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을 바꾼 줄 알았는데… 집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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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건강 집착증인가?” 언젠가부터 내가 너무, 과도하게 몸을 사랑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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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작가이자 정신건강 운동가인 제스 베이커는 ‘매력적이고 뚱뚱한(Attractive&fat) 캠페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의 저서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Things no one will tell fat girl)>를 찾아 읽는데 어느 대목에서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미국은 물론 세계를 장악한 ‘건강 집착증’을 맹렬하게 비판했다.
 

– 오늘날은 모두가 이렇게 말한다. “뚱뚱한 건 끔찍해. 하지만 극단적으로 마른 것도 끔찍하지. 모두 건강해지는 게 중요하다고!” 친구들이여, 우리의 건강 집착증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다. 

– “몸매는 걱정하지 말고 건강에만 신경써.” 이런 말을 하면서 힘을 되찾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멋지게 속은 거다. 표현만 달라졌다 뿐이지, 우리의 신체는 전과 똑같이 억압당하고 있다.

화장과 긴 머리, 몸매가 부각되고 움직이기 불편한 모든 옷, 주기적으로 몸무게 재기, 저열량에 단백질과 식이섬유 위주로 구성된 식단. 아름다움의 기준에 부합하려는 노력을 중단하면서 나는 오래된 습관을 하나씩 버렸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내버린 것이 체중에 관한 강박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제스 베이커의 일침은 깊숙한 곳에 감춰 뒀던 의심을 들추기에 충분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건강 집착증인가?’

사실 나는 제스의 책을 읽기 전에도 이렇게 반문한 적이 있다. 언젠가부터 내가 너무, 과도하게 몸을 사랑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나, 나는 ‘운동하는 여자’를 연재하는 동안 틈만 나면 운동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찾아갔고 운동을 직업으로 삼거나 취미로 즐기는 여성들과 함께 운동할 건수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건강한 몸에 관한 환상을 키웠고 특히 크로스핏 선수의 몸을 선망했다. 전신에 근육을 커다랗게 키우고 역도 등으로 흉통이 커진, 십일자 복근이 아니라 커다란 식스팩이 선명하게 새겨진 강인한 몸. 여성이 그처럼 근육질 몸을 가지려면 오랜 시간 강도 높은 운동을 해야 하고 다이어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식사를 조절해야 하므로 감히 시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팔로우한 인스타그램 계정이나 유튜브 채널에는 앞서 묘사한 것과 유사한 몸이 넘쳐났다. 그들은 잘 훈련된 특수 요원처럼 보였다. 그리고 버터플라이 풀업라고 불리는, 몸의 반동을 이용해서 턱걸이를 연속적으로 해내는 동작이나 체조 선수들이나 하는 줄 알았던 머슬업(철봉에 매달려 상체를 들어 올리는 기술)을 멋지게 해낸다.

운동을 ‘즐긴다’고 생각했는데…

어쨌거나 그것은 건강한 몸이자 건강 그 자체이기 때문에, 나는 그 모든 것을 죄책감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 몸의 기능이나 체력도 꾸준하게 좋아졌고 건강한 몸을 향한 애착과 환상도 함께 커졌다. 

그런데 활동적인 사람들의 문제는, 몸을 많이 움직임으로써 다칠 확률도 커진다는 데 있다. 나는 실제로 몇몇 친구들이 부상을 입거나 수술을 받는 것을 지켜봤다. 회복과 재활이 진행되는 동안 전처럼 마음껏 움직이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모습도.

그 친구들에게 ‘무리하지 마라’, ‘다치지 마라’, ‘몸을 아껴라’는 충고와 당부를 들으면서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몇 번이나 상상했다. 다치거나 기능을 잃고 움직이지 못하는 몸, 병들거나 쇠약해진 내 몸을. 그러자 말할 수 없는 상실감과 슬픔, 우울이 밀려왔다. 그 일이 있고 나는 나에게 선고를 내렸다.

‘당신은 건강 집착증입니다. 땅! 땅!’

이유인즉 제스 베이커의 지적대로, 나는 건강한 몸의 범주에 뚱뚱한 몸이나 지나치게 마른 몸, 나이든 몸은 포함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이는 기만이다. 건강하기만 하면 다 좋다고 하면서도 이른바 ‘건강한 몸’의 상을 따로 만들어놓은 것이다(사실 건강한 몸만큼 정형화된 몸도 없다).

여신 몸매나 S라인 몸매 따위가 치워진 자리에 건강한 몸을 들여놓는다고 해서 억압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우상일 뿐이다.

또 내가 화장이나 긴 머리에 앞서 체중에 대한 강박부터 버렸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기만임을 고백한다. 나는 애초에 뚱뚱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운동을 했기 때문에 체중이 크게 불어날 일도 없었다. 또 이삼 년 전부터 몸무게를 재지 않는 것은 사실이나 거울을 보면서 몸을 체크하는 습관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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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을 긍정도 부정도 않고 과도하게 사랑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그저 받아들일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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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제스 베이커는 어떻게 해서 자신의 몸을 긍정하고 뚱뚱하게 살기로 한 것일까.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그는 몸을 긍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셀피 많이 찍기, 팻키니(fatkini, 뚱뚱한 여성을 위한 비키니라는 뜻의 신조어) 입기, 체중 대신 증오 줄이기(lose hate to wight), 모든 몸매의 건강(HAES, Health At Every Size) 등을 제안했고 이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 셀피는 위험하지 않고 허영심의 표출이 아니고 자만심에 찬 것도 아니다. 셀피는 힘을 되찾는 수단이다. 당신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보는 수단이다. 당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을 규정하는 수단이다.  

실제로 제스 베이커처럼 플러스 모델로 활동하는 여성들은 대담한 노출로 몸을 드러냄으로써 획일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을 바꾸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자 한다. 쉬운 예로 뚱뚱한 여성은 비키니나 미니스커트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편견에 반해, 원하는 대로 마음껏 노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몸에 대한 긍정과 해방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내세우는 방법은 하나같이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내가 대상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대상화는 어떤 식으로든 왜곡 혹은 거짓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이미지를 인터넷이라는 진열대에 올려놓는 행위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그로 인한 정신적인 결핍을 부추길 여지가 충분하다.

몸의 문제는 성찰의 문제

물론 제스 베이커는 포토샵이나 각도빨 없는 사진을 공유하며 자신감을 키우라고 한다. 하지만 플러스 모델을 찍은 모델컷의 일률적인 스타일(노출, 표정, 포즈, 글래머러스한 몸매)을 떠올려 보면 이는 너무 나이브한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몸을 긍정도 부정도 않고 과도하게 사랑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그저 받아들일 수는 없는가? 사실 처음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몸에 관한, 분명하고도 일관된 견해를 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 초연함과는 거리가 멀다. 솔직하게 말하면 앞으로도 자신이 없다. 

어쩌면 몸에 관한 성찰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성은, 몸에 의해 차별받는 계급에 머물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몸은 개인의 역사와 가능성과 생동감, 삶의 역동성이 내재된 장소이자 그것이 구현되는 도구이다. 

우리는 그 모든 박해와 폭력, 멸시에 맞서서 인류의 진화를 도맡았다. 우리의 몸은 너무나 강하고 위대한 동시에 공격받기 쉽고 폭력에 취약하며 복잡하고도 또 복잡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다. 

“대전중구의회는 성추행사건, 제대로 해결하라”

대전 중구의회에서 발생한 의원 간 성추행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지나가고 있는 것에 대해 대전지역 여성단체들이 ‘제대로 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8월 말 일어난 대전중구의회 성추행 사건은 중구청장과 공무원, 의원들이 함께 자리한 술자리에서 동료 여성의원에게 과도한 스킨십을 한 박찬근(더불어민주당)에 의해 발생했다.

이러한 사실이 공개되자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윤리심판원은 ‘경고’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징계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전여성단체연합은 ‘유감’을 표하며 중구의회 차원의 강력한 ‘징계’와 ‘당사자 사과’를 요구하고 나선 것.


