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매체가 ‘기생충’의 흥행 소식을 다뤘다

북한의 선전 매체 ‘조선의 오늘‘이 18일 한국 영화 ‘기생충’의 흥행 소식을 전하며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조선의 오늘은 이날 ‘한 편의 영화가 시사해 주는 것은’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리 측 언론 보도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관련 소식을 전했다.

조선의 오늘은 주연 배우인 송강호와 감독인 봉준호의 이름은 물론 지난 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사실도 그대로 전했다.

다만 이 매체는 “이 영화는 날로 극심해지고 있는 사회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실상을 실감 나게 보여 주며 인기를 끌고 있다”라며 “현재 남조선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반인민성과 날로 심화되는 극심한 경제위기로 하여 전체 주민의 16.5%가 절대 빈곤층으로 전락했고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소득격차는 무려 59배로 늘어났으며 부와 가난의 대물림으로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유행해 사회 양극화와 빈부 차이가 극도에 달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반면 인민 대중이 국가와 사회의 진정한 주인으로 된 우리 공화국은 누구나 평등하고 고르로운(균등한) 삶을 누리고 있어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라며 “개인 이기주의에 기초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광범한 인민대중의 자주적 삶이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라고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했다.

조선의 오늘은 “남조선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 편의 영화는 사람들에게 자본주의 제도야말로 부익부, 빈익빈의 악성종양을 안고 있는 썩고 병든 사회이며 앞날에 대한 희망도 미래도 없는 사회라는 것을 다시금 똑똑히 깨닫게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SBS Star] One ARMY Spotted Her Dad in BTS’ Recent Pictorial

One “unlucky” fan of K-pop boy group BTS shared her story about her dad which could be every ARMY’s worst nightmare.

On June 14, Dispatch released its new BTS pictorial that was taken during their recent trip to Las Vegas, Nevada.
BTSBTS was visiting the area for the ‘2019 Billboard Music Awards’, where they took ‘Top Social Artist’ and ‘Top Duo/Group’ awards.

One ARMY (BTS’ fan club) named Diana was flipping through the gorgeous photos of her favorite boy group, until she gasped in shock after finding her dad in one of the photos.
BTSDiana’s dad was chilling and minding his own business while seven beautiful Korean boys were focusing on their photo shoot just behind him.

Her dad was not in one, but two BTS photos―casually sharing the bar space with JIMIN in another one.
BTSARMYs all around the world are cracking up at the unluckiest moment of her life, as Diana cursed the entire universe for how unfair her life can possibly be.
BTSFellow ARMYs commented, “I feel you, sister. I feel you.”, “This is crazy! The luckiest ‘ARMY Dad’ in the world.”, “Your dad must’ve saved the world in his past life.”, and more.

(Credit= Dispatch/NAVER, ‘taejooons’ Twitter)

(SBS Star) 

“오늘 와이프 친정 간대!” 이런 농담이 불쾌한 이유

피자도 내 맘대로 맞춤 주문하는 시대.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는 결혼 제도에 끼워맞춰 살아야만 할까? 좋은 것은 취하고 불편한 것은 버리면서 나에게 꼭 맞는 결혼 생활을 직접 만들어가려 한다.[편집자말]

결혼에 대한 자조적인 농담이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오늘 와이프 친정 간다’고 환호하는 메시지를 실수로 아내에게 보내 당황하는 남편의 반응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우스갯거리로 회자되기도 하고,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기러기 아빠’ 같은 멘트에 빵 터지는 MC들의 모습이 공중파 방송에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기야 나도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살다 보니 ‘우리’의 공간을 가끔 나 ‘혼자’ 차지할 때의 홀가분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자유롭고 홀가분한 생활습관을 관철하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생각한다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나 편안한 사람과 있다 해도 혼자일 때의 가뿐함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반면 한 집에서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은 나만의 공간에 다른 누군가를 초대해 그곳을 두 사람의 생활공간으로 바꾸어가는 일이다. 혼자일 때보다 불편하지만, 둘이라서 가능한 그 밖의 다른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일구는 변화다. 

