑하지 않았다면 안 죽었다. 오써니도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된다. 저 여자를 놔줘라. 더 이상 저 여자를 불행하게 하지 말라”라며 스스로를 자책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리고 이혁은 오써니에게 “그래, 다 내가 한 일이다. 내가 좀 잘해주니까 착각한 거 같은데 나 같은 쓰레기가 어디 가겠냐. 난 오늘 밤이라도 널 죽일 수 있는 사람이다. 네 아빠도 네 동생도”라고 말하며 자신의 진심을 감췄다.

이에 오써니는 “니가 제일 잘못한 게 뭔 줄 아냐. 황제가 황제답지 못한 것 비겁하고 등신 같은 거다. 황제가 이러니 황실이 썩어빠지고 있다. 정말 나한테 미안하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 도망치지 말고 썩어빠진 살이라도 도려내라”라고 일침했다.

그리고 오써니는 “당신이 한 짓 아닌 것 안다”라고 말했다. 이에 이혁은 “날 믿어준 거냐. 나 같은 새끼를? 난 늘 황후를 힘들게만 했는데”라며 감격했다.

오써니는 “믿는다고 한 적 없다. 알고도 침묵하는 건 죄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오써니의 모습을 보며 이혁은 눈물을 흘렸다.

(SBS funE 김효정 에디터)

[아시안컵] 도박사들이 꼽은 2019 아시안컵 우승국

Koki Nagahama via Getty Images

일본과 카타르의 아시안컵 결승전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도박사들은 일본의 우승을 예상했다. 일본과 카타르의 아시안컵 결승전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도박사들은 일본의 우승을 예상했다. 

일본과 카타르는 2월1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자예스 스포츠 시티 스타디움에서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결승전을 치른다. 

아시아의 강호로 자리 잡아 온 일본과 이번 대회 언더독의 반란을 꿈꾸는 카타르의 대진이 완성됐다. 일본은 탄탄한 기본기와 실리축구를 바탕으로 4강까지 6전 전승을 거두며 최종 무대에 올랐다. 대회 최다 우승국(4회)인 일본은 5번째 정상에 도전한다. 

카타르는 지난 6경기에서 16득점을 올리는 동안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컵 결승전에 진출한 기세를 이어 트로피까지 거머쥐겠다는 각오다. 

ROSLAN RAHMAN via Getty Images

앞서 스페인 국가대표 출신의 사비(알 사드)는 대회가 시작하기 전 카타르의 우승을 점치기도 했는데 도박사들은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베팅 사이트 ‘윌리엄 힐’은 90분 경기에서 일본의 승리에 21/20을 배당했다. 1배를 조금 넘는 수치다. 무승부에는 2배, 카타르의 승리에는 14/5로 3배에 가깝다. 

최종 우승팀에 대해서도 일본에게 4/9, 카타르에게 13/8을 배당했다. 

‘유니벳’도 다르지 않다. 일본의 5회 우승에는 1/2를 배당하면서 카타르에는 8/5를 주기로 했다. 

이 외에 ‘베트 365’, ’10벳′ 등 베팅 사이트도 모두 카타르의 우승 확률이 높은 배당을 걸면서 일본의 우승을 점쳤다.



‘세상에 이런 일이’ 56년 만에 다시 만난 쌍둥이 자매…재회가 기쁘지만 않았던 슬픈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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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부터 걸음걸이까지 모두 똑같은 도플갱어가 있다?

31일 방송된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는 무려 56년 만에 다시 만난 사람들의 사연이 공개됐다.

이날 한 제보자는 “세상에 정말 이런 일도 있다”라며 특별한 인연의 두 사람을 소개했다. 잠시 후 제작진 앞에는 놀랍도록 똑같이 생긴 두 여자가 등장했다.

이들은 “우리는 56년 만에 다시 만난 쌍둥이 자매다”라고 서로를 소개했다.

2년 전 한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는 “혹시 경주에 살지 않냐? 얼굴도 똑같고 걸음걸이까지 똑같다”라고 쌍둥이 동생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동생은 그제야 언니의 존재를 기억했다.

과거 김은숙 씨의 어머니는 힘든 집안 형편 때문에 그의 쌍둥이 언니를 부잣집에 입양을 보냈던 것.