대전여성단체연합은 29일 성명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성희롱, 성추행사건에 대해 무관용의 원칙으로, 원스트라이크아웃의 강력한 제재를 선언했다”며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에서 너그러운 징계인 경고로 이 사건을 일단락 시킨 것은 심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은 명백하게 정치권 성추행사건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적인 개인이 아닌 공인들의 행태여서 눈 가리고 아웅하거나, 소나기만 피하는 심정으로 대충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개인차원에서 참고 넘어가거나 술김에 한 과도한 실수를 용인하려는 남성중심적인 음주문화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가해 당사자와 소속 정당은 지금이라도 이번에 발생한 성추행사건을 남녀 간의 사적인 문제로만 인식하지 말고, 다시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인으로서 진정성 있는 반성과 재발방지에 대한 다짐을 하는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중구의회도 더 이상 시간을 끌며 동료의원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식의 관용을 베풀지 말기를 바란다”며 ▲가해자의 공식적인 사과 ▲중구의회 윤리위원회 개최 시 여성인권 전문가 자문 반영 ▲성인지교육 실시 ▲경찰 인지수사 될 수 있도록 당사자 적극 조사 등을 촉구했다.

다음은 대전여성단체연합 성명서 전문이다.

 

중구의회의 성추행사건에 대한 성명서
의원뱃지를 내려놓을 심정으로 성추행사건 제대로 해결하라!
 
지난 9월초에 발생한 중구의회 성추행사건은 제대로 해결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구민들에게 실망감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구청장과 공무원, 의원 등 공인들이 자리한 술자리에서 과도한 스킨십이 있었고, 사건 발생 후 두어 달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징계를 하지 못하는 행태는 요즘 미투 국면과 갑질문화에 분노하는 세간의 정서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같은 정당에서 배출한 문재인 대통령이 성희롱, 성추행사건에 대해 무관용의 원칙으로, 원스트라이크아웃의 강력한 제재를 선언했음에도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에서 너그러운 징계인 경고로 일단락 시킨 것은 심히 유감이다.
 
2018년 대한민국에 불어온 미투열풍이 어떤 의미인지 중구의회는 제대로 아는지 묻고 싶다. 이 사건은 명백하게 정치권 성추행사건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적인 개인이 아닌 공인들의 행태여서 눈 가리고 아웅하거나, 소나기만 피하는 심정으로 대충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개인차원에서 참고 넘어가거나 술김에 한 과도한 실수를 용인하려는 남성중심적인 음주문화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가장 가까이에서 주민들을 만나는 기초의원들이 오히려 성추행 사건 가해와 피해 당사자가 되고, 옆에서 남의 일처럼 사건을 제대로 수습하지 않는 동료의원들의 무감각한 행동은 똑같은 반열의 범죄행위이다. 이런 행위들이 구태의연하고 낡은 남성중심적인 정치를 그대로 답습시키는 기제가 되고 있음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성평등은 시대정신으로, 사회정의로 중요한 가치로 대두되고 있고, 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필수조건이다.
 
이런 상식이하의 수준에서 총체적 난국의 중구의원들이 중구구민의 절반의 여성들을 위해, 모든 구민의 성평등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과연 제대로 견제와 감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지방선거 끝난 지 고작 반년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니 이렇게 의정활동을 할 생각이라면 의원 뱃지 반납하고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주민을 대리해서 일 해야 할 의원들이 오히려 사회정의도 모르고, 상식이하의 행동을 한다면 매 월 몇 백 만원씩 아까운 세금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가해 당사자와 소속 정당은 지금이라도 이번에 발생한 성추행사건을 남녀 간의 사적인 문제로만 인식하지 말고, 다시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인으로서 진정성 있는 반성과 재발방지에 대한 다짐을 하는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중구의회도 더 이상 시간을 끌며 동료의원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식의 관용을 베풀지 말기를 바라며 아래와 같이 중구의회 모든 구성원에게 강력히 요구한다.
 
– 남성의원 가해자는 이번 사건은 명백한 성추행사건임을 인식하여 중구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진정성 있게 사과하라!
– 중구의회의 윤리위원회 개최 시 여성인권 전문가를 참여시켜 자문의견을 반영하라!
– 성인지관점과 성평등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을 의회 모든 구성원들에게 연 2회 이상 실시하라!
– 성추행 피해사실에 대해 경찰들의 인지수사가 되도록 당사자들은 적극 조사에 임하라!
 
2018. 11. 29 
대전여성단체연합

“법, 예산, 체계 바뀔 때까지 #미투는 멈추지 않아”

 

 100여개 단체가 모인 미투경남운동본부는 11월 26일 창원지방법원 앞에서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기념해 ‘경남여성선언’을 했다.
 100여개 단체가 모인 미투경남운동본부는 11월 26일 창원지방법원 앞에서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기념해 ‘경남여성선언’을 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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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도 인간이다.”
“결국엔 바꾼다. #미투가 해낸다.”

100여개 단체가 모인 미투경남운동본부는 11월 26일 창원지방법원 앞에서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기념해 ‘경남여성선언’을 했다.

성폭력 혐의로 구속된 김해 ㅂ극단 대표 조아무개씨가 1심에서 일부 무죄를 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인 가운데, 미투경남운동본부는 이날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법, 예산, 체계 바뀔 때까지 #미투는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11월 25일은 ‘여성폭력추방의 날’로 1960년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독재에 항거하다 살해당한 세 자매의 죽음을 추모하며 여성에 대한 폭력을 추방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활동을 전개하기로 한 날이다.

또 12월 10일은 UN이 정한 세계인권선언의 날이다.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은 11월 25일부터 12월 10일 까지다. 여성단체들은 이 기간 동안 각종 여성폭력추방을 위한 캠페인과 행사를 해오고 있다.

미투경남운동본부는 “세계여성폭력추방의 날이 지정되고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여성은 폭력의 구조를 바꿔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여성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정폭력과 성폭력 등으로 죽임을 당하고 설사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그 피해를 온전히 스스로 감당하며 고통과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여성폭력피해자는 피해를 당하고도 피해자임을 밝히는 순간 주변으로부터 업무능력과 인간관계 등에 대한 폭로를 당하고 정치적 목적, 인사 이익을 운운하거나, 혹은 돈을 노린 꽃뱀의 의혹을 제기 받으며 법정에서 피해자다움을 강요받는 등 2차 가해로 고통 받고 있다”고 했다.

이어 “여성의 몸을 불법촬영하고 유포하는 디지털 성범죄는 꾸준히 증가하며 아주 심각한 수준이고, 가정폭력으로 위협을 당해 경찰에 신고해도 가정폭력은 여전히 범죄로 인정받기 어렵고, 데이트폭력을 신고하면 남자친구의 앞길을 막는 파렴치한으로 몰리고, 낙태죄는 오로지 여성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밀어닥친 여성에 대한 혐오현상에 대해 눈 감고 귀 막고 있는 현실과 이러한 여성폭력이 성차별에 근거하여 발생함에도 이 성차별적 구조를 바꾸라는 변화의 요구는 무시당하거나 후순으로 밀려남으로써 여성은 ‘우연히 살아남았다!’라고 자조해야 하는 현실이다”고 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김해 ㅂ극단 조아무개씨, 해군 소령 등이 받았던 일부 무죄를 언급한 이들은 “피해자에게만 피하지 않은 이유를 질문하며 줄줄이 무죄 판결을 하였다”며 “이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남성중심의 사회로 여성피해자에겐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고 남성 가해자에 게는 질문한번 제대로 하지 않는 관대함을 보여주는 반증이다”고 했다.

미투경남운동본부는 “우리 여성은 여성폭력에 대해 방임하는 사회를 더 이상 원하지 않으며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일상에서 폭력의 피해자 되기를 거부한다”고 했다.

이들은 “정부 모든 부처는 법・예산・체계에서 여성폭력방지에 대한 중장기 행동계획을 세우고 적극적인 예방과 근절정책을 실행하라”, “사법부는 여성폭력범죄에 대하여 성차별적 구조를 강화하는 부정의한 편파수사, 편파판결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또 이들은 “여성들을 처벌함으로써 임신, 출산, 양육의 사회적 여건 보장책임을 전가하는 낙태죄를 폐지하라”, “위력에 의한 직장 성폭력, 채용 과정의 성차별 등 범죄를 저지른 사업장에 강력한 처벌과 여성에게 안전하고 경제적 자립을 보장하는 성평등 일터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미투경남운동본부는 “스쿨미투는 계속되고 있다. 교육체계 성인지 관점의 전폭적인 개혁을 통해 아동,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하고 성평등 인식의 사회구성원을 양성하는 교육체계를 마련하라”, 경제적, 사회적 권력구조로 인한 성매매범죄의 피해 여성을 비범죄화 하라”고 했다.