그래서 배우자가 집에 없는 상태를 반기는 태도가 재미로 소비되는 것이 나는 의아하다. 결혼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 포기하고, 무언가를 얻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포기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상대는 그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해꾼에 불과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내 남편이 어딘가에서 그런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상상하면 조금 불쾌해진다. 

두 사람이 한 집에서 산다는 것 
 

 각자의 집에서 살 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차이점들을 발견해야 했고, 때로는 고쳐나가야 했다.?
 각자의 집에서 살 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차이점들을 발견해야 했고, 때로는 고쳐나가야 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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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체 생활을 좋아했던 적이 없다. 심지어 태어날 때부터 같이 살아왔던 가족들과 한 집에서 같은 규칙을 공유하며 부대끼고 지내는 것조차 버거워지기 시작했을 무렵에 나는 독립했다. 부모님의 집에서 살 때 ‘하지 말아야’ 했던 것들이 사라진 대신에 혼자서 살게 되니 ‘해야만 하는’ 일들이 생겼다. 그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함께 나누어’ 하게 된 것이 결혼이었다.

남편은 결혼 전에도 내가 사는 집에 종종 놀러온 적이 있었지만, 그와 결혼해 한 집에서 사는 것은 부모님과 사는 것뿐만 아니라 나 혼자 사는 것과도 달랐다. 가정이라는 조직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두 조직원끼리의 협력이 필요했다. 연애할 때, 즉 각자의 집에서 살 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차이점들을 발견해야 했고, 때로는 고쳐나가야 했다. 

결혼하면 치약 짜는 방법 때문에도 싸운다던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김치찌개 끓이는 방법부터 수건 개는 방법까지 다르다는 사실은 누구 한 명이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각자 다른 가정에서 자라났다는 증거였다. 한 사람이 또렷한 살림의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방식을 통일시키기보다 그냥 각자 하던 대로 하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한 집에 살기 위해 맞춰가야 할 것은 치약 짜는 방법만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습관이 다른 사람의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방을 항상 깔끔하게 정돈하는 습관이 몸에 밴 남편과 달리, 나는 아직도 내가 쓴 컵을 바로 싱크대에 가져다 놓으려면 남편의 요구를 ‘의식해야만’ 한다.

반면 옷가지를 침대 틈 따위에 쑤셔 넣어 ‘눈에 보이지 않게’ 정리하는 남편의 습관은 언제 봐도 못마땅하다. 나는 옷이 먼지 쌓인 틈에 들어가 구겨지는 것보다 차라리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물론 바로바로 정리하면 된다는 최상의 해결책이 있긴 하지만.

사실 두 사람의 다른 생활 습관을 한 공간에 맞춰 넣는 행위는 결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친한 친구들 중 두 명은 3년 정도 함께 살았는데, 한 명은 어지르는 것을 잘 하고 한 명은 쉴 새 없이 바닥의 머리카락을 테이프로 찍어 내는 성격이라는 걸 같이 살면서 한층 실감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것은 결혼은 물론이고 주거 형태를 정하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일까? 내 성향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거나, 상대방의 방식이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 내가 함께 살기로 결정한 파트너는 이 문제를 나와 함께 풀어갈 수 있는 사람일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누군가와의 결합일까, 아니면 혼자의 독립일까? 

결혼으로 잃은 것과 얻은 것 
 

 주말 내내 붙어 있다 보면 그가 어딘가 외출했으면 싶을 때도 있지만, 밤마다 결국 집에 돌아오는 배우자가 있다는 든든한 마음과 맞바꿀 만한 불편이다.
 주말 내내 붙어 있다 보면 그가 어딘가 외출했으면 싶을 때도 있지만, 밤마다 결국 집에 돌아오는 배우자가 있다는 든든한 마음과 맞바꿀 만한 불편이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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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때 충전이 되다가도 어떨 때는 외로워진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 즐겁다가도 어떨 때는 피곤해진다. 누구나 조금씩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양쪽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을 선택했다면, 특히 그 방법이 결혼이라면 혼자 있는 시간은 비교적 줄어들게 될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모두 고요한 외로움을 즐기는 것은 아니듯, 결혼을 선택하는 모두가 일종의 ‘집단’을 꾸려나가는 데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 사이에 기존의 교집합은 적을 수밖에 없다. 내가 해오던 방식을 포기하고 다시 새로운 집단의 규칙을 만들어 지키는 것은 혼자일 때보다 둘일 때, 둘보다 셋일 때 어렵기 마련이다.