이에 김은숙 씨는 자신을 꼭 닮았다는 사람의 연락처를 받았다. 그리고 SNS 메신저 프로필에 자신과 똑같이 닮은 얼굴을 보고 크게 놀랐다. 동생은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딸에게 대신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언니는 자신의 입양 사실도 몰랐기에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동생으로부터 받은 자신과 똑같이 닮은 동생의 사진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유전자 검사 끝에 친자매임을 확신했다. 동생을 찾은 기쁨도 잠시 쌍둥이 언니는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찾을 거면 좀 빨리 찾지 왜 이제야 찾나 싶었다”라고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이에 동생은 “언니가 부잣집에 입양을 갔기 때문에 우리가 연락을 하면 언니한테 피해가 될 것 같아서 연락을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언니의 삶은 동생의 상상과 달랐다. 부잣집에서는 언니를 학교도 보내지 않고 갖은 구박을 하며 일만 시켰다. 이에 언니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집을 나와 이후 결혼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혼을 한 남편도 손지검을 하며 언니를 학대했고, 결국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다고. 이에 자매는 뒤늦게 잡은 손을 꼭 잡으며 절대 놓지 말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오래 떨어져서 살았지만 두 사람은 취향까지 똑같아 놀라움을 자아냈다. 또한 언니는 동생 덕에 많은 가족을 얻게 되었고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지만 문득문득 쌍둥이 언니는 서럽고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쌍둥이 언니는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보고 싶다”라며 “나도 가족이랑 같이 살았으면 사진 옆에 있을 텐데 아쉽다”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후 쌍둥이 언니는 56년 만에 찾은 가족들과 함께 어머니의 유골이 뿌려진 곳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엄마, 엄마라고 불러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처음 불러본다. 엄마 보고 싶어. 엄마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쌍둥이 언니는 형제들과 함께 “가족이 없어서 여태까지 가족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다. 이제야 찍게 돼서 너무 행복하다”라고 가족사진을 찍게 된 소감을 전하며 앞으로 행복하게 살 것을 약속했다.

(SBS funE 김효정 에디터)

‘세상에 이런 일이’ 엉덩이를 쳐줘야 밥 먹는 개…유독 엉덩이에 집착하는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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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부위를 만져줘야 밥을 먹는 개가 등장했다.

31일 방송된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는 엉덩이를 쳐줘야 밥을 먹는 개의 사연이 공개됐다.

이날 방송에서 제작진은 제보를 받고 한 강아지를 찾아 나섰다. 별다른 구석이 없어 보이는 녀석에 대해 견주는 “밥을 먹을 때 좀 특이하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더라”라고 설명했다.

곧 견주는 주인공 개 쿠키 앞에 사료를 갖다 줬다. 그런데 쿠키는 좀처럼 사료를 먹을 생각도 없이 으르렁댔다.

그런데 그 순간 견주가 쿠키의 엉덩이를 쳐주자 금세 밥을 먹기 시작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견주는 “차에 시동을 걸듯이 엉덩이를 쳐줘야 밥을 먹는다”라고 말했다. 특히 쿠키는 엉덩이가 아닌 다른 부위를 치거나 만지면 도통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PD가 엉덩이를 쳐주자 밥을 먹어 사람에는 관계없이 엉덩이만 쳐주면 밥을 먹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견주는 “3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이렇게 밥을 먹였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쿠키는 사료가 아닌 간식은 엉덩이를 쳐주지 않아도 잘 먹었다고.

쿠키는 어린 시절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도 밥은 먹지 않고 간식으로 연명했다. 하루는 처음 놀러 온 친구가 밥 먹는 모습을 보고는 갑자기 짖기 시작했고, 자신의 사료를 보고는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이때 쿠키를 진정시키고자 엉덩이를 쳐주지 밥을 먹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이 행동은 이후 계속됐다.

이에 전문가는 “쿠키는 밥을 먹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료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먹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는 “좋아하지 않아도 자기가 지켜야 하는 것이고 자기 것이라는 표현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밥을 먹을 때마다 이런 행동이 되풀이되는 것은 서로 간에 피곤한 일이라며 훈육을 통해 방법을 바꿔보자고 조언했다. 이에 견주는 전문가의 설루션에 따라 엉덩이를 쳐주지 않아도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리고 며칠 후 엉덩이를 쳐주지 않아도 사료를 스스로 잘 먹는 모습을 보여 견주를 흐뭇하게 만들었다.

(SBS funE 김효정 에디터)

‘목함지뢰 부상’으로 다리를 잃은 하재헌 중사가 전역했다

북한이 심어놓은 목함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25) 중사가 군복을 벗는다. 장애인 국가대표 조정 선수로서의 두번째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서다.