미투경남운동본부 회원들은 기자회견 뒤 창원지방법원 앞 등에서 1인시위를 벌였다.

 

 100여개 단체가 모인 미투경남운동본부는 11월 26일 창원지방법원 앞에서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기념해 ‘경남여성선언’을 했다.
 100여개 단체가 모인 미투경남운동본부는 11월 26일 창원지방법원 앞에서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기념해 ‘경남여성선언’을 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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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여개 단체가 모인 미투경남운동본부는 11월 26일 창원지방법원 앞에서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기념해 ‘경남여성선언’을 했다.
 100여개 단체가 모인 미투경남운동본부는 11월 26일 창원지방법원 앞에서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기념해 ‘경남여성선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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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에 강제로 위안소 문신…” 북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

 지난 16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정대협 28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정대협 28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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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소에서 군인이 왼팔에 스미노(위안소 주인 이름으로 추정)라고 문신을 하려고 하자 저항하다 총으로 맞았다. 이때 왼쪽 눈을 실명해 위안소에서 풀려났다. 이후 문신을 딸에게조차 숨겼고 공중목욕탕도 못 갔다. 2004년 뇌출혈로 쓰러지자 오래 살지 못한다는 걸 각오하고 본인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것을 주변에 알리고 공개증언했다. “-북한의 마지막 증언자 김도연, 1923년생, 부산 출신으로 북한 함북 나남 거주, 2004년 사망.

“배급소 근처 골목에서 군인들이 각반을 풀어놓고 줄 서 있는 것을 봤다. 엄마가 ‘음매(淫賣)’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화려한 한복을 입은 여자들이 지나가는 것을 엄마가 불러서 일본식 떡국을 먹였다. 엄마가 음매하는 집의 불쌍한 여자들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억들을 통해 내가 봤던 것이 위안소라는 걸 알았다.”-나카무라 도미에, 1926년생, 북한 <노동신문>에 증언. 

“울타리 안에서 여자들이 왔다갔다하는 걸 봤다. 그 당시엔 사람들이 기생집이라고 불렀다. 18~20살 정도의 여자들이었다. 복도가 있고, 칸이 나눠져 있고, 칸마다 방문에 여자들 사진을 붙여 놨다.” -김영숙, 1925년생, 북한 선봉 거주 중 1938년 13세 때 목격.


북한 소재 위안소와 위안부에 관한 구술 증언이 공개됐다. 북한의 위안부 신고자는 219명으로, 이중 공개 증언자는 52명이다. 그러나 공개 증언자가 모두 사망함에 따라 현재는 공개 증언에 나설 생존자가 없다고 알려졌다.



재일조선인 르포라이터 김영씨는 지난 16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정대협 창립 28주년 기념 심포지엄 ‘북측 생존자들의 기억과 증언, 그리고 문제해결을 위한 남북연대’에서 “1938년 총동원 체제기가 되면 일본이 유흥업을 통제·억제했음에도 이때부터 2~3년간 군인 손님이 급격히 불어나 아주 장사가 잘됐다는 일본인(위안소 주인의 딸)의 증언이 있다”면서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여자들은 사치한 생활을 하면 안 되고 민간인이 이런 유흥업소에 다닐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이어 “그럼에도 1945년까지 (위안소가) 성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것은 완전히 군인들만이 이용하고 있었다는 증거”라며 “이용시간을 짧게 하고, 가격을 내려서 많은 군인을 받게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2003년부터 5차례 방북해 증언·자료 수집

김씨는 지난 2003년부터 올해까지 5차례에 걸친 방북 조사를 통해 위안부 관련 증언과 자료를 수집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자료를 북한 측에 제공하기도 했다. 북한은 위안부 관련 자료가 적은 편이지만 열성적으로 김씨에게 자료를 요청하고 배우려 했다. 김씨가 다닌 곳은 회령·방진·경흥·나남·청진·함흥 등 함경도 지역이다.  

김씨에 따르면, 국경수비대 본부가 있었던 함북 회령에 위안소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1928년생으로 해방 때까지 회령에 있었던 이가라시 준코씨는 위안소 도쿠가와루의 딸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회령에 정착한 재조 일본인으로 담배 매매를 통해 큰돈을 벌어서 요리점과 위안소를 경영했다.

이가라시씨는 김씨에게 1살 때 모친, 오빠 및 3명의 여성들과 함께 찍은 흑백사진을 보여줬다. 이날 공개된 해당 사진 속엔 한복을 입은 3명의 여성이 있는데, 이가라시씨는 이들을 “우리 집의 기생들”이라고 소개했다. 김씨는 “정확한 용어는 기생이 아니지만 그때는 그렇게 불렀다”며 “이가라시 할머니는 자기 집에서 경영한 것이 위안소가 아니라 합법적인 유곽이라고 매우 강조했다. 하지만 이것은 당시 국제법은 물론 일본법 위반이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최초 증언자는 리경생 할머니로 1992년 5월 3일에 증언했다. 한해 전 남한에서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 증언한 뒤 <노동신문>이 연일 위안부 관련 참상을 보도했고, 이에 영향 받아 리경생 할머니의 증언이 공개된 것이다. 북한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우선 배급, 주택 수리, 의료 우대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이날 북한 및 일본인 위안부 피해자들은 그 사회 내에서 연대자와 공감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씨는 “성노예제라는 시각에서 유곽도, 위안소도 봐야 한다”면서 “일본인 위안부도 매우 많았지만, 일본인 피해자 중에 본명으로 증언에 나선 분은 한 명도 없다. 글로 남기거나 비공개 증언만 몇 분이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어 “일본인은 가해자이기 때문에 일본 위안부들은 정부나 시민단체의 지원을 받으면서 증언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없다는 면에서 더 힘든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알아 달라”고 당부했다. 

북측의 할머니들에 대해서도 “길원옥 할머니처럼 증언집이 나오고, 사람들이 찾아와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면 굉장히 위로가 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한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북쪽 할머니들에겐 거의 없다”면서 “다른 이들과 연대를 하고 공감자들을 만나기가 아주 어렵다.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일제가 납치·유괴·강제연행으로 수많은 여성을 성노예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는데, 이렇게 하면 속아서 간 피해자들은 나서기가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북일수교 과정에서 위안부·징용·징병·원폭 피해자들이 제대로 인권을 회복하려면 국제적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 이번에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 판결도 북일수교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며 “평화비를 세운 지역단체가 북한에도 평화비를 세우자고 제안하고 있다. 현재 정의연 측에서 북한에 계속 콜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모두 보아야 할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展’


 

11월말에 아주 특별한 전시회가 열립니다. 소위 조건만남, 원조교제라 불리는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展입니다. 전시를 앞두고 홍보에 여념이 없는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를 만나보았습니다.

   
– 전시를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는지?
“작년에 일본 Colabo(콜라보)가 저희 기관을 방문했는데 콜라보에서 2016년부터 ‘나는 팔렸다’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고등학생 이미지를 활용해서 성적으로 판매하는 ‘JK(여자 고교생이란 뜻의 일본어의 앞글자를 약자로 쓴 것)비즈니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 위한 전시로, JK비지니스에 이용된 아이들과 작가들이 공동작업을 해서 ‘나는 팔렸다’라는 이름의 사진전이었어요. 그때 함께 온 일본 분들이 십대여성인권센터와 같이 전시회를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어요.

십대여성인권센터의 서울위기청소년교육센터가 매년 6회 정도 캠프를 운영하면서 집단상담 작업을 통해 나온 아이들의 작품이 있었고, 일대일 개별심리상담을 예술치료로 하니까 거기서도 아이들 작품이 많이 있었는데, 그 동안 그 작품들을 전시할 생각은 못 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일본에서 공동전시회를 제안하니까 아이들 작품을 전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시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작품을 통해 전 세계에서 동일하게 십대 아이들의 몸이 성적으로 소비되는 현실, IT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이 산업이 점점 커져가는 실태에 대해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주고 시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든지 자기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자리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특히 아이들이 자신들의 작품이 세상 밖에 나와서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자신들을 축하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을 확인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준비했습니다.”