우리가 공동생활을 위해 크고 작게 노력하던 것을 잠시 멈출 수 있는 순간, 즉 배우자의 한 사람이 장기적으로 집을 비우는 순간 놀랄 만큼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는 이유이리라. 

그러나 그 감정을 배우자의 부재에 대한 기쁨으로 희화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오늘 아내가 집 비워서 신난다’고 친구들에게 선포하거나 ‘주말 부부라 행운이다’라고 농담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 스스로가 공동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에 대한 미숙함을 자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동거하고 있는 배우자가 나의 생활에 불편을 주는 요소라고 암시할 때, 그들은 상대방의 불편함 역시 자신이 느끼는 것과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하고 있을까? 함께 살기 위해 두 사람 모두가 독신의 삶을 비슷한 만큼씩 양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상대의 부재를 그렇게 간단히 한쪽에서 농담거리 삼을 수 있을까? 그 순간 독신의 자유 대신 선택한 배우자의 존재 의미는 너무 가볍고, 걸리적거리고, 별 중요치 않은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결혼이 주는 이점보다 독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불편이 큰 사람이라면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편이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독신의 자유보다 배우자와 함께하는 삶을 원했다면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우습게 만드는 농담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여전히 혼자의 삶을 사랑하고 동경하지만, 지금은 홀로 깨어 있는 어떤 밤에도 몇 걸음만 걸어가면 잠들어 있는 남편의 등을 끌어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주말 내내 붙어 있다 보면 그가 어딘가 외출했으면 싶을 때도 있지만, 밤마다 결국 집에 돌아오는 배우자가 있다는 든든한 마음과 맞바꿀 만한 불편이다.

결혼이 어떤 종류의 체념이라는 듯한 농담을 던지는 대신에, 내가 선택한 삶 속에서 불편을 줄이고 더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의 가정을 만드는 한편 각자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의 결혼은 어떤 모양새를 갖춰야 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정답은 아마 각 부부의 수만큼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cats-day)에도 실립니다.

“지금이 조선시대인가”…베리굿 조현 팬들, 의상 선정성 논란에 ‘발끈’

걸그룹 베리굿 멤버 조현을 둘러싼 의상 선정성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팬들이 논란을 이해할 수 없다며 조현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성명문을 발표했다.

18일 온라인 팬 커뮤니티 ‘베리굿 갤러리’는 “조현이 한 예능프로그램 레드카펫 행사에서 착용한 의상이 현재까지도 뜨거운 감자로 이슈화되고 있어, 너무나도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기에 공식적으로 지지 성명문을 발표한다”며 조현을 옹호했다.

팬들은 “지금이 조선 시대인가? 도대체 해당 의상이 왜 문제가 되는지 하등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라고 분노하며 “조현은 ‘리그 오브 레전드’의 구미호 캐릭터 ‘아리’를 귀가 달린 머리띠와 보라색 꼬리로 표현했다. 현장에서는 조현의 섹시한 몸매가 코스프레와 어울리면서 ‘실사판 아리’가 튀어나왔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를 선정성 논란으로 문제를 삼는 건, 오히려 게임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프로그램을 위해 주최 측과 협의 후 코스프레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준비해 준 의상을 착용한 것”이라고 조현이 입은 의상에 대해 설명하며 “평소 게임을 좋아하는 조현이 정말 즐겁게 표현하는 모습에 많은 팬들은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팬들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일부 편향된 시선에 조현이 상처를 받길 바라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나 당당히 자기 몫을 소화하는 조현이 되길 간절히 희망”한다며 조현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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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조현은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OGN e스타디움에서 열린 ‘게임돌림픽 2019: 골든카드’에 참석,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속 구미호 캐릭터인 ‘아리’ 코스프레 의상을 입고 포토월에 등장했다.