전역식은 31일 오전 1사단 수색대대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있는 ‘평화의 발’ 조형물 앞에서는 하 중사를 위한 기념행사도 있었다. 그는 2015년 8월 목함지뢰를 밟아 오른쪽 무릎 위, 왼쪽 무릎 아래를 잃었다. 하 중사는 “고향 같은 1사단 수색대대로 복귀해 전역식을 하게 돼 기쁘고 감사하다.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응원과 격려 덕분이었다. 군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패럴림픽 조정 금메달리스트 하재헌으로 인사 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2014년 4월 임관해 그해 7월 1사단 수색대대에 전입하고 정찰·의무관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목함지뢰 사건으로 부상을 당한 뒤 어려움을 극복하고 장애인 국가대표 조정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전국체전, 아시안컵 등 5개 국내·외 대회에 참가해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를 거머쥐었다. 그는 고심 끝에 군인 신분을 내려놓고 패럴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국가대표 조정 선수로서의 두번째 인생을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남쪽에서 만난 ‘금강산’, 이대로 쭉 걸어갔으면

굴뚝은 독특한 우리 문화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굴뚝은 오래된 마을의 가치와 문화, 집주인의 철학, 성품 그리고 그들 간의 상호 관계 속에 전화(轉化)돼 모양과 표정이 달라진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오래된 마을 옛집굴뚝을 찾아 모양과 표정에 함축된 철학과 이야기를 담아 연재하고자 한다. – 기자 말

 

철조망에 가린 고성 앞바다 청간정 앞바다 모습. 거리를 두고 보면 고성에 따라붙는 부정적 수식어에 눈이 가려 제대로 된 고성이 보이지 않는다.

철조망에 가린 고성 앞바다 청간정 앞바다 모습. 거리를 두고 보면 고성에 따라붙는 부정적 수식어에 눈이 가려 제대로 된 고성이 보이지 않는다.ⓒ 김정봉


 

청간정 아래 바닷가, 철조망이 막았다. 철조망 5m 앞에서 본 청간정 앞바다는 민통선, 휴전선, 분단군(分斷郡), 탄흔, 단절의 아픔, 군사보호구역 등 강원도 고성에 따라붙는 수식어들이 철망에 덕지덕지 붙어 잘 보이지 않는다. 눈을 좀 더 가까이 철망에 갖다 대자 어느새 철망은 사라지고 온전한 바다가 보인다. 반짝반짝 빛나는 진짜 고성을 보았다.

           

공간적으로 가까이, 시간상으로는 몇백 년 거슬러 올라야 진짜 고성이 보인다. 예전 고성은 설악산 북쪽에서 금강산 일대를 아우르는 꽤나 큰 고을이었다. 몇 백 년 전통을 이어온 왕곡마을 또는 강원도 대도시 강릉에나 있을 법한 속이 꽉 찬 어명기가옥이 있는 것도 그리 이상할 일이 아니다. ‘철망 눈’으로 보면 당최 이해가 안 되는 살림집이요, 마을이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청간정과 한때 대찰의 면모를 갖춘 건봉사에는 당대 둘째가라면 서운해 할 유명한 문인과 화가들이 들끓었다. 게다가 한 고을에서 하나도 갖기 힘들다는 무지개다리, 홍교를 두 개씩이나 갖고 있는 고성은 인문적으로도 기름진 고을이다. 철망으로부터 5m 떨어진 곳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50cm 앞까지 가볼 참이다. 진짜 고성을 보러.

 

 ‘진짜’ 고성 앞바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철조망 가까이 눈을 대면 온전한 고성 앞바다가 보인다. 사진은 청간정 위에서 내려다본 정경으로 의미만 부여한 것이다.(2016.12 촬영)

‘진짜’ 고성 앞바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철조망 가까이 눈을 대면 온전한 고성 앞바다가 보인다. 사진은 청간정 위에서 내려다본 정경으로 의미만 부여한 것이다.(2016.12 촬영)ⓒ 김정봉


 
시인묵객, 화가를 불러 모은 청간정(淸澗亭)

 


멀리 백호의 기세로 금강산에서 달려온 백두대간은 설악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쫙쫙 갈라진 산등성은 사람의 근육 같다. 이 모습에 주눅 든 나는 토성면 청간리에 다다를 즈음, 아스라한 해안 절벽 위 정자에 몸을 감췄다. 정자 이름은 청간정. 누군가 모든 것을 ‘받아’준다 해서 ‘바다’라 했던가. 이 정자는 그것을 보고 배운 모양이다.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땅은 솟아 벼랑을 이루고 바로 곁에서 청간천 물은 요동친다. 설악산 어느 골짜기에서 흘러온 청간천 싱거운 민물이 동해의 짠 바닷물을 만나 화들짝 놀란 것이다. 솟은 땅은 소나무와 산죽으로 가득하다. 산죽은 웃자라 어른 키 두 배만 하고 소나무는 손바닥만한 비늘이 생긴 걸 봐서는 꽤나 오래돼 보인다. 청간정은 그 안, 벼랑 끝에 달렸다.