– 1년 가까이 준비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고민과 생각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피해자의 아픔을 드러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누군가의 상처와 슬픔을 드러내는 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전시 준비팀에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슬픔과 아픔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이 아이들에게 또 다른 슬픔과 아픔을 주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전시회를 목적으로 슬픔과 아픔을 드러내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거죠. 아이들에게 힘이 되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상처를 드러내려면 굉장히 오랫동안 준비해야 한다는 걸 깨달으면서 기획 자체가 바뀌기도 했습니다.

일본 콜라보의 전시가 ‘나는 팔렸다’라는 제목으로 아이들의 피해상황에 초점을 맞췄다면 우리는 일본과 비슷한 현실이지만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보기로 했어요. 슬픔과 상처라는, 굉장히 사적인 부분이 드러나는 작품은 전시에서 많이 뺐어요. 십대여성인권센터와 같은 좋은 어른, 좋은 사회를 만났을 때 아이들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성착취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여러 사회적인 환경과 구조를 드러내려 했습니다.

아이들 작품 중에서는 상처와 아픔이 있지만 ‘오늘’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작품을 많이 고른 것 같아요. 그리고 동시에 ‘연대’의 의미를 담고자 했습니다.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은 분명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비가시화시키려는 풍토가 있잖아요. 격리시키고 배제하고 없는 존재로 만들려는 암묵적인 분위기나 문화에 대해 “Here I am”이라고 외치는 거죠.

그런 아픔과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 여기 있다고. 지금의 성착취 구조가 계속되는 한 이 아이들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걸 당사자들의 삶으로 드러내고, 더 나아가 그 옆에 그들을 지키고 함께 하는 우리가 너희 옆에 있다는 의미로 “Here We are”를. ‘연대’와 ‘참여’를 강조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아이들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으로 시작했다가 1년 정도의 준비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전시의 의미가 새롭게 정리되었습니다.”

   


   
– 어떤 분들이 이 전시를 보면 좋을까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이 전시에 꼭 오라고 이야기해요. 솔직히 남녀노소 나이불문 모든 분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입법을 하는 사람들, 정책을 시행하는 사람들, 연구하는 사람들도 와서, 단순히 ‘아동 성착취 문제가 심각해’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정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체험하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우리 센터에 오는 아이들에게 전시회에 꼭 오라고 말을 해요. 공식적으로 초청장을 보내겠다고도 이야기했어요. 자신의 작품이 전시가 되든 그렇지 않든 이 전시회에 담긴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전시회에 꼭 왔으면 좋겠어요.

전시에는 이 친구들이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익명으로 참여했지만, 본인들이 직접 전시회에 와서 작품을 보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과연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아이들이 전시를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까,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사실 저는 아이들의 모습이 가장 기대가 돼요. 본인들이 표현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는 거지만, 어떤 반응을 보일까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고.

전시회가 열리는 장소가 여대잖아요. 젊은 여성들이 많이 와서 이 실태에 대해서 많이 논했으면 좋겠어요. 본인들의 현재 이야기일 수도 있고 미래의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까요. 전시회에 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으로 그들이 살아갈 세상에서는 지금과는 다른 현실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조진경 대표의 말대로 이번 전시가 당사자 아동․청소년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용기가, 관람하는 모든 분들에게는 ‘연대’와 ‘참여’의 장이, 우리 모두에게 지금과는 다른 현실을 만들 수 있는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시회 포스터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展 "Here I am, Here We are"는 11월 28일부터 12월 9일가지 이화여자대학교 대산갤러리에서 열린다.
▲ 전시회 포스터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展 “Here I am, Here We are”는 11월 28일부터 12월 9일가지 이화여자대학교 대산갤러리에서 열린다.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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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을 기다렸다… 가사노동자법 제정하라!”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소속 가정관리사와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와 회원들이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법률의 즉각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소속 가정관리사와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와 회원들이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법률의 즉각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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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국회 앞, 전국의 가사노동자들이 모여 스스로의 노동권과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률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했다. 심옥섭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인천지부장은 “법을 만들어줘야 하는 국회에서 무작정 기다립니다. 언제까지 기다립니까? 직접 일해보지 않아서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라 이렇게 무시합니까?”라며 울분을 토했다.

부산에서 온 김옥연 전국가정관리사협회 부산지부장은 “가정관리사로 고객 집에 가서 가사 일을 17년 동안 했습니다. 이렇게 일해도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랍니다.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도 연금도 없습니다. 나이 들어 일을 하지 못할 때를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합니다”며 노동자가 아닌 가사노동자의 현실을 토로했다.

 

 11월 13일 국회앞에서 '가사노동자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심옥섭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인천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11월 13일 국회앞에서 “가사노동자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심옥섭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인천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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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자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의 ‘가사사용인 적용제외’조항(제11조 1항)으로 인해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아무 때나 해고되고 언제 고용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고용형태 속에서 실업급여의 혜택도 불가능하다. 임금체불이 발생해도 민사소송으로 해결해야 한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없어 노후를 준비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18대 국회 때부터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노동권을 보장하는 가사노동자법 제정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18대, 19대 국회 모두 논의조차 하지 않고 폐기시켰다.

김재순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안산지부장은 “2007년부터 매년 2번 이상 국회와 광화문을 오가며 가사노동자를 직업으로 인정해 달라고 외쳤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생각하면 한숨만 나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고 주장했다.

 

 가사노동자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공개질의서에 응답하지 않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회위원들에게 항의와 제정 동참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가사노동자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공개질의서에 응답하지 않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회위원들에게 항의와 제정 동참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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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 역시 국회에 계류 중인 3개의 관련 법안을 방치하고 있다. 이에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16명의 국회의원에게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의 필요성과 관련 법 통과를 위한 노력여부를 묻는 공개질의서를 발송했다.

이중 가사노동자법 제정에 동의하는 의견을 알려온 의원이 9명,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의원이 7명으로 자유한국당 의원이 5명(김학용, 임이자, 강효상, 신보라, 이장우), 바른미래당 의원이 1명(이상돈), 더불어민주당 의원 1명(김태년)이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소속 가정관리사가 국회의원실을 찾아 가사노동자법 제정에 적극 노력해줄 것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하고 있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소속 가정관리사가 국회의원실을 찾아 가사노동자법 제정에 적극 노력해줄 것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하고 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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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소속 가정관리사가 국회의원실을 찾아 가사노동자법 제정에 적극 노력해줄 것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하고 있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소속 가정관리사가 국회의원실을 찾아 가사노동자법 제정에 적극 노력해줄 것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하고 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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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자들은 가사노동자법 제정에 응답하지 않은 의원들에게 조속한 법제정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실을 방문하여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는 요청서를 전달하였다.

운동하는 여자들의 성지, 수영장

 

여유 있는 김서영 24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수영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경영 여자 개인혼영 200m 결승. 김서영이 역영하고 있다.
 오감으로 물을 느끼면서 감각적이고도 영적인 공간으로 진입하는 순간, 바닥을 힘껏 딛고 몸을 뻗으면 물살이 몸을 밀어주는 그 감각, 햇볕이 쏟아지던 전면 창. 그곳에서 아침을 숨 가쁘게, 그리고 밀도 있게 보내는 것이 좋았다(사진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경영 여자 개인혼영 200m 결승에서 김서영 선수가 역영하는 장면).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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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서 천천히 유영하는 나? 환상은 곧 깨졌다 

지금껏 나는 무수히 많은 처음을 겪었다. 첫 음주, 첫 습작, 첫 월급, 첫 해외여행, 첫째 조카가 태어난 날, 그리고 처음으로 배운 운동.

어느 호텔의 전망 좋은 루프탑 수영장에서 멀뚱거리며 서있던 것이 발단이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건 삶의 중요한 재미를 놓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강습용 수영복을 하나 사서 가까운 구립 수영장으로 갔다.