이때 입은 조현의 의상을 두고 선정성 논란이 일었다. 가슴과 엉덩이 라인이 드러나는 바디 수트에 가터벨트 착용, 엉덩이에 꼬리까지 단 코스프레 의상이 걸그룹 멤버가 입기에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성을 상품화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반면, 조현이 해당 게임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며 ‘실사판 아리’라고 옹호하는 팬들도 있었다.

이를 두고 행사 주최 측과 소속사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소속사 제이티지엔터테인먼트 측은 “주최 측과 협의 후 준비된 의상을 입은 것”이라며 평소 게임을 좋아하는 조현이 행사의 의미를 잘 살리고 게임 유저들과 소통하고자 기꺼이 해당 의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주최 측인 OGN도 “원래 아리의 캐릭터가 그렇다”며 “의도적인 노출이 아니라 그냥 캐릭터 표현에 충실했을 뿐인데, 이런 논란 자체가 당혹스럽다”고 전했다.

이번 코스프레 의상 논란으로 조현의 이름은 17일부터 18일까지, 이틀째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진=SBS funE DB, ‘베리굿 갤러리’ 캡처]

(SBS funE 강선애 기자)

‘기생충’ 속 기우, 기정 남매가 부른 노래 풀버전이 공개됐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우(최우식)와 기정(박소담)이 부른 노래의 전체 가사가 공개됐다. 

CJ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박사장네 영어 과외 교사로 취직한 기우는 동생 기정을 유능한 미술 선생님으로 연교(조여정)에게 소개한다. 기정의 면접을 위해 박사장네를 찾은 두 사람은 초인종을 누르기 전 기정의 가짜 프로필을 되짚는다. 이들은 말로 프로필을 읊는 대신 ‘독도는 우리 땅’ 가사를 개사해 노래를 부른다.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 선배는 김진모 그는 네 사촌”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공동 작가 겸 스크립터인 한진원씨가 함께 개사했다. 

아래는 ‘기생충’ 측이 공개한 노래 전체 가사.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은 개봉 20일째인 지난 17일 누적관객수 844만 명을 돌파했다. 영화는 현재도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김태우 에디터: taewoo.kim@huffpost.kr

고유정 현 남편이 공개한 `아들 사망 당시` 현장은 경찰 설명과 달랐다

JTBC

고유정 씨 현남편이 공개한 사진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 피의자 고유정 씨 현 남편 A씨는 아들 B군의 사망 당시 사고 흔적이 담긴 사진을 JTBC 등 언론에 공개했다. 

사진 속 침대 중앙 부근에서 혈흔이 발견됐다. 이에 대해 A씨는 ”아기 얼굴만 한 피가 뿜어져 있었다. 이불과 매트리스까지 피가 번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앞서 경찰이 ”다량으로 출혈했다면 의심이 들었겠지만 B군이 숨졌을 당시 현장에 혈흔량이 많지 않았다”고 밝힌 입장과는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A씨는 경찰의 부실 수사 의혹도 제기했다. A씨는 ”아이 장례식 등으로 경황이 없는 틈을 타 고유정이 (아들의) 피가 묻은 전기매트와 요를 다 버렸다”고 말했다. 주요 증거물을 폐기할 수 있도록 사실상 경찰이 방치했다는 주장이다. 

또 A씨는 B군의 2차 부검 때 ”압착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받고도 경찰이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경찰은 B군의 사인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1차 부검 결과에 따라 질식사로 보고 있다.

고유정씨는 지난달 25일 제주시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지난 4일 구속됐다. 지난 13일에는 현 남편에게서 의붓아들 살인 혐의로 고소당했다.

[SBS Star] Yim Siwan Under Fire for Taking Twice as Many Days off in the Military than Other Soldiers

The public is debating over whether if actor Yim Siwan received preferential treatment in the military or not.

On June 17, it was reported that Yim Siwan had taken about twice many days off than other soldiers during his military service.

The report stated Yim Siwan had taken a total of 123 days off while in the military, which is about 20% of the length of his service.

It said those 123 days were made of 28 days of annual leave, 18 days of reward leave, 51 days of special leave in appreciation of his service, 14 days of compensation leave, and 12 days of emergency sick leave.