 

‘근육질’ 백두대간 백호의 기세로 백두대간은 금강산에서 설악으로 힘차게 내달린다. 사진은 청간정 위에서 바라다본 정경이다.(2016.12 촬영)

‘근육질’ 백두대간 백호의 기세로 백두대간은 금강산에서 설악으로 힘차게 내달린다. 사진은 청간정 위에서 바라다본 정경이다.(2016.12 촬영)ⓒ 김정봉

 
청간정은 언제 생겼는지 모른다. 다만 1520년에 중수(낡은 건축물을 고친다는 뜻)한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청간정은 바닷가에 있었다. 간성현감을 지낸 택당 이식(1584~1647)은 ‘정자가 바닷물과 떨어진 것이 겨우 5, 6보’라 했다. 청간정 앞에 만경대 바위가, 청간정 옆에 만경루가 있었다. 청간정을 사실적으로 그린 김홍도, 정선, 강세황은 물론 정충엽, 이의성, 허필 모두 청간정과 만경루, 만경대를 함께 그려 넣었다.

그런 청간정은 1884년 불타 버렸다. 1928년, 12개 돌기둥만 겨우 수습해 지금의 자리에 지었다. 예전 청간정 자리는 군사보호지역으로 출입이 제한돼 있다. 위에서 내려다 보일까 싶어 청간정 옆 산죽오솔길로 들어가 보았으나 철조망에 막혀 더 이상 가지 못했다. 옛 문인과 화가들의 글과 그림을 보며 ‘도문대작(屠門大嚼)’이나 해야겠다.

 

청간정 정경 강원도 유형문화재 32호. 해안벼랑 끝에 달려, 동해바다는 물론 설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정자다.

청간정 정경 강원도 유형문화재 32호. 해안벼랑 끝에 달려, 동해바다는 물론 설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정자다.ⓒ 김정봉

 
청간정에 올랐다. 나는 멀리서 들리는 청간정 해변의 모래울음소리를 ‘눈으로’ 들었다. 많이 알려졌듯, 고성 해변모래는 고운 모래, 명사(明沙)라 하지 않고 울음모래, 명사(鳴沙)라 한다. 밟거나 진동을 주면 쇳소리 비슷한 소리, 콧노래나 뭔가 잘게 씹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이를 알았는지 청간정 해변을 두고 김정호는 한마디 남겼다.

 

“해변 위의 모래는 빛나니 흰 눈이 뒤섞인 것 같고 밟으면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니 주옥을 밟는 것 같다.” – <대동지지> 16권

 

정선의 <청간정도>세부 옛날 청간정은 바닷가에 있었다. 옆에 만경루가, 앞에는 만경대가 있었다. 만경대에는 돌계단이 꼭대기까지 나있고 그 위에 두 사람이 신선놀음 하고 있다. (청간정 자료관에서 촬영)

정선의 세부 옛날 청간정은 바닷가에 있었다. 옆에 만경루가, 앞에는 만경대가 있었다. 만경대에는 돌계단이 꼭대기까지 나있고 그 위에 두 사람이 신선놀음 하고 있다. (청간정 자료관에서 촬영) ⓒ 김정봉


  

청간정 해변 울음모래를 밟으며 한가로이 거니는 엄마와 아이들이 까마득하다. 울음모래소리는 울음소리 아닌 행복의 소리로 들린다.(2016.12 촬영)

청간정 해변 울음모래를 밟으며 한가로이 거니는 엄마와 아이들이 까마득하다. 울음모래소리는 울음소리 아닌 행복의 소리로 들린다.(2016.12 촬영)ⓒ 김정봉


 

해변을 걷는 엄마와 애들이 까마득하다. 모래를 밟을 때마다 울리는 모래 울음소리에 애들은 엄마가 콧노래 부른다 하고 엄마는 애들이 뭔가를 질겅질겅 씹는다 하겠다.

 
건봉사가 아닌 ‘금강산건봉사(金剛山乾鳳寺)’

 

육송정 홍교 보물 1337호. 능파교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변방에 이렇게 아리따운 무지개다리라니, 변방 고성을 다시 보게 된다.

육송정 홍교 보물 1337호. 능파교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변방에 이렇게 아리따운 무지개다리라니, 변방 고성을 다시 보게 된다.ⓒ 김정봉


  

건봉사 어귀 홍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겠지만 건봉사 어귀, 솔밭 안에 아주 조그맣고 앙증맞은 홍교가 솔발을 가로지르는 냇물에 걸쳐있다.

건봉사 어귀 홍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겠지만 건봉사 어귀, 솔밭 안에 아주 조그맣고 앙증맞은 홍교가 솔발을 가로지르는 냇물에 걸쳐있다. ⓒ 김정봉

 
건봉사 길은 무지개길이다. 건봉사 대웅전까지 가려면 세 개의 무지개다리, 홍교(虹橋)를 지나야 한다.