그런데 루프탑 수영장과 구립 수영장 간의 괴리가 너무 컸다. ‘이른 아침의 고요한 수영장, 그곳에서 천천히 유영하는 나’라는 그림을 그려놨는데 나를 기다리는 현실은 그렇게 근사하지 않았다. 우선 수영장은 시끄러웠다. 고물 스피커에서 훅송과 트로트가 번갈아 가며 쿵작거렸고 강사들이 수시로 호루라기를 불어 젖히는 통에 귀가 따가웠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 조도가 낮은 실내의 어둑함과 코를 자극하던 염소 냄새도 생생하다.

처음 강습을 받던 날 강사가 나를 한번 보더니 유아용 풀로 가라고 했다. 그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킥보드에 의지한 채 발버둥치는 것이었다. 작고 탁한 웅덩이에 사는, 이제 막 알에서 부화한 치어가 된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다들 성인용 풀에서 맹연습 중인데 몇 날 며칠을 혼자 유아용 풀에서 어슬렁거리자니, 외로움이 사무쳤다. 그러나 단번에 매료되고 말았던 그 아름다운 수영장을 떠올리면서 고독의 시간을 견뎠다.

내 발차기를 볼 때마다 갸우뚱거리던 강사가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성인용 풀에 들어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총 여섯 개의 레일에는 따로 표시가 없지만, 입구에서 가까운 쪽부터 초급, 중급, 고급 세 개의 반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으며 이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만큼이나 엄격하다. 실수로 중급 레일에 들어간 나는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초급반으로 이동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 ‘음파’조차 제대로 안 되는 피라미가 아닌가.

운동하는 장소로선 드물게 여성향이 강한 곳

드디어 줄지어 레일을 왕복하며 함께 버둥거릴 동료들을 얻었다. 그들 대부분은 중년 이상의 기혼 여성이었다. 수영장은 운동을 하는 장소로선 드물게, 여성향이 강한 곳이다. 사회에서 ‘엄마’나 ‘아줌마’로만 명명되는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땀 흘리고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말하자면 ‘#운동하는여자’의 조상님과 같은 존재다. 수영은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거의 최초로 강습이 이루어진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의 경제 성장의 영향으로 주부들도 드디어 여가를 갖게 됐고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은 등교하는 오전 시간, 건강도 챙기고 다이어트도 할 겸 수영장에 모였다. 

지금도 수영과 에어로빅은 주부 유산소 운동의 양대 산맥이다. 특히 수영은 복장만 갖추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시작할 수 있고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운동량이 많아서 인기를 끈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수영이 여성적인 운동으로 규정되는 이유는 너무 격렬하거나 남성적이지 않은, ‘얌전한 운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 세월 여성들의 놀이터이자 사교의 장이었던 수영장. 이곳에서 나는 수영만 배운 것이 아니라 수영장 문화에 얽힌 소문을 확인할 기회를 얻었다. 수영은 풀에서 하지만 여성들이 진짜 친해지는 곳은 샤워실과 탈의실이다. 경험한 바에 의하면 수영장 탈의실은 성토의 장이다. 텃세의 벽을 넘어서 주요 멤버들과 친해진 이후 나는 그들의 남편과 아이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은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저절로 알게 됐다.

‘아가씨 한정’으로 적용되는 엄격한 잣대

그들은 남편과 아이, 가정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쏟아낸다. 보통 남자들은 여자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데 바로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도 여자들의 뒷말을 막을 순 없다. 뒷말은 억압된 자들의 아편이므로.

그리고 거의 모든 여자들이 매일같이 디지털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 장소답게, 서로의 외모를 평가하는 데도 거침이 없다. 한 중년 여성은 나를 볼 때마다 ‘싱싱하네, 싱싱해’라는, 수산물 코너에서 고등어를 고를 때나 쓸 것 같은, 칭찬인지 희롱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인사 삼아 건네곤 했다. 하지만 젊은 여성들에게는 ‘아가씨 한정’으로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 이를테면 ‘아가씨인데 왜 저렇게 배가 나왔는가?’ 하는 주제로, 당사자도 없는 자리에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끝으로 이 모든 사교 행위는 음식을 나눠 먹음으로써 완성된다. 여성들만 모이는 집회에도 쿠키와 젤리, 초콜릿이 넘쳐나는 것을 보면 음식을 나누며 친해지는 것은 여성들만의 고유한 습성이다. 수영장 탈의실에서는 주로 떡을 권하고 나눠 먹었다.

하지만 종류를 불문하고 떡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탈의실의 도원결의가 시작될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먹지 않으려는 나의 의지보다 먹이고 말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앞섰고 그때마다 입안에 든 떡을 쉬이 삼키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그래도 수영장의 주된 기류는 ‘해방감’

불특정 다수가 모인 집단이 대개 그렇듯이 수영장에서도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언행으로 마음이 불편하고 뒤끝이 개운치 않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수영장에 흐르는 주된 기류는 다름 아닌, 해방감이었다. 고작 한두 시간이라도 좋은 자유, 웃음, 그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 간의 친밀감. 

그래서 지금도 가끔 네 가지 영법과 입수 동작을 배우던 때가 떠오른다. 오감으로 물을 느끼면서 감각적이고도 영적인 공간으로 진입하는 순간, 바닥을 힘껏 딛고 몸을 뻗으면 물살이 몸을 밀어주는 그 감각, 햇볕이 쏟아지던 전면 창. 그곳에서 아침을 숨 가쁘게, 그리고 밀도 있게 보내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팔 년째 아침 수영을 한다던 어느 중년 여성의, 나비처럼 날갯짓을 할 때마다 섬세하게 갈라지던 등 근육 같은 사소한 것이 좋았다. 몸이 불편해서 젖은 수영복을 벗지 못하던 할머니를 돌아가며 씻겨주던 손길도.

최근에 서울시는 수영장의 여성 전용 반을 일괄 폐지하기로 했다. 모든 시민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에서 남성이 배제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게 이유다. 수영장의 여성 전용 반이 사라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초에 여성 전용 반이 필요했던 이유가 성차별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변화하는 중이라고 해도 체육관은 여전히 마초성이 지배하는 공간이고 특히 나이든 여성들이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장소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무엇보다 역차별 문제를 바로잡아야 할 만큼 차별적인 문화가 사라졌는지 의문이다. 수영장만이라도 온전히 여성의 공간이었으면 하는 미련이 남는다.

“불평등한 독박돌봄 넘어 돌봄연대 방안 모색해야”

한국여성민우회는 2018년 부모돌봄 경험이 있는 여성 20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부모 돌봄을 경험한 여성들의 목소리로 돌봄 불평등의 현실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돌봄의 공공화·사회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이 글은 ‘비혼/딸 부모돌봄, 두려움과 막막함 사이: 돌봄연대사회를 상상하다’ 토론회에서 발표되었던 발제문 ”딸’을 넘어 시민을 상상하다’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문은 한국여성민우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자 말]

 

“돌봄이 여성에게 부당하고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과정, 돌봄의 책임을 맡은 이후 사회화 가족으로부터 잊혀지고 배제되는 현실 등 돌봄을 둘러싼 현실은 부정의하다. 돌봄정의 관점에서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독박돌봄을 넘어 함께 책임지고 함께 돌보는 돌봄 민주주의를 위한 돌봄연대 방안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비혼여성의 부모돌봄 경험: 부정의한 독박돌봄을 넘어 돌봄민주주의를 향하여>(석재은) 발췌)

돌봄에도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사회의 돌봄 문제 핵심은, 돌봄 노동이 특정 성별에게 집중되어 왔다는 것이다. 돌봄의 젠더불평등을 이야기하지 않고 돌봄의 사회화·공공화 방안을 찾을 수 있을까? 다수의 인터뷰이들이 가족 내 남성구성원이 돌봄에 참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했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돌봄 비용만 부담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돌봄을 나눈다는 건 비용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돌봄 행위에 동참하는 것, 돌봄에 시간을 쓰는 것, 그리고 정서적 힘듦을 함께 나누는 것이 출발점이다.

“기본적으로 육아도 아빠 참여가 많이 늘어나고 있잖아요. 돌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아들이 참여를 해야 된다고요. 아들이 돌보는 게 맞지. 오빠한테도 그랬어요. 새언니가 돌보는 건 말이 안 되고 네 엄마니까 네가 돌봐라, 했어요.”

“엄마 자식이 셋인데, 언니랑 저만 하고…오빠 한 명이 약간 역할 분담을 같이 해줬으면 그 만큼 덜 힘들었을 수도 있잖아요. 근데 아예 하질 않으니까요.”