Since the majority of soldiers take about 59 days of vacation on average (2018), it meant Yim Siwan had about 2.08 times more days off than them.Yim Siwan (Yonhap)After the report was published, some people criticized the Military Manpower Administration and/or the actor for having more vacation days simply because he was a celebrity.

A couple of hours later, Yim Siwan’s management agency Plum Actors released a statement clarifying this issue.

The agency wrote, “After Yim Siwan received the basic military training, he was appointed as an instructor for his excellence. He was also selected as a special forces soldier after showing his excellence in his military base. Not only that, he had donated all his monthly salary from the military to an elementary school nearby where he volunteered to teach math to students as well. He was a hard-working and excellent soldier.”Yim Siwan (Yonhap)They continued, “Yim Siwan received 123 days of vacation in the military for reasons such as annual leaves, special leaves for participating in events for the Pyeongchang Winter Olympics and Armed Forces Day, reward leaves as a special forces soldier with excellent performance. Due to the nature of a position as an instructor, who has to work extra five weekends, additional 40 vacation days were given to him. We have confirmed that about 100 vacation days are given to an instructor with excellence in his base.”

They added, “While it is true that Yim Siwan received more days off than most other soldiers, he has not received any special treatment beyond what the military allowed him.”Yim Siwan (Yonhap)Yim Siwan (Yonhap)(Lee Narin, Credit= Yonhap News Agency) 

(SBS Star)  

내 가슴에 들어박힌 대전의 특별한 정경 하나

대전작가회의에서는 ‘2019 대전방문의 해’를 기념하여 연속기고를 시작합니다. 대전의 볼거리와 즐길거리, 추억담을 독자들과 나누고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나는 대전서 낳고, 자라서 여러번 밤차 타고 도망쳐봤으나

종내 대전서 밥 벌고 혼인하고 아이 키우며 가끔 새벽차에 막 돌아 온 낯선 얼굴로 가로에 서면

큰길 뒤 잊혀진 골목 보이고 거기 묵은 이발소나 사진관, 목욕탕이 그대로 있으면 마음 환하고 애처롭고 쓸쓸한 어느새 쉰

내가 등짐 져 지은 무수한 집들 헐리고 다시 새집 들어서도록 나는 여기서 꼼짝없이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중이다.

– 시 <대전>

 
삼성교는 대동천이 길게 흘러내리다 대전천과 합수하기 전의 물길 위로 도로를 남북 방향으로 이어주는 작은 다리다. 한때는 자동차 두 대가 비켜 지나던 버젓한 국도였지만 지금은 잊혀진 길 위에서 초라해졌다. 그러나 다리의 생명력이란 본래 그 위를 건너는 모든 물상에 관계된 것이며 특히 걷거나 뛰거나 바퀴에 실려 오가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제대로 다리 구실을 해내던 1950년대의 삼성교와 거기 얽힌 삶의 풍경과 심상을 더듬어보려 한다.

그 시절 삼성교는 삼성동, 홍도동, 성남동, 오정리, 회덕 지역을 통틀어 자동차가 건널 수 있는 몇 안 되는 번듯한 다리였다. 목조교각을 세워 굵은 통나무를 길게 걸치고 그 위에 흙을 덮은 이 다리를 통해 말수레에 실린 공산품, 농산물과 이삿짐들이 남북으로 분주히 오갔다. 가끔 짐 실은 트럭이 지나가면 다리 아래로 뿌옇게 흙먼지가 쏟아져내렸다. 아침길 나서는 아이들에게 말수레 조심하라는 어른들의 당부가 꼭 따라붙던 시절이다.

쟁이 막 끝나고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던 피난민의 귀환행렬이 여름내 삼성교를 건너갔다. 길 가다 저녁이 되면 다리를 지붕 삼아 떼지어 마른 모래톱에 지친 몸을 눕히던 이들이다. 그 저녁때 다리 주변 마을 반장들은 이렇게 외치고 돌아다녔다. 주먹밥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집집마다 없는 여유를 만들어 호박잎으로 싼 주먹밥을 냈다. 된장도 아기 숟갈 하나만큼 얹어. 그들은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다리 아래 모래톱을 떠났다.