맨 먼저 만나는 무지개다리는 육송정 홍교. 건봉사 5리 앞에 있다. 간성읍 해상리와 탑현리를 잇는다. 다음 무지개다리는 건봉사 어귀에 있다. 죽죽 뻗은 솔밭 안에 있는 아주 작고 앙증맞은 홍교다. 이제 인간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들어오니 몸가짐을 조심하라는 경계다. 마지막 다리는 능파교, 세속의 때가 남아 있다면 다 벗기고 들어오라 한다.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7년(520년)에 설립된 고찰이다. 27년 5개월, 만 일 동안 염불을 외며 기도하는 ‘염불만일회’를 열 만큼 사세(寺勢)가 남달랐다. 변방에 있었지만 사세는 변방 절이 아니었다. 조선 세조대에는 왕실의 원당이 되면서 조선 4대 사찰의 하나로 성장했다. 한때 3000칸이 넘는 당우에 신흥사, 백담사, 낙산사를 말사로 두었다. 이랬던 건봉사는 대형 산불(1878년)과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신흥사 말사로 전락했다.

 

변방을 구실로 세상일에 나몰라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켰고 건봉사에서 법명을 받은 만해 한용운은 봉명학교를 세워 항일과 계몽운동을 하였다. 왕년의 영화는 부도밭에 남았다. 이렇게 넓은 부도밭은 본 적이 없다. 온전한 것에서 비석머리만 남아 ‘비목(碑木)’만도 못한 부도까지 크고 작은 부도가 뒤섞여 있다.

 

건봉사 부도밭 건봉사의 영화가 남아있는 곳이다. 온전한 것부터 비신은 사라지고 머리만 남은 부도비까지 수십 기 부도가 널려있다.

건봉사 부도밭 건봉사의 영화가 남아있는 곳이다. 온전한 것부터 비신은 사라지고 머리만 남은 부도비까지 수십 기 부도가 널려있다. ⓒ 김정봉


  

건봉사 불이문 강원문화재자료 35호. 1920년에 지어졌다. 글씨는 해강 김규진이 썼다.

건봉사 불이문 강원문화재자료 35호. 1920년에 지어졌다. 글씨는 해강 김규진이 썼다.ⓒ 김정봉


             

화마에도 불구하고 1920년생인 불이문(不二門)은 용케도 살아남았다. 옆에 500년 묵은 팽나무가 지켜줬다는 얘기가 들린다. 둘이 아니라는 불이문이다. 문 이름은 ‘분단’된 고성에 왜 이리 딱 들어맞는지, 남북으로 갈린 고성은 둘이 아니라는 의미로 들린다.

 

야트막한 오르막이 걸음을 죄어온다. 북으로 많이 오긴 한 모양이다. 능파교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는데 봉서루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금강산건봉사’. 북의 금강산, 남의 건봉사가 한마당에 있다니 일순간 마음이 달뜨기 시작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능파교 보물 1336호. 1704-1707년 사이에 축조된 것이다. 대웅전과 극락전 영역을 잇는 다리다.

능파교 보물 1336호. 1704-1707년 사이에 축조된 것이다. 대웅전과 극락전 영역을 잇는 다리다.ⓒ 김정봉


 

여기서 금강산이 멀긴 해도 북에서 보면 금강산 끝자락이요, 남에서 보면 금강산 들머리다. 금강산 일만이천 봉의 한줄기가 남서로 뻗어 건봉사에 닿은 것이다. 건봉사는 유점사와 더불어 금강산의 양대 본산 중 하나니 그리 이상할 일도 아니다.

 

예부터 금강산에 가기 전에 건봉사에 들러 하룻밤 묵어가는 문인, 관료가 수두룩했다. 교산 허균은 금강산 유람 길에 건봉사에서 하룻밤 묵으며 “건봉사가 어드메냐, 금강산 속에 있어 높고도 아스라하다”라 했다. 건봉사는 누가 뭐래도 금강산건봉사가 맞는 모양이다. 어쩌면 금강산이 예서 멀게 느껴지는 것은 마음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금강산건봉사 편액 봉서루 ‘금강산건봉사’ 편액이 인상적이다. 멀긴 해도 건봉사는 금강산 자락에 있다.

금강산건봉사 편액 봉서루 ‘금강산건봉사’ 편액이 인상적이다. 멀긴 해도 건봉사는 금강산 자락에 있다. ⓒ 김정봉


 

금강산과 건봉사의 연을 더 깊게 하려는 것인지, 봉서루에 1910년대와 1920년대 건봉사와 금강산 옛절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1929년에 찍은 건봉사 전경을 보면 불이문과 돌솟대, 능파교는 현재 있는 그대로고 대웅전, 관음전, 사성전, 명부전, 봉서루 등 크고 작은 절집이 계류 양편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최근 건봉사는 영화를 되찾으려는 듯 복원불사(사찰의 옛모습을 되살리는 일)를 벌이고 있다. 역설적으로 소멸과 몰락에서 오는 폐사지의 폐허미가 복원보다 낫다는 이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변방을 벗어나지 못한 채 분단을 경험한 고성이라면 번성과 영화를 되살리는 게 낫지 않을까. 내 마음은 복원불사로 기울었다.