인터뷰이들이 공통적으로 덧붙인 말은 ‘한 명의 가족이 돌봄을 전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돌봄은 한 명이 아닌 함께 나눠야 한다’는 것이었다. ‘돌봄은 품앗이’라는 표현도 여러 번 나왔다. 대통령이 나서서 치매 국가 책임제를 공표하는 등 사회적으로 ‘돌봄’은 공공의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 내에서 돌봄을 ‘딸’에게 미루고, 장기요양종사자의 여성 비율이 95%에 가까운 현실에 대해 구체적인 실천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돌봄의 사회화·공공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관계 중심의 일상적 돌봄

 

‘내가 꿈꾸는 돌봄 제도/시설/삶의 모습이 있다면?’ 이라는 질문은 던졌을 때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이 ‘노년에도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공동체’, ‘돌봄협동조합’을 언급했다. 일반적인 시설 입소를 이야기하는 여성들 역시, 그 시설이 ‘요양사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일상과 격리된 공간이 아닌, 학교나 유치원처럼 삶의 공간에 자연스럽게 있었으면 좋겠다’ 는 바람을 이야기 했다. 이는 시장화 된 돌봄이 아닌 평등하고 관계 중식적인 돌봄 환경 구축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내가 엄마를 돌보면서 일을 그만두지 않은 건, 돌봄에 일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은, 물론 희생한 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일까지 그만두면서 매달려야 하나? 제 일에 대한 신념이 무엇보다 컸던 것 같고 경제적인 이유도 크고. 그리고 또 저희 엄마가 전업주부로 (가족에게 집중하면서) 살다가 저런 질환을 겪으면서 사회적 관계가 정말 끊어지는 걸 보고서는 아 사회적 관계가 되게 중요하구나.”

“나는 만약에 내가 그런(거동이 힘든) 경우가 된다면 요양원 갈 생각도 하고 있어요. 중요한건 그 시설에서 좋은 사람, 요양보호사 분들을 만나서 관계를 맺는 게 관건인데.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나도 노년후기까지 살아있다고 하면 싫던 좋던 간에 내 힘으로는 못산다는 것을 알아요.”

“아쉬움이 느꼈던 게 아파트마다 그런 시설이 있으면 좋겠다. 격리돼있는 곳이 아니라 운동장시설도 같이 이용하고 학교의 꽃밭도 같이 돌아볼 수 있고. 애들이 와서 생활 속에서 와서 자투리 시간 이용해서 그렇게 해서 할머니들 모시고 꽃밭 돌아보게 하고…”

가족을 넘어, 확장되는 관계를 위한 새로운 제도

비혼인 인터뷰이들에게 본인의 노후는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던졌다. 돌봐줄 가족이 없다면, 혈연/혼인 관계로 맺어지는 가족이 아닌 가족을 구성하여 서로를 돌보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가족 구성권’,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성평등한 복지국가의 모습은 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조건이 가족을 중심으로 닫혀있지 않으며, 돌봄 공동체의 가능성 역시 결혼을 중심으로 닫혀있지 않은 사회다. 가족을 혈연이 아닌 친밀성과 관계성 중심으로 재구성함으로서 변화하는 현실을 법·제도에 반영해야 한다.

“여자 노인들 공동체. 여성노인 공동체.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노년을 같이 보낼 수 있는 이런 게 좀 있었으면 좋겠다. 경제적으로도 서로 의지가 되면 좋겠는데 정서적인 공동체, 문화적 공동체, 이런 것들을 다 포함하는 그런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어요.”

“결혼 안 한 친구들도 많거든요. 친한 친군데 제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한 동네 같이 살고 있어요. 그래서 가족은 확대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결혼 안 한 다른 친구들과도 뜻이 맞으면 같이 공동체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둘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는 혈연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네가 아프면 내가 보호자가 될 수 없다. 그게 문제인 것 같긴 하다.’ 생활동반자법 이런 식으로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게 필요하긴 하죠, 확실히.”

“협동조합 요양병원 건립해도 좋을 것 같아요. 조합을 통해서 요양병원을 건립하는 방법도 생길 거고 그렇게 할 거라고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시설에 들어가고 싶어요. 경쟁률이 치열할 것 같긴 한데. 하나의 마을에서 주치의제도 해서 그 마을의 인원들을 다 케어를 하고 그 마을에서 수용할 수 있는 요양병원이 생겼으면 좋겠고. 앞으론 가능하지 않을까.”

돌봄과 노년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

국가는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를 국가적 위기상황으로 간주하고, 해결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 언론도 나서서 ’10명의 노인을 1명의 청년이 부양(돌봄) 해야 한다’는 식의 기사를 쏟아낸다. 사회 전반의 나이듦에 대한 불안과 공포도 함께 커진다.

이러한 고령화 사회의 담론들은 노인을 ‘나오는 돈은 없고 들어가는 돈만 있는’ 잉여적 존재로 위치시킨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서로 돌보고 돌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누구나 돌봄이 필요함에도 노년이 ‘(돈 없고, 아픈 상태로)오래 사는 것은 재앙’, ‘늙으면 민폐’, ‘누군가의 짐’으로 정의되는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 나이듦을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상상할 수 없다.

인터뷰이들은 돌봄을 모두가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돌봄과 노년에 대한 전사회적 패러다임 전환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노년학이 필수 교육 과정에 들어가야 한다’, ‘육아만큼 노인 돌봄에 대한 정보와 일상적 교육이 필요하다’,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등 노년에 대해서 사회가 들여다보고, 죽음, 질병에 대해 터부시하는 문화가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은퇴는 빨라지고 살 수 있는 기간은 옛날보다 늘어났잖아요. 평균수명이라는 게 늘어났잖아요. 은퇴 후의 삶은 되게 길어졌거든요. 거의 20년. 어떻게 보면 100년 시대 이러면 거의 40년 가까이 되잖아요. 그래서 노인이 일할 수 있는 것, 자기 삶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꼭 노동이 아니더라도 그럴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 늘려야…”

“돌봄 교육. 가족들한테도 그런 거 있잖아요. 아빠한테도 느꼈고 엄마 때도 그렇겠지만 일본에서는 치매 환자를 다루는 방법 이런 거 해가지고 홍보용 영상 이런 게 있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이 사람과는 손을 5초 동안 잡고 눈을 5초간 맞추시고 안정을 시켜주세요, 이러면서 그 상황이 됐을 때 홍보하는 영상이 있던데 그런 게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족들한테 강의, 교육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그 상황이 맞이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더 편할 테니까. 가족도 돌봄 교육이 필요하다. 강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나도 언젠가 나이가 들 텐데 더군다나 나는 봐줄 사람도 없겠지만 노인의 상태, 심리 이런 것들을 제대로 알아야 되겠다. 프레임을 바꿔야 되겠구나.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건 힘든데 이제 부모도 나이가 들면 신체가 아이처럼 정신도 점점 아이가 되니까 거꾸로 이제 엄마한테 내가 케어가 필요하다. 프레임을 바꾸게 되더라고요.”

“인생 후반기에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대해서 너무 준비 없이 닥치게 되는 것 같아요. 삶의 태도나 자세 그리고 노후에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이런 것 들을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개인적으로도 시도들이나 노력들이 없으면 막상 닥쳤을 때 되게 당황스러운 것 같아요.”

“저는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죽음을 너무 터부시하고 죽는 걸 너무 쉽게 생각하고 죽는 건 정말 지리한 과정이거든요. 죽어가는 과정에 대해서 평소에도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얘기하기를 꺼려하잖아요, 분위기들이.”