그런 시절의 어디쯤에서 삼성교는 꽤 번성한 풍경을 지니게 된다. 떠나지 않은 많은 이들이 천변 따라 길게 움막집을 짓고 살게 된 것이다. 다리 근처에 제법 규모가 큰 장도 섰다. 먹거리 위주로 생겨난 장을 통해 그들은 기본적인 삶을 살아나갔다. 아침이면 시내로 들어가 그게 무어든 한움큼씩 움켜쥐고 돌아온 사내들이 삼성교 건너 길게 이어진 천변 움막집 호롱불속으로 스며들었다.

다리에 대해 쓰자면 길이, 폭, 하중이 먼저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기술된 다리는 이미 사라진 옛 다리다. 1960년대 말쯤 철근콘크리트로 다시 세워졌다. 그러니까, 필자는 지금 기억 속의 통나무 다리와 그 위를 건너다니던 수많은 물상과 사람들에 관해 말하는 중이다.

전쟁 뒤 십년 넘게 삼성교는 대전역을 지나 북쪽으로 뻗은 국도 중 제법 규모 있는 나무와 흙으로 된 다리였다. 시내를 곧게 빠져나온 도로가 북쪽을 향해 뻗어가도록 대동천을 건네주던 거였다. 그 길 따라 삼십 분쯤 걸어 닿는 붉은 민둥산에 시립공동묘지와 화장장이 있었다. 그렇게 그 시절, 인구 3만 쯤의 시내 쪽에서 오는 장례행렬은 모두 삼성교를 건너야 했다. 울긋불긋 만장과 상두꾼의 요령소리, 선창과 후렴이 함께 지나갔다. 아이들에게 그건 대단한 구경꺼리였다. 난간에 죽 늘어서서 낯선 죽음의 분위기를 맛보곤 했다. 그리고 그런 날들 중엔 가슴에 들어박히는 특별한 정경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저마다의 희노애락 품고 건넌 다리
 

 냇가 풍경. 본문 내용과는 관련 없는 자료사진.
 냇가 풍경. 본문 내용과는 관련 없는 자료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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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가 내리던 오후였다. 찬바람 불고 서쪽 하늘엔 구름 사이로 기운 해가 언뜻언뜻 내비치던 스산한 날씨. 시내 쪽에서 마구 달려오는 작고 초라한 장례행렬이 있었다. 그런데, 종이꽃을 듬성듬성 매단 작은 가마가 자주 멈칫대는 거였다. 만장도 없는 그 행렬은 상여꾼 앞 뒤 한 명씩과 어린 소년 상주 한 사람, 그리고 자주 뒤돌아보며 속도를 조절하던 요령잡이 하나, 이렇게 네 명이었다. 어린 상주는 뛰며, 진눈깨비 질척대는 정강이 아래까지 늘어진 상복을 연신 끌어올리며 앞 선 상여를 필사적으로 따라잡던 거였다. 그렇게 그들은 해 지기 전 장례를 끝내고자 있는 힘을 다해 다리 건너 북쪽으로 멀어져 갔다.

그 시절 많은 이들이 저마다 희노애락을 품고 나무와 흙으로 된 다리를 건너다녔다. 이른 아침 시내로 떠난 이들은 어둑해져서 다시 다리를 밟게 된다. 그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건장한 남자들이 그랬다. 다리 위에는 반짝 야시장이 서고 종이상자를 좌판 삼아 식빵을 낱개로 풀어 파는 젊은 장사꾼도 있었다. 좌판 하나에 촛불 하나씩 밝혀놓고. 그러면 지친 이들이 호주머니에서 땀 젖은 지폐나 동전을 꺼내 빵을 사들고 가로등 없는 길을 따라 밤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삼성교 아래로 흐른 대동천은 대전천, 갑천과 만난 뒤 이십여 리를 더 나아가 이윽고 금강의 너른 품속으로 녹아든다. 이렇게 천과 천이 만나고 강과 합쳐지는 지점에는 비옥한 모래톱이 생겨나고 여기서 김장 재료인 무와 배추가 쑥쑥 자란다. 근교농업이 제대로 자리 잡는 것이다.