 

옛 건봉사 전경 1929년 건봉사 전경이다. 건봉사 가운데를 가르는 계류 양쪽에 크고 작은 전각과 문루가 가득하다.

옛 건봉사 전경 1929년 건봉사 전경이다. 건봉사 가운데를 가르는 계류 양쪽에 크고 작은 전각과 문루가 가득하다.ⓒ 김정봉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 고성의 철조망이 느슨해지고 더 넓어지고 있다. 청간정에 들렀다가 건봉사에서 하룻밤 묵고 들뜬 마음으로 금강산으로 향하는 그 날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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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천이 두려운 직장인에게 템플스테이가 미친 영향

퇴사는 못했지만 나만의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불안하지만 계속 나아가는 X세대 중년 아재의 좌충우돌 일상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서울 근교의 템플스테이 연말 일정은 전부 마감된 지 오래였다. 가장 빠른 일정은 1월 둘째 주. 거침없이 예약했다.
 서울 근교의 템플스테이 연말 일정은 전부 마감된 지 오래였다. 가장 빠른 일정은 1월 둘째 주. 거침없이 예약했다.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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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새해 첫날, 좌천 발령으로 하루아침에 책상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그때 이후로 연말만 되면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이제는 제법 시간이 지나 충격이 많이 가시기는 했지만, 여전히 두려움은 남아 있다.

무신론자이지만 이번 새해 인사발령 때는 부디 아무 일이 없기를 빌고 싶었다. 마침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며 2019년을 맞이해야겠다 싶던 차에 템플스테이가 떠올랐다. 지금의 내게 딱이라는 생각에 서둘러 알아봤다. 지난 2018년 세밑의 일이었다.

이럴 수가. 나처럼 번뇌에 빠진 중생들이 이리도 많단 말인가? 서울 근교의 템플스테이 연말 일정은 전부 마감된 지 오래였다. 가장 빠른 일정은 1월 둘째 주. 거침없이 예약했다.


하지만 입소(?) 날짜가 점점 다가오니 불경스러운 근심들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솟아났다. 산속 추위 걱정을 시작으로 낯선 사람과 한방에서 자야 한다는 불안감까지. 설상가상으로 감기몸살 기운까지 찾아왔다. ‘굳이 무리해서 가야 할까…?’ 내 마음 한구석에서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찰나, 아내가 말했다.

“당신, 템플스테이 가기 싫어서 핑곗거리 찾으려고 머리 굴리는 거지? 정 그렇게 가기 싫으면 위약금 더 커지기 전에 빨리 취소를 하든가!”

아내는 나의 정신까지 꿰뚫고 있음이 분명하다.

걷고 쉬고 느끼고

템플스테이 입소 당일. 아내는 든든하게 먹고 가라며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를 차려줬다. 아무리 템플스테이지만 그래도 절에 들어가는데…?

“부처님이 이건 이해해 줄 거야.”

 


내가 괜찮다고 극구 만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절 앞까지 따라왔다. 다음 날 일정 마치는 시간에 맞춰 음식이라도 싸올 기세였다. 나는 아내의 극진한 배웅 덕에 딴 길로 새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배정된 방으로 안내받았다.

사찰은 재건축이 몹시 까다롭기에 심혈을 기울여 템플스테이 숙소를 손봤다고 한다. 기대 이상으로 깔끔하고 넓은 원룸이었다. 방안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화장실도 비록 좁았지만, 청소가 아주 잘 돼 있었다.

이제 곧 나의 룸메이트가 들어올 시간이다. 제발 코를 심하게 골지 않는 사람이기를, 수다스럽지 않은 사람이기를, 자면서 이를 갈지 않는 사람이기를 빌었다. 그 순간, 나와 하룻밤을 함께 보낼 그 남자가 수줍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우리 둘은 간단히 인사한 뒤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함께 이동했다.