돌봄연대사회로의 준비

물론 앞에서 언급된 새로운 상상들은 지금 당장 현실화되기 어렵다. 하지만 돌봄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돌봄연대사회’로의 변화는 요원할 것이다.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바탕으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면서 관점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

그 첫 번째로, 돌봄 비용을 부담할 자녀가 없거나 가족들의 경제력 유무와 상관없이 평등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보편 복지로서의 돌봄 제도 구축’이다. 현재와 같은 영리형 민간기관 중심이 아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책임지는 공공 노인 돌봄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현재 서울시 소재 장기요양기관 총 2573개소 중 개인 운영 기관이 98%으로 공공의 역할이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기초 자치단체 단위의 직영 통합 재가요양기관 설치 및 운영을 통해 요양서비스 표준을 확립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장기요양종사자 처우개선’이다. 민간장기요양 기관에 대한 관리 감독과 함께 지자체 차원의 조례를 제정하여 장기요양종사자 지원 사업을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사회서비스원과 같은 직접 고용 형태의 시스템을 구축하여 돌봄 종사자의 생활안정과 고용안정 보장을 비롯한 노동조건 개선 및 인권, 건강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집에서 개호(돌봄)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맨 먼저 가족 중에서 ‘누가 보살필 것인가’를 정한다. 이때 개호자로 가장 먼저 꼽힐 사람은 돌봐야 하는 다른 가족이 없는 독신이다. ‘개호 독신’이란 초고령사회라는 흐름과 만혼화, 비혼화라는 흐름이 만난 지점에서 생긴 멈출 수 없는 소용돌이다. 그렇기에 독신자가 부모를 돌보는 것, 개호하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할 시점이 왔다.”

– <나홀로 부모를 떠안다>, 야마무라 모토키 저

현재 일본 사회는 비혼화와 고령화로 인한 ‘비혼 부모 돌봄’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 역시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즉 비혼 자녀에 의한 부모 돌봄 뿐 아니라 법적 가족이 없는 노인들의 돌봄 문제 또한 멀지 않은 현실이다. 모두가 돌보고 돌봄 받는, 돌봄연대사회로의 변화는 바로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러면 돌보는 사람의 인생이 없어요”

한국여성민우회는 2018년 부모돌봄 경험이 있는 여성 20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부모 돌봄을 경험한 여성들의 목소리로 돌봄 불평등의 현실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돌봄의 공공화·사회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이 글은 ‘비혼/딸 부모돌봄, 두려움과 막막함 사이: 돌봄연대사회를 상상하다’ 토론회에서 발표되었던 발제문 ”딸’을 넘어 시민을 상상하다’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문은 한국여성민우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자 말]

 

 

한국여성민우회에서 발표한 ‘2017 성차별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 안에서 가장 많은 성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대별로 살펴보면 10~30대 여성들은 가족에 대한 정서적 케어(친구 같은 딸, 애교, 부모마음 헤아리기 등)를, 40대 이상의 여성들은 부모 돌봄의 역할을 요구 받고 있었다.

차별 사례를 분석하면서, 한국사회는 여성을 ‘시민’이 아닌 ‘딸’로 인식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여성들이 시민이 아닌 ‘딸’로서 원가족에 대한 돌봄노동을 자연스럽게 요구받는 현실은 새로운 시대,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열망과 대비되는 한국사회의 민낯이다.

딸 돌봄의 시대


인터뷰이 대부분은 ‘어쩌다보니’, ‘자발적 선택’, ‘내가 여건(비혼)이 되어서’,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돌봄) 역할을 해서 자연스럽게’, ‘며느리보다는 내가 하는 게 낫(맞)다고 판단해서’,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의 맥락을 살펴보면, 능동적 수용에 가까웠다.

여성들에게 부모 돌봄은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떨어진 과제가 아닌, 그간 원가족 안에서 요구받거나 수행해 왔던 역할의 연장선이었던 것이다. 돌봄은 여성의 역할이라는 ‘공식’이 공고한 현실에서, 높은 확률로 부모 돌봄의 역할은 ‘딸’의 몫이 된다. 특히 돌봐야 할 가족이 없다고 판단되는 비혼 ‘딸’일수록 1순위다.

“저도 그게 미스터리에요. 내가 왜 한다고 했을까? 그게 오랫동안 뿌리 깊게 집안일은 돌봄 노동은 첫째가, 장녀가 해야 한다, 뭔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게 저한테 내재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빠와 오빠는 당연하게 제외 되니까 저랑 언니밖에는… (돌볼 사람이 없었죠) 언니가 결혼하기 전에 돌보고, 이후엔 제가 돌보고.”

‘돌봄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이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이 ‘가족들이 내가 하는 돌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원가족 내에서 돌봄을 나누지 않는 남성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도 연결된다. 오빠나 남동생에 대한 부모들의 상반된 태도는 가족이 성차별을 체감하는 대표적인 공간임을 보여준다.

“물론 제가 자식으로서 해야 될 도리이긴 한데 뭔가 제일 불합리하게 느껴졌던 건 오빠한텐 뭔가 화살이 가지 않아요. 돌봄 노동이 제일 힘든 게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아요.”

“저희 엄마가 엄청나게 저한테 일을 그만 두라고 엄청나게 압박을… 아빠가 돈을 버시니까 네가 나를 간병해라, 그런 얘기를 엄청 많이 하시는데 안 들었죠. 남동생한텐 그런 얘기 안하잖아요. 근데 저한텐 그런 얘길 하죠.”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결혼제도 안에서의 ‘며느리 역할’에 대한 여성들의 문제의식이다. 기/비혼 여성 모두 본인의 독박 돌봄에 대한 어려움과 부당함을 토로하면서도, 과거처럼 ‘며느리’가 부모 돌봄을 맡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못할 짓’, ‘부당하다’고 표현했다는 점이다.

결혼제도 안에서 ‘며느리’가 가진 지위, 역할에 대한 여성들의 변화된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여성들에게 부모 돌봄은 ‘며느리에게 전가 되는 것’의 부정의함에 대한 개인적 실천이다. 돌봄 전담자가 며느리에서 딸로 변화했지만, 여전히 여성이 돌봄전담자라는 점에서 성역할이 강력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준다.

“저도 며느리 입장이었잖아요. 그런데 시아버님도 모셔보고 했지만 그냥 저는 뭐 제가 그러려니 하고 모셨지만 피도 안 나눈 며느리한테 어머니를 맡긴다는 건 별로 합리적인 것 같진 않아서 그래도 여성이니까 내 도움을 더 많이 필요로 하실 거고…”

“며느리는 무슨 죄냐고요 내 부모도 아니고. 나야 내 부모니까 감수하고… 형제들 힘들게 사니까 ‘아휴 그래 말자, 그거가지고 쌈박질 해봐야 저 세상가신 부모님이 좋아할리도 없는 것’이고 그냥 내 몸 하나 희생하면 되지.”

문제는 ‘독박’이다

중증질환이나 치매 증상 있는 부모를 돌보는 경우 24시간을 책임지는 것에서 오는 힘듦을 토로했다. 돌봄은 감정노동을 포함한 노동집약적 행위다. 인터뷰이 중 몇몇은 독박 돌봄으로 인한 ‘부모 살해’를 이해한다고 고백했다. 육아처럼 가족 내 한 사람이 돌봄 노동을 전담될 때, 돌보는 사람과 돌봄 받는 사람 모두 고립된다.

“개인시간이 없어요.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려고 하면 마음이 벌써 힘들어져요. ‘아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엄마한테 가서 뭘 해야지’ 그게 딱 걸리니까 그 이후에는 개인시간이 하나도 없어요. 정말.”

“엄마랑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 때도 많아요. ‘이러다가 어느 날 뉴스에 날 수가 있어 엄마랑 나랑. 그게 남의 얘기가 아니야.’ 100% 이해되는 게 집에서는 모든 일이 한꺼번에 오고 사회관계가 안 되잖아요.”

국가는 가족에게, 남성은 여성에게 돌봄을 전가하고 개인화 할 때, 가족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은 돌봄의 몫이 본인에게 넘어올까 두려워 돌봄 전담자가 힘듦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해도 무시하거나 침묵하게 된다.

“정말 사실 저는 아프면서 인간에 대한 환멸을 정말 많이 느꼈어요. 엄마의 형제들에 대해서. 자기네한테 피해 갈까봐. 경제적으로나 짐을 지게 될까봐 ‘그건 다 오로지 너의 몫이야.’ 그런 게 너무 힘들었어요.”

“제일 힘든 건 누구랑 나눌 수 없는게 힘들구요. 제가 그런 걸 힘들다고 하면, 그걸 결정할 때, 병원에 계속 있어야 하는지, 옮겨야하는지, 하다못해 하여튼 뭐 하나라도 결정할 때 힘든데.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니까.”