늦가을 서리 내리기 직전 삼성교를 건너는 긴 마차 행렬이 다리를 지나 시내 쪽으로 흘러가는 풍경은 장관이다. 마부들은 더운 입김을 내뿜는 말 잔등을 가볍게 치고 외마디 외침을 내지르며 걸음을 재촉해 산처럼 실린 무, 배추와 함께 시내 큰 장터를 향해 나아간다. 다리 난간에 기대서서 보면 꿈틀대는 말 잔등과 마부의 낯빛보다 더 검붉은 조랑말의 눈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그리고 말의 몸뚱어리 여기저기 지렁이처럼 툭툭 불거진 핏줄도 선명했다. 그 시절 삼성교를 건너던 모든 목숨들은 하나같이 필사적으로 살아내던 거였다.

봄부터 가을까지 다리 아래 백사장에는 볕 좋은 날 여기저기 가마솥이 걸린다.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온 땔감으로 불을 지펴 빨래를 삶아 모래 위에 길게 널었다. 그 흰빛의 빨래들이 햇볕에 마르는 동안 사람들은 다리 아래 그늘 여기저기 나뉘어 밥을 먹고 낮잠도 길게 잤다.

해가 지면 다리 위쪽 웅덩이가 생긴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인근 여자들이 멱 감으며 철벙대고, 깔깔댔다. 그 다음은 소리 안 내고 하루치의 땀을 씻어내는 남자들 차례였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한국전쟁 바로 뒤 제 몫을 다하던 삼성교와 맑은 물이 흐르던 대동천 그리고 열심히 살아내던 사람들에 관해 짧게 추억한 것이다. 이제 그 자리엔 반세기가 지난 철근 콘크리트 다리와 잔뜩 흐린 물이 있다. 또한 추억 속의 바로 그 다리도 함께 낡아간다.

이면우

시인, <저 석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십일월을 만지다> 등 노작문학상 수상 현재 대전작가회의 회원.

꾀꼬리 어르신들이 모였다 ‘당진시노인복지관합창단’

당진시노인복지관 당진시노인복지관 합창단원 전체사진
▲ 당진시노인복지관 당진시노인복지관 합창단원 전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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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을 하면, 젊어지는 기분이잖아~ 남편 따라서 들어왔는데 얼마나 신나는지 몰라요!”

2013년 당진시노인복지관이 설립되면서 노인복지관에는 새로운 반이 생겼다. 박정묘 지휘자의 재능기부로 맡은 합창반은 처음 3개월 동안 5명의 단원으로 시작했다.

“처음 이병하 관장님이 어르신을 위한 합창반을 만들어 볼 생각인데 도움을 줄 수 없겠냐고 물으셔서 그냥 흔쾌히 하겠다고 했어요. 모집된 어르신이 5명뿐인데 그래도 괜찮겠냐고 하셨는데, 다섯 분이면 어떻고 한분이면 어때요, 그런 마음으로 합창반을 시작했어요.”

5명의 합창단원이 점차 늘어나면서 15명이 되었던 때, 합창단원들과 박정묘 지휘자는 고대면의 한 교회로 예쁘게 티를 맞춰 입고 노래봉사를 나서기도 했다.

“그때가 우리 합창반이 처음으로 섰던 외부 무대였어요. 다들 얼마나 재밌어했는지 몰라요. 그 후로 합창단원들이 늘면서 다음해에 당진대합창제 무대에서 합창을 했어요”

‘합창단’은 아니지만 당진대합창제에 나가는 유일한 ‘합창반’의 현재 계획된 한해 활동은 매년 11월 복지관 대강당에서 갖는 발표회가 유일하지만 내년에는 당진대합창제의 무대에서 ‘꾀꼬리 합창단’으로 만나볼 수 있다고 박정묘 지휘자는 웃으며 설명했다.

“발표회는 매년 11월에 하지만 당진대합창제는 2014년도 첫 참가 이후로 격년으로 참가하고 있어요. 노소미 합창단이 나가는 해에는 우리 꾀꼬리 합창단이 쉬고요, 노소미 합창단이 쉬는 해는 저희가 나가죠.”