 

 1시간가량의 걷기 명상이 시작됐다. 스님은 발뒤꿈치, 새끼발가락, 발바닥 전체 순으로 평소보다 천천히 걸으며 우리 몸의 감각을 조금씩 느껴 보라고 말했다. 확실히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1시간가량의 걷기 명상이 시작됐다. 스님은 발뒤꿈치, 새끼발가락, 발바닥 전체 순으로 평소보다 천천히 걸으며 우리 몸의 감각을 조금씩 느껴 보라고 말했다. 확실히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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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사찰을 스님과 함께 둘러 보았다. 그리고 1시간 가량의 걷기 명상이 시작됐다. 스님은 발뒤꿈치, 새끼발가락, 발바닥 전체 순으로 평소보다 천천히 걸으며 우리 몸의 감각을 조금씩 느껴 보라고 말했다. 확실히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반면에 겨울 방학을 맞아 엄마 손에 이끌려 강제 입소한(?) 중학생 두 명은 걷기 명상을 하며 산을 오른다는 이야기에 울상이 됐다. 과연 저 학생들은 무사히 모든 과정을 마칠 수 있을까…?

하산 길에 외국인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홍콩대학교 도시 경제학과에 다니는 그들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고.

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템플스테이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정부의 요청으로 전국 20여 개의 사찰에서 시작됐다 한다. 이후 외국인과 내국인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은 덕에 현재는 100여 개의 사찰에서 운영 중이다. 정부 보조금이 있기에 1박에 5만 원 정도의 참가비만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정부 보조가 없는 일본 같은 경우에는 한화로 1박에 30만 원이 훌쩍 넘는다고.

몸을 움직이니 머리가 비워지네

걷기 명상을 마치니 저녁 공양 시간이 됐다. 시계는 오후 4시 30분을 향하고 있었다. 사전에 이메일로 일정표를 받아봤을 때 가장 의아한 부분이었다. 해지기 전에 저녁을 먹고 오후 9시에 자는 게 가능할까. 한편으로는 맛없는 절밥을 통해 자연스럽게 1일 다이어트가 될 거라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나의 착각이었다. 절밥은 맛있었다. 너무 맛있었다. 절밥이 이렇게 맛있다니. 반칙 아닌가. 식사 도중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이 전국 사찰 중에서 밥이 맛있기로 꽤 유명하다고.

식사 후 예불을 마치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는 에밀레종의 사본 격이라는 종을 쳐 볼 기회를 얻었다. 매년 12월 31일 밤 TV에서만 보던 타종의 기회가 나에게도 주어졌다. 가족의 건강과 나의 발전을 기원했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생각을 비우고 몸을 쓰다 보니 인사발령에 대한 걱정 따위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0배를 넘어가니 약간의 현기증이 나면서 부처님이 보이는 것 같았다. 마음을 비우고(포기하고) 몸을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108배를 무사히 마쳤다.
 80배를 넘어가니 약간의 현기증이 나면서 부처님이 보이는 것 같았다. 마음을 비우고(포기하고) 몸을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108배를 무사히 마쳤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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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템플스테이 일정의 꽃이라 할 수 있는 108배가 시작됐다. 신체의 다섯 곳이 바닥에 차례로 닿는 불교의 큰 절 형태라고 한다. 그야말로 오체투지였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육체는 땀으로 흠뻑 젖었고, 정신은 무념무상에 빠져들었다. 몸이 너무 고통스러우니 잡생각이 끼어들 여지조차 없었다. 

절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내 무릎에서 나는 소리는 법당의 정적을 깨트렸다. 그만 포기하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다시 들려왔다. 90배를 넘어가니 약간의 현기증이 나면서 부처님이 보이는 것 같았다. 마음을 비우고(포기하고) 몸을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108배를 무사히 마쳤다.

“한 분도 포기하지 않고, 참으로 잘하셨습니다. 옆에 있는 서로를 격려해 주세요.”

참가자들끼리 ‘수고했다’고 말하며 물을 나눠 마셨다. 절에서 전우애를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샤워를 마치고 이불 위에 고단한 육신을 누이니 오후 8시 40분이 조금 넘었다. 몸은 피곤했으나,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맑아진 듯했다. 산사의 고요한 밤이 그렇게 저물었다.

108배를 마친 후의 마음으로

다음 날 오전 5시. 법당에서 촛불 명상을 했다. 오전 4시에 일어났지만 졸리진 않았다. 이후 108개의 구슬을 직접 꿰어 나만의 염주도 만들고, 티베트 스님들의 명상 수련법이라는 소금 만다라도 만들어 보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니 내가 상당한 내공을 가진 수련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겨우 1박 2일만에?

 

 너무나 힘들었던 108배를 마치고 서로를 격려했던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올 한해도 잘해보자, 김 차장!
 너무나 힘들었던 108배를 마치고 서로를 격려했던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올 한해도 잘해보자, 김 차장!
ⓒ 김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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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정을 마치고 나니 육체가 고단했다. 그만큼 회사생활로 인해 피폐해진 나의 마음은 큰 위로를 받았다. 업무 부담과 스트레스 등으로 마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이런 작은 휴식들로 비워내며 나아가면 된다는 것도 배우게 됐다. 이틀간의 수련은 내게 한 해의 회사 생활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돼 줄 것이다. 비록 월요일 출근과 동시에 연기처럼 사라질지라도.