“아무리 내가 받아들인다고 해도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나가서 운동하고 하다보면 좀 잊어버리고 생활하고 그 생활이 반복되는 거죠, 지금.”

일과 돌봄, 그 사이에서

돌봄 후,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에게 가장 큰 변화는 진로와 직업에서 나타났다. 돌봄으로 인해 기존의 일을 지속하지 못하거나 진로를 정하는 데 있어 돌봄 가능여부가 주요한 전제 조건으로 작동했다. 노동 시간이 길고, 가족 돌봄을 존중하지 않는 대부분의 직장 문화에서 인터뷰이들은 개인 시간을 쪼개 두 배 세 배의 일을 부담하거나 상대적으로 출퇴근이 자유롭고 돌봄과 병행이 가능한 직종을 찾아 이동한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일, 돌봄 둘 중 어느 것도 잘 해내지 못하다는 자괴감을 갖게 된다. 돌봄 가능 여부로 직장을 구하거나 그에 맞춰 진로를 결정했을 때, 돌봄이 끝난 후 나는 누구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뭐였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등 새로운 고민 속에서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지금 같은 경우는 제가 직장을 다니면 꾸준히 다닐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도중에 자꾸 엄마 병원에 모셔가야 되고… 너무 갑자기 이런 저런 상황들이 생기니까 지금은 그나마 눈치 덜 보는 직장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가족이) 아프기 시작하면 나의 진로를 결정하려고 계획했던 게 다 망가져요. (1순위는) 내가 할 일과 엄마 돌봄. 나의 여가는 3순위, 4순위로 밀린단 말예요. 근데 저는 (돌봄이 끝났지만) 후유증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 같은 게 물론 이제 뭔가 스스로를 위해서 뭘 하는 걸 많이 잊어버린 것 같아요. 뭔가 자꾸 내가 하고 싶었던 걸 못 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나중에는 마음조차 안 먹게 되거든요.”

선별복지의 문제

돌봄의 사회화·공공화라는 목표아래 2007년 첫 시행된 ‘장기요양보험제도’는 여성들의 돌봄 현실과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 장기요양제도를 신청하면, 가장 먼저 거치는 과정이 등급판정이다. 등급에 따라 지원금이 차등 적용되는데, 신체장애에 비해 인지장애(노인성 치매)는 기본적으로 등급이 낮고, 신체장애가 있어도 투병기간이 길지 않으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등급을 낮게 부여한다.

이는 제도 이용 가능한 문턱을 높이고, 실제 현실과도 동떨어져 있다고 인터뷰이들은 말한다. 이러한 선별복지방식은 이용자와 그 가족으로 하여금 힘듦을 ‘어필’하게 만든다. 아픔을 증명해야만 더 높은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지금의 등급제는 노인돌봄을 보편 복지로서 사고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 엄마는 당시에 수술은 했지만 몸은 잘 움직였어요. 그런데 밤이 되면 서성거리고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고 피해망상 같은 게 굉장히 심했어요. 근데 우리 엄마는 3등급을 받았어요. 몸이 움직일 수 없을 때는 1, 2등급을 주지만, 섬망 증상이 심해도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그러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총 시간 수가 제한되었어요.”

특히 작년 3월부터 시행된 방문요양서비스 등급별 차등 시간 적용제(3-4등급 노인들의 방문서비스 지원 시간이 4시간에서 3시간으로 축소)에 대해 부모의 방문요양서비스를 이용 중인 인터뷰이들 모두 입을 모아 비판했다. 혼자 둘 수 없는 경증~중증 치매, 노인성 질환(심혈관, 고관절)을 앓고 있는 부모의 경우, 기존 4시간 지원으로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확대가 아닌 축소 시행은 장기요양제도가 돌봄을 전담하는 가족이 있다고 전제하고, 그 가족을 보조해주는 의미로 시행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지금 요양보호사가 와도 기준이 낮아져가지고 올해부터 3시간 밖에 안 해주잖아요. 근데 말이 그렇지 치매 3급이면 혼자 외출도 못하시고 혼자두면 안되는데 하루 3시간… 그나마 전에는 4시간이었는데. 이러면 돌보는 사람의 인생이 없어요. 버틸 수가 없어요. 진짜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차라리 어느 시간까지 가능하냐가 아니라 이 사람이 자기를 버틸 수 있는 만큼의 환경이 주어져야 되는 거죠.”

경제력에 따른 돌봄의 격차

 


장기요양제도의 이용자 선별 및 지원시간 축소 정책으로 인한 공백은 결국 고스란히 가족의 몫이 된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장 크게 가지게 된 문제의식은, 부모 혹은 자녀의 경제력에 따라 돌봄 환경이 좌우되는 현실이었다. 인터뷰이들 간의 조건에 따른 경험적 차이가 가장 큰 지점이기도 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돈을 더 추가로 내고 해요. 한 시간에 만 원씩 더 내고 하는 거예요. 돈이 없는 사람들은 3시간 이상 돌봄 못 받죠. 지금은 수가가 올라가서 17만 원씩 내거든요. 그거 내기도 버거운 거죠, 사실. 거기다가 하루에 1~2만 원씩 더 낸다 하면 한 달만 해도 40~50만 원인데 부담돼서 못 하죠.”

“(요양병원 입소 당시) 60만 원 냈어요. 100만 원짜리도 있었고 돈이 많으면 정말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겠으나 빈곤한 노인들 같은 경우에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게 지금의 체제인 것 같아요.”

부모가 중증 질환으로 혼자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선택지는 더욱 좁아진다. 시설(요양원, 요양병원)을 선택하거나, 돌봐야 할 가족이 없는 비혼여성, 가족 내에서 돌봄노동을 주로 수행해온 여성이 일을 그만두고 돌봄을 전담하게 된다. 돌봄 전담 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적 입지는 줄어들고, 돌봄과 관련된 의견을 가족 내에서 적극적으로 말하기 어려워지는 구조를 만든다.

“돌봄은 제가 전담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다른 형제자매들이 비용을 내다보니까, 눈치가 보이죠. 장기요양도 3시간 이상 받는 건 아예 생각도 못해요. 병원비용도 그렇고. 좀 주눅드는 게 있어요. 엄마가 돈이 이만큼 들었다, 이걸 가족들한테 얘기해야 되잖아요. 나를 도와줘, 도 아닌데 엄마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건데도 돈 얘기할 때는 늘 미안해요.”

실제로 ‘노년에 본인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적지 않은 인터뷰이들이 ‘경제력’, ‘돈’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돌봄이 개인의 ‘능력’에 따라 좌우되는 환경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노후 자금’으로만 이야기 되는 노년은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노인들의 삶을 삭제하거나 과장한다. 보편적 돌봄 복지 제도 구축과 함께, 돌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다시 질문해야 한다.

  
돌봄의 재구성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 본 부모돌봄 경험은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었다. 하지만 가족 안에서 여성이 돌봄의 주담당자가 되고, 독박 돌봄을 경험하고, 안정적인 노동을 하기 어려워지고, 경제력이 없으면 돌봄이 어렵고, 현재의 돌봄 제도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하고 있었다. 돌봄이 가족에게, 특히 여성에게 맡겨지는 현실 속에서는 ‘부모 돌봄’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렵다. 변화를 위한 상상이 필요하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홍성] 폭우속에서 김장하는 여성 농민들, 왜?


 


 



충남 내포신도시 인근에는 폭우에 가까운 비가 내렸다. 가을 정취와는 거리가 먼 현상이다.

이런 날씨 속에서도 충남도청 앞에서는 김장이 한 창이다. 벌써 김장의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투명 비옷을 입은 여성농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빨갛게 속이 잘 든 김치가 제법 군침을 돌게 한다.

한국여성농업인충남도연합회(아래, 충남여농)는 8일 충남도청 앞에서 김장 나눔 행사를 진행했다. 박종숙 충남여농 회장은 “오늘 담근 김치는 각 시군에서 가져가 차상위 계층에게 전달될 예정”이라며 “고추 가루는 청양, 젓갈은 오천농협, 김치는 태안산을 썼다”고 말했다.


비가 오는데 작업이 어렵지는 않은지 묻자 박 회장은 “여성 농민들은 이보다 더 안좋은 날씨 속에서도 농사를 짓는다”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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