어르신들이 노래를 잘해 ‘꾀꼬리 합창단’이라고 이름을 붙여 대합창제에 참가했다는 박정묘 지휘자는 2013년부터 함께해온 ‘붙박이 소프라노’단원들이 합창반 소문을 많이 내줘서 지금은 단원이 37명이나 된다고 자랑했다.
 

박정묘 지휘선생님과 붙박이 소프라노 단원들 노래가 좋아 여러해동안 함께해오고 있는 단원들
▲ 박정묘 지휘선생님과 붙박이 소프라노 단원들 노래가 좋아 여러해동안 함께해오고 있는 단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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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도 떠들썩한 합창반은 봄가을이면 야유회를 떠나기도 한다.

“같이 함께하길 좋아해요. 어르신들이 스스로 과일이나 떡을 해 오셔서 나눠먹기도 하고 또 서로 단합이 잘되어서 분위기도 짱이에요! 수업마다 찍어뒀던 사진이나 동영상을 제작해서 단원들 폰으로 보내주기도 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로 지내요.”

합창반의 열정으로 1주일에 한번 있었던 수업을 2번으로 늘렸다고 설명하는 박정묘 지휘자는 당진시노인복지관에서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 9시 30분부터 11시까지 소프라노와 알토로 나뉘어 가곡합창수업이 진행된다.
 

합창 연습하는 단원들과 박정묘 지휘선생님 매주 화, 목요일에 2시간씩 연습하는 단원들
▲ 합창 연습하는 단원들과 박정묘 지휘선생님 매주 화, 목요일에 2시간씩 연습하는 단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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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온 신입단원으로 합창반의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는 이인선 단원은 “복지관에 밥 봉사를 왔다가 합창소리에 이끌려서 들어와 회장 자리까지 앉게 됐어요. 중학교 때 가곡책을 아직도 갖고 있을 정도로 노래를 좋아하거든요. 여기서 선생님과 단원언니들과 같이 노래하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라며 합창반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했다.

‘솔로컴백’ 은지원, 타이틀곡 ‘불나방’은 송민호가 지원사격

젝스키스 멤버 은지원이 타이틀곡 ‘불나방’으로 솔로 컴백했다.

YG엔터테인먼트는 18일 오전 10시 공식 블로그(www.yg-life.com)에 은지원의 솔로 타이틀 포스터를 공개했다.

포스터 속 은지원은 불나방 실루엣을 배경으로 카우보이를 연상시키는 실루엣으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티저에는 타이틀곡명인 ‘불나방 (I’M ON FIRE)’이 명시돼 컴백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이번 타이틀곡 ‘불나방’은 위너의 송민호가 작사-작곡으로 지원사격했다. 절친한 선후배로 ‘신서유기’, ‘강식당’ 시리즈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호흡을 맞춰온 은지원과 송민호는 충분한 음악적 대화를 나눴고, 이를 통해 은지원에게 딱 맞는 정통 힙합곡 ‘불나방’이 탄생했다는 전언이다.

‘불나방’은 은지원이 송민호와 더불어 작사에 참여했으며, YG 프로듀서팀 퓨쳐 바운스(FUTURE BOUNCE)가 작곡과 편곡에 이름을 올렸다.

피처링에는 매력적인 음색과 신비로운 캐릭터로 주목받고 있는 YGX의 신예 여성 보컬리스트 Blue.D가 참여해 눈길을 끈다.

은지원은 아이돌 1세대인 젝스키스 리더로 1997년에 데뷔해 ‘폼생폼사’, ‘커플’ 등 많은 히트곡을 배출했다. 이와 함께 ‘만취 In Melody’, ‘미카사로’, ‘8t. Truck’, ‘올빼미’, ‘싸이렌’, ‘Adios’ 등 다양한 솔로 히트곡들로도 존재감을 뽐냈다.

젝스키스는 지난 2016년 재결성해 성공적으로 컴백했다. 2017년에는 18년 만에 발표한 정규 5집 ‘ANOTHER LIGHT’의 더블 타이틀곡 ‘특별해’와 ‘웃어줘’가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비롯해 톱10에 전곡 줄세우기를 이루며 원조 아이돌로서 화력을 보여줬다.

(SBS funE 강경윤 기자)