템플스테이를 끝내고 사찰을 나오자, 저 멀리 아내가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너무나 힘들었던 108배를 마치고 서로를 격려했던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올 한 해도 잘해 보자, 김 차장!

배우 최민수가 ‘보복운전 혐의’에 대해 밝힌 입장

배우 최민수가 보복운전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최민수가 직접 입장을 밝혔다.

31일 서울남부지검은 특수협박, 특수재물손괴, 모욕 등의 혐의로 최민수를 지난 29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최민수는 지난해 9월 17일, 서울 여의도의 한 도로에서 앞서 가던 차량을 앞지른 뒤 급정거한 혐의를 받는다. 또 사고 발생 후 피해자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날 최민수도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최민수는 ”최근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많은 사랑과 응원을 받던 중에 이런 일이 알려져 죄송할 따름”이라며 ”검찰 조사에는 성실하게 다 협조했다”고 전했다.

최민수는 자신에게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최민수는 ”내가 1차선으로 주행하던 중, 2차선에서 갑자기 표시등도 켜지 않고 상대 차가 치고 들어왔다. 상대도 2초 정도 정지했다가 출발한 걸로 봐서 사고를 인지한 것”이라며 ”상대가 그냥 가길래 세우라고 경적을 울렸는데 무시하고 계속 갔다. 그래도 기다렸다가 그 차 앞에 내 차를 세웠는데 시속 20~30km 수준이었다”고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또 ‘모욕적 언행‘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최민수는 ”그쪽에서 내 동승자를 통해 ‘연예계 활동을 못 하게 해주겠다‘, ‘산에서 왜 내려왔냐’고 막말을 해 나도 화가 났다”고 주장했다. 또 상대방의 차가 망가져 수백만원 상당의 수리비가 발생했다는 점에 대해 ”못으로 찍힌 것 같은 손해가 있었는데, 내 차는 앞뒤 범퍼가 고무라 그런 흔적이 남을 수가 없다”며 ”더 시시비비를 따져봐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민수는 현재 아내 강주은과 함께 SBS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에 출연 중이다. 스포츠투데이에 따르면 SBS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파악 중이며, 곧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여수에서 35년 살았는데, 이런 광경 처음이네”


31일 오후, 여수에 많은 눈이 내렸다. 짧은 시간 많은 눈이 내려 여수 토박이들조차 놀랐다.

 


더 놀라운 일은 내린 눈이 산에서 녹지 않고 그대로 쌓였고 날씨는 화창하게 갰다.

 


덕분에 구봉산에서 밝은 햇살 아래 반짝이는 눈꽃을 실컷 구경했다. 돈들여 북쪽으로 올라가지 않아도 완벽한 겨울왕국을 경험했다.

 


눈내린 남녘 항구의 모습 쉽게 보기 힘들다. 구봉산 정상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마디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여수에서 35년 살았는데 이런 광경 처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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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버닝썬’ 직원이 손님을 성추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지난해 12월 서울 역삼동의 클럽 ‘버닝썬’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이 논란인 가운데, ‘버닝썬’ 직원이 여성 고객을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사실이 확인됐다.

3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버닝썬 직원 A씨를 고객 성추행 혐의(강제추행)로 불구속 입건해 수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30일 오전 6시~6시 30분 무렵 B씨의 신체 부위를 동의 없이 만지고, B씨가 자리를 피하자 쫓아가 입을 맞추려 하는 등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B씨로부터 신고를 접수한 뒤, 버닝썬으로부터 2주 내로 CCTV 영상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경찰이 방문했을 때 버닝썬 측은 “CCTV 영상이 삭제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은 디지털포렌식 등의 방법으로 CCTV 영상을 복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A씨의 성추행 사실은 ‘버닝썬 폭행 사건’을 가장 먼저 인터넷에 알린 김모씨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려졌다. B씨가 김씨에게 ”버닝썬에서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제보를 한 것이다. 경찰은 현재 A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기 위해 소환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버닝썬에서 보안요원과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왔다. 글 작성자 김씨는 폭행으로 인해 전치 5주의 상해를 입었다고 밝혔으며, 유튜브를 통해 클럽 내부에서 약물을 이용해 여성에 성폭력을 저지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버닝썬’에서 근무했던 전 직원은 국민일보, KBS 등과의 인터뷰에서 ”클럽 내에서 불법 대마초 흡입 사건이 있었다”, “VIP룸 화장실에서 성범죄도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클럽의 이사로 재직 중이던 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는 논란이 불거지자 이사직을 사임했다.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